한때 나는 한국에서 소개되는 모든 영화 홍보물을 보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 광고 심의 위원으로 활동한 덕이다. 2년 반 동안 수많은 영화 포스터와 예고편을 만났다. 몇몇 작품들은 심의를 해야 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잊게 할 만큼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잘 만든 예고편은 영화의 전체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었다. 예고편이 좋다고 꼭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작품은 예고편 내용이 전부여서, 본편을 보고 크게 실망한 적도 있다.
글쓰기에서도 홍보가 중요하다. 몇 개월에 걸쳐 다큐멘터리 한 편을 완성했는데, 편성 시간이 한밤중이거나 홍보가 잘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없을 때 창작자로서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연히 작품 마무리가 될 때쯤 홍보처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방송 프로그램을 미리 알리는 수단은 크게 예고편과 홍보문이다. 예고편은 연출이나 조연출이 편집본 중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핵심 장면들을 선택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다. 홍보문은 주로 작가가 쓴다. 전체 줄거리와 강조할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홍보문은 보도자료 형식으로 써서 방송 전, 각 신문사로 보내거나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 ‘미리 보기’란 등에 게재한다. 그런데 제작진이 보낸 보도자료가 신문과 같은 다른 미디어에 실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각 신문사 문화부에는 매일 수십 장의 보도자료가 이메일이나 팩스로 들어온다. 신문사나 잡지사의 지면은 한정되어 있기에 어떤 보도자료가 채택되어 지면에 실릴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홍보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문사 담당자들의 눈길을 끌고, 이후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이끌 매력적인 홍보문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첫째, 시의성을 고려해서 쓴다. 굳이 지금 왜 이런 아이템을 선택했는지 그 의도를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방영 당시의 상황과 사정을 기술하는 등 현황을 알리고, 그런 이유로 아이템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고 관심을 유도한다.
몇 년 전 ‘조선통신사’ 관련 역사 다큐멘터리를 집필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는 매년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연하는 행사가 열리는데,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이다. 여기에 별다른 설명이 없다면 신문사 담당자나 시청자는 단순히 조선통신사 행렬 재연을 스케치한 프로그램으로 단정 짓고 외면할 수도 있다. 제작진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퍼지고 있는 ‘한류’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정치적 의미를 넘어,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400년 전 한류’였다고 의미부여를 하며 지금의 상황과 연결 지었다.
둘째, 차별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템이라 해도 한 번도 방송되지 않은 주제나 소재를 찾기는 힘들다. 기존에 비슷한 주제로 방송된 프로그램과 새로 제작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다른지 제시해야 한다. 즉, 어떤 새로운 시각으로 주제에 접근했는지, 구성의 방식은 얼마나 독특한지를 알려준다. 앞서 언급한 ‘조선통신사’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차별화 지점은 400년 전 이 행렬을 이끌었던 수장의 후손을 찾아 제작진이 그와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나 발자취를 나열하는 이전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조선통신사 행렬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본다는 차별 지점을 강조하여 보도자료를 작성하였다. 이 외에도 신문사 담당자나 시청자들이 식상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방송 형식이나 출연자, 편집의 특징 등 자랑할 부분을 마음껏 강조하여 드러내야 한다.
셋째, 기대감을 갖게 쓴다. 최근 영향력이 커진 한 채널의 슬로건은 ‘재미와 의미’다. 사실, 방송 프로그램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이 두 가지가 전부다. 방송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시청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재미’일 것이고, 방송을 본 후 허무하거나 헛헛한 마음이 들지 않고 나의 일상과 연결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면 ‘의미’를 남긴 것이다. 홍보문에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 어떤 재미나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보다 상세히 제시해주면 좋다. 탈모에 관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면 홍보 문안을 작성하면서 현재 탈모 인구가 얼마나 급증하고 있는지, 혹은 탈모 관련 산업의 성장세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제시할 수 있다. 방송을 통해 탈모를 예방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만나게 된다든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스타의 집을 공개하여 기존에 알지 못했던 스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든지 하는 기대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홍보문 쓰기의 큰 줄기를 잡았다면, 이제는 A4 용지 한두 장 분량에 세부적인 문장들을 써 나갈 차례다. 먼저, 문장은 쉬운 언어로 쓴다. 한 편의 완결된 프로그램 안에서는 어려운 용어들을 풀어서 설명할 기회가 있지만 짧게 선보이는 보도문이나 예고편에서는 그럴 수 없다. 전문용어나 외래어를 사용하기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용어로 홍보문안을 작성해야 한다. 덧붙여, 전체 문단의 구성은 두괄식으로 쓰면서 문장의 길이는 되도록 짧게 써야 강렬한 인상을 남길수 있다.
또한 ‘정확한 정보’만을 제시해야 한다.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관련 사진이나 통계치를 정리한 표, 그림 등을 함께 첨부할 때가 있다. 이때 자료에 오류가 생긴다면 해당 방송뿐만 아니라 이 기사를 실은 매체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홍보문을 작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자료의 출처와 정확성 등을 점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홍보문이 실릴 매체의 특성에 맞게 보도자료를 편집한다. 방송을 홍보하는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직접 찾아보고 지면의 분량이나 형식 등을 미리 체크하자. 담당자들이 굳이 손보지 않아도 바로 신문이나 잡지에 실을 수 있게 보도자료를 보낸다면 채택될 확률도 높고, 보다 빠른 시간에 기사화될 수 있다.
독자나 시청자들은 볼 권리와 함께 재미없고 의미 없는 콘텐츠들은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 그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홍보문은 독자와 콘텐츠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기사로 소개할 가치가 있고, 이용자들의 흥미를 충족시켜 줄 작품이라는 점을 효과적으로 요약한 보도자료와 예고편을 만들 수 있다면, 당신이 쓴 글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용자가 친히 기억하고 찾아보는 글과 방송이라면 이미 존재의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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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글 심폐소생술김주미 저 | 영진미디어
짧은 문장부터 한 편의 글까지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팁을 비롯해,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지 등 글쓰기 기법과 ‘작가’로서의 태도를 모두 엮었다.
김주미(작가)
방송국에서 라디오작가와 TV 구성작가로 20년 일했다. 이후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을 비롯해 공공도서관, 문화원에서 글쓰기와 드라마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방송작가 시절부터 겪어온 글쓰기의 시행착오를 기록, 공유하고자 카카오 브런치 매거진 『방송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연재했고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받았다. 현재 미디어 비평가이자 작가로 살며, 읽고 쓰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