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을 맡은 마르코 리빙스턴.
3월 22일, <데이비드 호크니展> 개관을 기념해 『데이비드 호크니』 의 저자 마르코 리빙스턴의 강연회가 서울시립미술관 세마 홀에서 열렸다.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는 <데이비드 호크니展>은 아시아 지역에서 첫 번째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생존작가 중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은 회화, 사진, 판화, 일러스트레이션 등 방법과 소재를 가리지 않고 모든 부문을 실험하기로 유명하다. ‘수영장’ 시리즈로 이른 나이에 작가로서 독창적인 영역을 획득한 데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실험을 멈추지 않는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개관일 이후로 서울시립미술관에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시회 연계 프로그램으로 열린 마르코 리빙스턴 강연회에서는 주로 1990년대 들어 변화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 세계와 삶을 조명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와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대화하며 연구했던 미술사학자인 마르코 리빙스턴은 호크니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원인을 미술사적 레퍼런스와 개인적 맥락 모두에서 풀어주며 전시에 대한 기대를 한층 고양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시도들
호크니는 1970년부터 LA에 거주하다 1990년대 들어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다. 1996년에서 1997년까지 호크니는 주로 유채 캔버스에 실제 크기에 가깝게 친구와 지인, 가족 초상화를 그렸다. 따뜻한 색을 사용했지만, 작품 속 사람들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
“초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친구인 실버는 암을 치료받은 직후였고, 호크니의 어머니인 로라 여사도 페인팅에 모델로 등장합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티스트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거나 서 있는 채로 가끔 관객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그림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아티스트 간에는 무언의 소통이 있고, 이 소통이 이어져 그림의 대상과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 사이에도 관계가 생성됩니다.“
1999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전시회에서 호크니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호크니는 도록에 대상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만 어떻게 그렸는지 안 나와있다는 것에 실망하고 직접 연구와 조사에 나서 루시드 카메라를 발견한다.
“1807년 특허까지 받았던 루시드 카메라(lucid camera)는 종이에 시각적인 이미지를 보여줘 투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입니다. 호크니는 이것을 이용해 280개의 초상화를 완성합니다. 이 중에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직원들을 한 세트로 한 작품도 있습니다. 갤러리에 있는 예술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여로 직원들을 그린 것이죠. 이처럼 호크니는 관찰을 멈추지 않으며 다시 그림으로 돌아갔을 때 렌즈나 사진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림을 그릴 때 관찰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훈련했는데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계속해 사진 기술을 사용하고 1983년에 화학적 사진 기법을 넘어선 기법들을 발견했습니다.”
호크니는 카메라의 시대는 이미 컴퓨터로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로 발전하고 있고, 우리는 이제 사진 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 안에 있는 시각적 근거를 사용해 호크니는 카메라에서 그림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갔다.
“호크니는 사람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유명하죠.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그린 10여 점의 초상 수채화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오는 형태의 초상화 중에는 이성 커플뿐 아니라 동성 커플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파트너 로비와 그의 이복동생을 같이 그린 그림도 남아있고요. 이처럼 호크니는 여러 종류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점심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그림을 그렸죠. 수채화는 실수가 그대로 드러나고 덧칠이 어렵기 때문에 미리 하이라이트는 어디에 할지 미리 놔두고, 미리 모든 것을 체스를 두는 것처럼 계획해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수채화를 그리던 시간을 지나 유화로 돌아왔을 때, 초상화뿐 아니라 캔버스 위의 풍경화에도 수채화를 그렸던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호크니는 캠브룩스 스튜디오 정원의 꽃과 홀랜드 공원 등 런던의 주변을 그리기 시작했다. 영감을 얻기 위해 가까운 지인과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등을 여행했다. 여름에 일광이 좋은 곳이었다.
“노르웨이와 스페인, 아이슬란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요크셔 동부의 훨씬 더 부드러운 빛을 그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요크셔는 호크니가 태어나고 10대를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2003년 미국 비자가 만료되고 파트너와 영국에 머물면서 호크니는 가까운 곳, 자신이 있는 곳에 필요한 모든 영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2004년에는 ‘Midsummer : east Yorkshire’라는 이름의 연작을 아이패드 그림, 유화 등 여러 기법으로 그렸습니다.”
2003년부터 호크니는 어머니와 마지막 몇 년을 같이 보낸다. 그동안 그린 그림에는 인간은 재생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내용이 표현되었다. 또한 수채화는 마치 아마추어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나 혹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나 사용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계속해서 다양한 색채로 바뀌는 빛을 표현해 심지어 포장도로 같은 단순한 소재도 다양한 시각으로 변화해 그렸다.
“2년 동안 수채화를 그리고 다시 한번 오일 페인팅으로 돌아간 게 흥미로운데요. 수채화와 비교해 유화는 쉽게 바꿀 수 있고, 두께나 투명도를 조절하고 덧칠할 수 있습니다. 어두운색 위에 밝은색을 덧칠하는 것도 가능하죠. 호크니는 수채화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1세기 전 인상주의 화가처럼 이젤을 세우고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가 부피감을 살리면서 빛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은 호크니의 그림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2005년 말 호크니는 47개의 유화를 그리고, 3X4피트 규격의 캔버스 여러 개를 합쳐 거대한 그림을 완성한다. 관람자가 여러 시점의 계절에 숲에 가 있었다는 기분이 들도록, 작가의 기분을 그대로 전달받는 그림이다.
“규격을 키웠던 이유는 경이로움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친밀함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호크니는 기존의 세워놨던 규칙을 깨뜨리고 점차 여러 옵션을 활용하게 됩니다. 사진을 쓰다 스튜디오로 돌아가고, 바로 현장에 가기도 합니다.”
Woldgate Woods, Oil on canvas (six panels). ⓒ David Hockney, 2013
호크니 작품 중에는 아이패드와 태블릿 펜을 이용해 만든 작품도 있다. 컴퓨터와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고 이를 프린트하는 형식이었다.
“호크니는 친구와 동료들, 가족들을 컴퓨터를 활용해 그렸지만, 마치 전통적인 유화나 수채화처럼 본인의 앞에 그들을 앉히고 그렸습니다. 태블릿으로는 지울 수도 있고, 그림 위에 다시 덧그릴 수도 있었죠. 2008년 첫 번째 에디션 이후 구체화된 컴퓨터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캘리포니아 남부로 이주한 뒤 아이폰과 ‘브러쉬스’라는 앱의 가능성을 발견하죠. 화면이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호크니는 매일 신선한 꽃을 보내준다고 농담하면서 아이폰으로 꽃을 그려 지인들에게 보내곤 했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배울 때마다 너무도 깊이 빠졌던 그는 2012년 영상을 이용해 풍경을 기록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작품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기록용으로 시작한 영상 작업은 기법이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아홉 대의 HD 카메라를 자동차 앞에 설치해 어시스턴트가 운전하면서 사진을 찍어 아주 천천히 풍경을 따라 걸어가는 것처럼 느끼는 작품을 완성한다.
“화면이 워낙 많이 있어 관람객이 도로나 나무, 하늘 등 원하는 풍경에 집중할 수 있는 그림이었죠. 이처럼 영상을 통한 풍경화를 시작으로 더 큰 규모의 영상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큐비즘으로 돌아와 공간 안에서 동작이 동시다발적으로 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걸 표현하기도 하면서요.“
참가자와의 질의응답
1984년에 그린 석판화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봐오던 석판화와 다르게 강렬한 색과 부드러운 표현에 놀랐는데요. 호크니의 석판화 작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원근법에 대해 실험한 작품입니다. 멕시코 여행 중 차가 고장 나서 호텔에 갔는데, 정통적인 멕시코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보고 공간을 이동한다는 주제를 살리기 적당하다고 봤던 거죠. 예를 들어 호크니는 교토에서 정원을 걷는 발의 움직임을 보는 실험을 작품활동에 접목했습니다. 여러 원근법에 따라 공간에 변화를 주고 과장된 색채를 사용해 건물이 다가오는 듯한 인상을 줘 몰입할 수 있게 합니다.
어떤 남자가 더운 여름 계절에 수영장에 뛰어들고. 계절에 맞지 않게 딱딱하고 갖춰 입은 복장을 하는 사람이 그걸 바라보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호크니 스스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는 감정을 표현한 건지, 호크니 자신을 대입한 건지 궁금합니다.
수영장이 나오면 바로 LA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작품은 남부 프랑스가 배경입니다. 토니 리철슨의 집에서 머물며 그렸던 작품이고, 물 안을 들여다보는 남자는 피터스 레신저라는 호크니의 파트너입니다. 1966년부터 1971년까지 파트너 관계로 지나 헤어짐의 감정이 남아있을 때 그린 그림입니다. 원래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옛 파트너를 대상으로 삼아 같은 포즈를 취하도록 하고 그렸습니다. 완전히 다른 상황에 다른 시간에 있는 대상을 그림 안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작업 자체가 콜라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푸른 기타’라는 전시실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에칭 작품을 많이 전시했는데 다양한 색과 다양한 터치를 사용해 실험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호크니의 프린트 기법은 실제 예술가로서 굉장히 주요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림이 아니라 에칭으로만 작품을 만들었어도 유명한 작가가 됐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시리즈는 시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 시는 피카소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었습니다. 피카소 사망 이후 호크니는 자신의 위대한 멘토인 피카소를 기억하는 작품을 많이 냈습니다. 호크니는 알도 크롬랭크(Aldo Crommelynck)이라는 프린트의 대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 사람은 피카소를 위해 컬러 에칭 기법을 만들었지만 피카소는 그걸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호크니가 그 기법을 배울 기회를 갖게 되었고, 여러 색채를 이용해 에칭할 수 있게 되었죠.
호크니도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 호크니는 자신의 그림을 보는 관람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요?
지금 작품들이 나이가 들어 한 작품은 아닙니다. 서울에 전시된 건 젊었을 때의 작품이고요, 지금 그의 연령을 생각하면 잘 와닿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다른 사람을 어떻게 표현하고 대변할 것인지, 어떤 재료로 표현할지 고민하고 하나의 답을 찾고 거기 안주하지 않던 작가였습니다. 끊임없이 답을 찾아 나가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호크니는 작품활동을 한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우선 피카소의 영향을 들 수 있습니다. 테이트 미술관에서 열렸던 피카소 전시회를 호크니가 학생일 때 갔는데, 이후 예술가의 표본으로 삼고 따르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호크니는 계속 피카소와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피카소가 거의 다루지 않았던 작품이 풍경화였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주제였기 때문에 풍경화를 자주 그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호크니의 그림 중 강아지가 나오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 그림에서만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고 다른 그림은 관조적이고 떨어져서 보는 객관적이거나 차가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호크니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거리감이 느껴지고 차갑다기보다는 외로움이 느껴진다고 봅니다. 그저 상호 작용을 못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하기 꺼려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운 성격이죠. 또한 70년대 초반부터 청각에 문제가 있어서 레스토랑에 가거나 하면 제대로 듣지 못해 곤란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혼자 있거나 소수의 사람과만 어울리기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호크니의 작품은 진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죠. 자아가 강한 사람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갖기보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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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마르코 리빙스턴 저/주은정 역 | 시공아트
영국의 저명한 미술사가인 마르코 리빙스턴은 호크니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전문적인 분석을 통해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와 발전 과정을 추적하고 정리한다.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