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김하나, 오은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는 일”
팟캐스트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직업군 중 하나가 됐어요. 측면돌파, 옹기종기 팀이 있어서 가능했죠.
글ㆍ사진 엄지혜
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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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에는 빨간색 ‘On air’ 조명이 켜진다. 7.2㎡(2.1평)남짓한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 2017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해 1년 반을 꾸준히 달려오고 있다. 팟캐스트 초보 진행자였던 작가 김하나와 시인 오은. 이제는 <책읽아웃> 네 글자만 나오면, 오프닝 멘트를 줄줄 왼다. 책을 좋아해서 사람을 좋아해서 여기까지 왔다. 각종 SNS에 쏟아지는 폭풍 리뷰. 두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건, 작가들의 숨은 매력을 발견했다는 후기와 영업 당한 책을 샀다는 인증, 그리고 탁월한 팀워크다. 할 수만 있다면 백발이 될 때까지 <책읽아웃>을 진행하고 싶다는 김하나, 오은과 책 수다를 한껏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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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에 관심이 생겼어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 우리는 정말 초보였잖아요?

 

김하나 : (웃음) 그렇죠. 『힘 빼기의 기술』 을 써 놓고서는 힘이 빡 들어갔던 진행자였죠.

 

오은 : 저는 <책읽아웃> 게스트로 먼저 출연했었잖아요. 그때는 제가 진행자가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라디오 게스트를 한 지가 벌써 10년이지만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부산에서 1주년 공개방송으로 청취자들을 만났을 때, 두 분의 상기됐던 표정이 생각나요.

 

김하나 :  ‘오은의 옹기종기’는 광화문, 김해 등에서 공개방송을 했지만 저는 청취자들을 대면한 게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놀랍더라고요. 서울에서 이 방송 때문에 부산 여행을 계획한 분들도 많았는데 정말 든든했어요. 1년이 될 때까지는 계속 긴장, 긴장, 긴장 상태였는데 요즘 제가 좀 풀어진 거 같아요. 다시 조여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오은 : 김하나 작가님과 격주로 방송하니까, 한 주는 녹음을 하고 한 주는 모니터링을 하는 셈이에요. ‘김하나의 측면돌파’를 열심히 애청하면서 제가 흡수할 수 있는 것들,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에요.

 

‘김하나의 측면돌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오은 : 김하나 작가님은 호수 같은 방송이에요. 호수는 밀물, 썰물이 없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잖아요. 청취자들이 듣기 정말 편안한 거죠. 방송의 업 앤 다운이 심하면 꾸준히 듣기가 어렵잖아요. ‘측면돌파’는 어떤 작가가 출연해도 편안해요. 우선 진행자가 게스트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니까요. 잘 듣기 때문에 이어지는 질문이 세심하고 배려가 넘쳐요. 어떤 후속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느냐가 진행자의 실력이니까요.

 

‘오은의 옹기종기’만이 갖고 있는 색깔이 있다면요?

 

김하 : 오은 시인은 아이 같아요. (웃음) 천진난만한 매력 때문에 옆에 있으면 저도 덩달아 즐거워져요.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함이랄까요? 서늘한여름밤 작가님이 나오셨을 때, 그 매력이 최상의 빛을 발했죠. 그리고 탁월한 리액션! 오은 시인만의 색깔이 있어요. 정말 옹기종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꾸리는 어떤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 같은 순수함이 무척 부럽습니다.

 

<책읽아웃>을 만들면서 뿌듯한 것 중 하나는 청취자들의 정확하고 빠른 리뷰예요.

 

오은 : 프랑소와 엄님의 아이디어였잖아요. 각종 SNS(트위터, 인스타그램)과 팟빵 댓글, 네이버 오디오클립 댓글까지. 청취자들의 댓글을 소개한 일은 <책읽아웃>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어요. 같이 만드는 방송이라는 느낌을 준 거죠. 몇 달 전 패션지 <마리끌레르> 인터뷰에서 “책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책읽아웃”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었는데요. 요즘 생각하는 건, 사람이 나빠도 좋은 책을 쓸 수 있지만 사람이 좋으면 좋은 책을 쓸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책을 쓸 확률이 높은 사람들을 모시려고 노력해요. ‘이런 좋은 사람이 이런 좋은 책을 썼어’라고 깨닫게 해주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거창한 지식을 알려주는 게 아닌, 삶의 소소한 재미를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김하나 : 리뷰는 정말 큰 힘이에요. 저희 <책읽아웃>처럼 각종 리뷰를 다 챙겨보는 팟캐스트는 아마 없지 않나요? (웃음) 진행자까지 매일 해시태그를 검색하니까요.

 

<책읽아웃> 공식 오프닝 멘트가 “해시태그 잊지 마세요”잖아요.

 

오은 : (웃음) 가끔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주변의 문인 친구들을 제외하면 책을 안 읽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오히려 경제경영서, 철학 책만 읽는 친구들이 있는데, 저랑 독서 취향이 다르니까 책으로 나눌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책읽아웃>을 들어주시는 청취자분들은 저희랑 취향이 비슷하잖아요. 진행자로서 정말 뿌듯할 때는 “이번 방송은 참 좋았어”가 아니라 “이 작가의 책에 관심이 생겼다”는 이야기예요. 실제로 읽어보니 책의 이런 부분이 괜찮았다는 리뷰를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해요.

 

김하나 : <책읽아웃>을 듣고 책을 샀다는 이야기만큼 기분 좋은 말은 없어요. 또 “이 작가, 매력 있더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기분이 좋죠. 얼마 전에 <책읽아웃> 몇 분의 팬들이 경기남부지회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 올리셨더라고요. (웃음) 정말 신기해요. 어떤 책,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 모임이 아니라 한 팟캐스트를 좋아하는 취향이 맞아서 스크리닝이 된다는 거잖아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에요.

 

얼마 전, 김하나 작가님이 하정우의 『걷는 사람』 을 소개한 후, 걷기를 시작했다는 청취자들의 댓글이 많았어요.

 

김하나 :  맞아요!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책을 통해 생각이 열리고 어떤 세계를 볼 수 있는데, 이건 정말 일상에서 직접적인 행동이 일어난 거니까요.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로부터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놀랍고 뿌듯해요. 너무 자화자찬인가요? (웃음)

 

오은 : 어떻게 보면 책은 일종의 취향일 수 있어요. 내가 취미로 삼는 어떤 대상일 수 있는데, <책읽아웃>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 역시 정말 신기해요. 특히 ‘김하나의 측면돌파’는 건강한 유머,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지점이 분명하잖아요. ‘삼천포책방’의 멤버 단호박, 그냥 님과 어울러진 톨콩(김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측면돌파’가 지향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그려지죠.

 

김하나  : 그건 ‘오은의 옹기종기’, ‘어떤, 책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기본적으로 공정함이라는 걸 신경쓰려고 하니까요. 실수를 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 <책읽아웃>이 앞으로도 꼭 지켜가고 싶은 모습이에요.

 

오은 :  ‘자정 작용’이라는 표현, 그 단어 꼭 살려주세요. (웃음)

 

<책읽아웃>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팟빵과 아이튠즈 팟캐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업로드 되고 있어요. <김하나의 측면돌파>에서는 ‘삼천포책방’의 인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오은 : 삼천포책방! 너무 재밌죠. 제가 정말 팬이에요. (웃음) 최근에 그냥 님이 『엄마, 왜 드라마보면서 울어?』 를 소개하신 67화를 들으면서 제가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몰라요. 책으로 시작했는데 책 이야기는 별로 안 나오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게 너무 웃겨가지고. 정말 혼자 듣기 아까웠어요.

 

김하나 : ‘삼천포책방’은 수다가 더 목적이에요. 말 그대로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 갈지 모르는” 코너죠. “우리는 요즘 이런 책을 읽고 있어’라고 말을 시작하면서 대본 없이 그냥 수다를 떠는 거예요. 일종의 맥거핀 같은 거죠. 그런데 ‘오은의 옹기종기’의 책 소개 코너 ‘어떤, 책임’은 하나의 주제로 3권의 책을 소개하잖아요. 솔직히 책의 퀄리티는 ‘어떤, 책임’이 더 좋아요. 사실 제가 독자로서 더 영업 당하는 코너는 프랑소와 엄님과 캘리님이 출연하는 ‘어떤, 책임’이에요.

 

오은 : 인기는 ‘삼천포책방’이 많고요. (웃음) 저는 단호박님과 그냥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네 친구 만난 느낌이에요. ‘어떤, 책임’은 “책임감을 갖고 어떤 책을 소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리 셋은 정말 웃다가 시작해도 끝은 진지해요. 진행자들의 성격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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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

 

<월간 채널예스>도 <책읽아웃>도 일단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체잖아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오은 :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 궁금해 하고, 상상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결국 마지막 종착역은 자기 자신이에요. 물론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고 바로 느끼는 건 아니에요. 켜켜이 쌓이고 쌓여서 나를 구성하는 거니까요. 결론을 내자면,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 자기 자신을 이해할 준비가 된 사람이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큰 결의, 뚜렷한 목적을 갖고 <책읽아웃>을 시작한 게 아닌데, 어느새 생활의 큰 부분이 됐잖아요. 일단 저는 <책읽아웃> 스튜디오가 있는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을 들어서면 마음이 놓여요. 왜냐면 나의 일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주고 호의적인 동료들과 녹음하기 때문이에요.

 

오은 : 맞아요. 되게 힘든 날이었는데, 스튜디오에서 이지원 PD님, 캘리님, 프랑소와 엄 님이 활짝 웃어주는 거예요.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위로가 됐어요. 이게 진짜 팀워크가 아닌가 확신했어요.

 

<책읽아웃>을 진행하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김하나 : 너무 많은데요. 일단 요즘은 어딜 가도 “<책읽아웃>, 잘 듣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어요. 저를 굉장히 친근하게 여기는 모습이 되게 감사해요. 저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가져주시고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주시는데, 놀랍고 감사하고 뿌듯하고 그렇습니다.

 

오은 : 그동안 시인, 저자로서 북토크 행사를 참여한 적이 많았는데요. 일회성 만남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내가 존재감이 있을까,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1년 남짓 팟캐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방향이 조금 바뀌었어요. ‘어떻게 하면 오늘 모신 게스트를 빛나게 할까’가 저의 가장 큰 목표가 된 거예요. ‘오늘 내가 빛나야 해’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빛나는지 보여줘야 돼’로 방향성이 이동한 거죠. 그리고 후자가 훨씬 더 즐거운 일이라는 걸 1년 동안 <책읽아웃>을 진행하면서 느꼈어요. 게스트가 집에 돌아갈 때 “오늘 즐거웠어요”라고 환하게 웃어줄 때, 더없이 좋더라고요. 내가 빛나고 싶다는 마음에서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으로 포지션이 바뀐 것 같아요.

 

김하나 : 정말 백 퍼센트 공감해요. 저는 작가와 제가 이중주를 연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게스트로 나온 작가 옆에서 툭툭 이야기를 건네면서 화답하는 반주를 하는 거죠. 우리가 궁금한 사람을 사석에서 만나면, 의외로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책읽아웃>은 질문지도 있고 마이크도 있으니까 진행자 자격으로 제가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있는 거예요. 물론 저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기 때문에 방송이 끝나고 다음에 만나면 굉장히 쑥스럽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죠. (웃음)

 

각각 레전드 편을 꼽아 주시겠어요? 최근에 진행한 에피소드들 중에서요.

 

김하나 : 일단 허지원 교수님 편, 반응이 정말 대단했어요. 아마 최고 순위를 기록한 에피소드였던 것 같은데요. 교수님 특유의 조근조근하면서 특유의 말투가 진짜 매력 있었죠. 방송이 나가고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를 읽었다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또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를 쓴 노지양 번역가님,  『쾌락독서』 의 문유석 판사님 편도 반응이 좋았어요.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는 『이슬아 수필집』 의 이슬아 작가님, 가장 최근에 출연하신 『팟캐스터』 의 셀럽 맷님 편을 추천하고 싶어요. 저도 모르게 나왔던 환호, 리액션이 가장 많았던 편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두 분 모두 젊은 저자시잖아요. 상대적으로 나이는 적지만 삶의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하신 분들이라서 더욱 존경스러웠고 무한한 응원을 보내고 싶었어요.

 

‘김하나의 측면돌파’와 ‘오은의 옹기종기’는 초대한 게스트를 인터뷰하지만, ‘삼천포책방’과 ‘어떤, 책임’은각각 3명의 진행자가 대놓고 책을 영업하는 시간입니다. “이 책 좋으니까 꼭 사라”고. “안 사면 후회하실지 모른다”고. 실제 영업 당해서 산 책도 많으시죠?

 

오은 : 엄청 많죠. 저는 녹음하고 집에 가는 길에 바로 책을 주문한 적도 많고, 일단 책은 좀 사놓고 보는 편이라. (웃음) 감당하지 못할 만큼 살 때도 있어요.

 

김하나 : 저는 책을 살 땐 신중한 편이에요. 일단 집에 쌓인 책을 다 해결하기도 벅차서요. 요즘엔 전자책을 많이 보려고 해요. 최근에 ‘크레마’를 선물 받았는데 사용감이 굉장히 좋아서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어요.

 

라디오, 팟캐스트를 전혀 안 듣는 독자들과는 사실 접점을 찾기 어려운데요. 책 영업을 하듯이 <책읽아웃>을 영업해보신다면요?

 

김하나 : 일단 한 번이라도 들어보면, 오 새롭네? 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요?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을 수 있는데, 아무리 재밌어도 실제 경험보다 즐거울 수는 없잖아요. 팟캐스트를 듣고 난 뒤든 전이든, 소개한 책과 함께 들으면 재미가 두 배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오은 :  ‘책읽아웃’의 ‘책읽’은 ‘책을 읽다’의 줄임말이잖아요. ‘아웃’은 밖으로 분출하는 어떤 것이고. 책을 읽고 나의 내면이 위로가 됐다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그 책이 좋았다는 걸 발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바로 <책읽아웃>을 만드는 저희들의 정체성이고요. 주변에 추천을 해도 좋고 짧은 리뷰, 감상문을 써도 좋을 것 같아요.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아웃’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런 분들이 <책읽아웃>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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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도 꽤 재밌을 수 있어요


<책읽아웃> 팬들이 특히 오래 기다린 책입니다. 초고 제목도 같았나요?

 

김하나 :  아, 처음엔 정말 제목이 많았어요. ‘동거 혁명’ 같은 후보도 있었고. 황선우 작가와 7분 정도 브레인스토밍을 해서 나온 것들을 출판사에 보내드렸는데, 지금 제목을 골라주셨어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가 가장 직관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같은 집에 살고 있는 황선우 작가와 ‘동거’하게 된 과정이 정말 구체적으로 담겼어요. 굉장히 솔직한 에세이예요.

 

김하나 : 너무 다 보여드린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지만 쓰면서 정말 재밌었어요. 책을 쓸 때 보통 외롭잖아요. 물론 제 글을 봐주시는 편집자님이 있지만, ‘이 글이 편집자님한테 보낼 만한 정도의 글인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데, 이번 책은 한집에 같이 사는 사람과 쓴 책이니까요. 한 편 쓰고 보여주고 피드백 받는 과정이 있어서 무척 든든했어요. 이런 식으로 하면, 더 많은 분량의 글도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읽다 보니, 두 분의 글 톤이 상당히 닮아 있더라고요.

 

김하나 : 그런가요? 저는 황선우 작가의 글을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독자이기도 해요. 일단 글의 리듬감이 훌륭해요. 잘 읽히지만 빨리 쓴 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밋밋하지 않은 글이 되기 위해서 두 번 세 번 머리를 굴리고 고치고 또 고친 글이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글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니까 정말로 그렇더라고요. 되게 많이 놀랐어요.

 

또래 여성이 한 집에서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며 동거한다. ‘ 분자 가족의 탄생’이라고 지칭했어요. 이 책의 독자층을 상상해보면, 일단 현재로서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고, 혼자 살기는 심심하고,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살긴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김하나 : 비슷할 것 같아요. 하지만 꼭 싱글 여성들을 위한 책도 아니에요. 그냥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어떤 타인과 내 삶을 굉장히 가깝게 공유한다는 건, 힘들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혼자 사는 일이 훨씬 가뿐할 수 있는데요. 둘이 사는 삶이 더 재밌고 즐거울 수도 있어요. 무엇이 더 좋다 옳다가 아닌, ‘이렇게도 살 수 있어요’ 정도의 이야기예요.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쓱 보여드린 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임을 다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삶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김하나 :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거예요. 지나치게 골똘해지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드는 거죠.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 얘기로도 어떤 울적함이 사라질 수 있어요.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어지기도 하고요.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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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고 싶다

 

작년에 두 권의 시집( 『왼손은 마음이 아파』 ,  『나는 이름이 있었다』 )를 거의 동시에 냈어요. 반년이 지난 지금 시집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오은 :  ‘힘든 시기, 아픈 시기를 보냈구나’하는 슬픈 생각과 어떻게든 여기로 건너왔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이 둘 다 들어요. 시집에 대한 평가는 제 몫이 아니지만, 저 두 권의 시집 덕분에 저는 ‘다음에 쓸 시’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거든요. 제 책장처럼 빼곡한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 갈피를 만들려 애쓴 흔적 같아요. 심호흡 같은, 기지개 같은.

 

일요일에 시를 쓰시잖아요. 요즘은 주로 어떤 시들을 쓰나요?

 

오은 :  고백하자면 작년 두 권의 시집이 출간된 뒤 일요일에 시를 쓰지 못하게 됐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시를 쓰지 않고 있어요. 아버지가 위독한 상태였고,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감정의 진폭이 커졌거든요. 나를 찾는 것, 일상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상태에서 쓰는 시가 좋을 리도 없고요. 요즘은 일상으로 다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시기예요. 올해 안에는 원래의 패턴을 되찾아야겠지요.

 

시인으로서의 오은, 독자로서의 오은이 궁금해요.

 

오은 :  공통점은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시를 읽다 보면 화자에 감정이입이 되잖아요. 시에 등장하는 동식물이나 사물을 응시할 수도 있고 특정 단어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나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는 귀중한 시간이죠. 쓰는 사람으로서는 내가 지나쳤던 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에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 사는 생면부지의 누군가에 대해 시를 써도, 그 안에 어쩔 수 없이 제가 담겨 있더라고요. 그것들은 대부분 들키고 싶지 않은 나, 비루하고 부끄러운 나, 초라한 나인 경우가 많아요. 쓰면서 나를 알아가게 되는 셈이죠.


사람을 좋아하잖아요. 잘 챙기고 잘 나누고. 어떻게 이렇게 손을 잘 내미는 사람일까요? 또한 잘 잡아주나요?

 

오은 :  손을 잘 잡아주는 편이에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힘들고 지쳐 있으면 저 또한 무기력해져요.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제 발걸음도 경쾌해지죠. 그들이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제가 필요하다는 거잖아요. 덥석 잡아야죠. (웃음) 손 내미는 일은 악수를 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너의 순간과 나의 순간을 만나게 하겠다, 마주 잡은 손에 서로의 온기를 전하겠다는 거잖아요. 힘들 때마다 그 손들을 떠올려요. 만날 때 반가워서 맞잡고 헤어질 때 아쉬워서 흔드는, 그 아름다운 손들.

 

만약에 일간지 1면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어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오은 :  보잘것없는 것들, 지나치기 일쑤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고 싶어요.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은 저것들을 들여다보는 데서 발견되거든요. 커다란 꿈과 목표가 사람들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소소한 즐거움이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니까요. 나무 아래 서 있을 때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순간, 배달용 오토바이에 붙어 있는 노란 리본 스티커을 발견하는 순간, 어린아이의 입에서 놀라운 문장이 튀어나오는 순간 같은 거요. 어쩌면 저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은가 봐요.

 

어떤 시인,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묻고 싶어요.

 

오은 :  시가 좋든 나쁘든, 이름을 가리고 읽었을 때 읽는 이들이 ‘오은이 쓴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 스타일을 공고히 다져야겠지요. 저는 스타일이 ‘지문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고 그림자처럼 신체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거든요. 하나 더 있다면 늘 ‘지금, 여기’를 응시하는 시를 쓰고 싶어요. 사람 오은은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비단 사회문제뿐 아니라 마주한 사람의 예사로운 말 한마디, 낯선 사람이 건넨 따뜻한 인사, 어제와 달라진 거리 풍경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요.

 

다음 시집은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요? 예상하는 시기가 있나요?  

 

오은 :  2022년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작년에 두 권의 시집을 냈잖아요. 울지 않기 위해 썼지만, 그 때문인지 출간 이후에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다음 시집에는 지금껏 오은이 해왔던 것과 새로운 어떤 것이 다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찾는 시간도 필요할 거고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실험의 방향도 확실히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좌충우돌하는 시간을, 피하지 않으려고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공저 | 위즈덤하우스
둘이 살기 시작하면서 겪은 웃픈 에피소드들, 피할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와 그 해결 방법 등 결혼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공동체든 한집에 사는 사람들이 겪게 될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담았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오은 저 | 아침달
시인이 제시하는 BGM을 재생하고, 그 리듬까지 독서인 양 읽어 내려가다 보면, 화자의 감정에 동화되고 나아가 그 감정에 눅진하게 녹아드는 경험에 이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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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등단한 순간과 시인이 된 순간이 다르다고 믿는 사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정말이지 열심히 한다. 어떻게든 해내고 말겠다는 마음 때문에 몸과 마음을 많이 다치기도 했다. 다치는 와중에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삶의 중요한 길목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던 일을 하다가 마주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쓸 때마다 찾아오는 기진맥진함이 좋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 때문이 아니라, 어떤 시간에 내가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엉겁결에 등단했고 무심결에 시인이 되었다. 우연인 듯,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지만, 그것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글쓰기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기에 20여 년 가까이 쓸 수 있었다. 스스로가 희미해질 때마다 명함에 적힌 문장을 들여다보곤 한다.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항상’의 세계 속에서 ‘이따금’의 출현을 기다린다. ‘가만하다’라는 형용사와 ‘법석이다’라는 동사를 동시에 좋아한다. 마음을 잘 읽는 사람보다는 그것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와 산문집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너랑 나랑 노랑』, 『다독임』이 있다.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란作亂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