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출간을 기념하여 진행된 저자 북 토크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일들이 쏟아지는 최근의 한반도와 동북아. 엇갈리는 듯 보이는 사건과 발언이 갈마들고, 다양한 국가와 행위자들이 나서고 있다. 바야흐로 격동의 시대, 지난해 세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잃어버린 11년’을 복구한 남북관계를 미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격변하는 동북아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민족의 협력을 통해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어나가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 만큼 평화번영과 통일의 방법과 방향은 국민 모두가 고민하고 동참하여 완성해야 한다. 통일과 북한에 대한 공부가 많이 필요한 시기, ‘실사구시’ ‘온고지신’ ‘상생협동’을 키워드로 남북경협, 북한경제를 30년 동안 연구해온 전문가 일본 테이쿄대학 이찬우 교수와 신간 『북한경제와 협동하자』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책에서 ‘자력갱생(자강력)’, ‘민족경제’, ‘사회적경제’를 키워드로 북한경제를 분석하셨습니다. 북한경제는 현재 어떠한 상황이며,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올바른 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북한 경제가 현재 잘 돌아가고 있다고는 김정은 위원장을 포함해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겠지요. 미국을 위시하여 일본과 한국이 전면적인 경제제재를 하고 있고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로 중국까지도 경제제재를 하고 있는 것은 북한경제에 큰 압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압력으로 인해 북한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북한경제의 붕괴, 더 나아가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북한경제는 한국경제와 달리 수출지향적 공업화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내수 중심의 민족경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지향해 왔습니다. 그래서 대외경제관계가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북한 정부가 자력갱생을 초기부터 추진했고 지금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도 자강력이 경제의 중심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국내 자원인 석탄과 전력, 지하자원을 가지고 자체의 힘으로 버티고 발전해보자는 것이지요. 원유가 나지 않고 생산재가 부족하고 원료 부품도 부족한 상황에서 필수적인 물품을 국제사회와 교류와 협력을 통해 보장하려 하지만, 외화조달원이 제재로 끊기고 있어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경제가 붕괴상태로 가지 않는 또 하나의 요인은 실재하는 사회적경제입니다. 국가가 사회주의적 보장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경우에도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시장은 물론이요 자체의 자주적인 조직 질서를 협동조합 등을 통해 유지하면서 상호부조의 협동 질서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사구시 측면에서, 북한경제와 관련하여 남측에서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북한경제라고 하면 공산주의이고 스탈린 식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전면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남한 사회에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공산주의를 헌법에서 삭제하였고, 사회주의를 실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소비재 부문, 지방 공업 부문을 시장의 기능을 활용하여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집단주의의 틀을 벗은 중국식도 아닙니다. 북한은 농촌에서 협동농장의 틀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인민공사 집단주의가 내려먹이기 식 관료적 실시로 실패한 데 비하여 북한은 주민들의 자주적인 농촌협동조합이 협동농장으로 견인된 결과로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협동농장의 운영에서 평등주의라는 잘못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이를 개혁하여 농민들의 자주적인 영농의식을 일깨우려는 포전 담당책임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경제는 어떤 고정된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평양의 궤도전차, 2018년
남측에서는 남북경협을 공리공영을 위한 상호 협동 과정으로 이해하기보다 ‘퍼주기’라고 오해하면서 비용 걱정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람직한 남북경협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남북경협은 전체적으로 보면 ‘퍼주기’는커녕 ‘퍼오기’에 가까웠습니다. 개성공단의 경험은 투자기업에게는 폐쇄라는 정치적 리스크만 없다면 땅 짚고 헤엄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에게 주는 임금이 중국 노동자의 임금의 1/5 이하에 불과한 수준임에도 그 돈이 북한 당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급된다는 것만 가지고 퍼주기고 핵개발에 쓰인다고 박근혜 정부가 공단을 폐쇄하였습니다.
앞으로의 바람직한 남북경협의 방향은 남북한의 산업간 상호 보완성을 확대하고, 균형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며, 주민생활의 수준을 공동으로 높이고, 남북이 협력하여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①보완, ②균형, ③협동, ④경쟁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완이란 남북 간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보완하는 ‘유무상통’이지요. 균형은 한반도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 북한경제의 생산력 향상,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남북연계(육로 확충, 전력 공급, 해상 항로 연결), 산업표준체계 공유, 한반도의 균형 있는 산업 배치 같은 부문에서 협력하는 것입니다.
협동은 북한에 협동적 소유를 기초로 하는 협동단체와 협동농장이 주민의 생활 수준을 자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도록 남북이 협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생산협동조합이 생산하는 다양한 물품을 남한의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이나 생협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역방향으로 남측 생산품을 북측의 협동단체 직매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생산 및 유통에서 협동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쟁력은 남북이 협력하여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가진 최대의 생산요소는 자립의 원천인 기술노동과 자원이고 남한은 수출형 중화학, 전자, IT 위주의 구조입니다. 경쟁력은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산업 발전도 함께 추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현재의 산업구조 내에서 고부가가치를 확대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며, 장기적으로는 신 성장산업을 중심으로 한 구조 재편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적정한 ‘현금흐름(Cash Flow)’과 ‘고용’을 확보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범용 산업부문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품질과 가격에서 경쟁력을 가진 산업이 보존되고 현금창출원(Cash Cow)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전략적 산업 부문에서 남북이 협력합니다. 전략적 산업이라 하면 첨단산업을 떠올릴 수 있지만 나라와 민족의 미래 경제를 지키는 산업이 전략적인 것입니다. 남북이 함께 전략성을 갖는 산업으로는 에너지 및 소재 그리고 식량 분야가 있습니다.
남북 협력과 통일 과정에서 민족 전체 차원에서 중요한 산업은 무엇인지요? 그러한 관점에서 남측이 경제 분야에서 준비해야 할 것으로는 무엇이 있는지요?
민족 전체로 중요한 산업은 전략성을 갖는 에너지 산업과 농축수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산업 발전 방향은 수입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300년도 더 쓸 수 있는 석탄이 북한에 있습니다. 석탄의 청정화 기술을 남북이 함께 발전시켜 공유하고 전략적으로 남북한이 에너지 자립을 이룩하는 협력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농축수산 분야는 더 말할 나위 없는 식량 자급입니다.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할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다른 나라에 머리를 숙일 이유가 그만큼 없어지겠지요. 이를 위해 남한은 농축수산 분야와 에너지 분야의 기술협력을 위한 국가적 범위의 협력 리스트를 마련하고 재고 파악, 북한의 생산 능력과 부족 부문 파악 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최근 북측에서는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 발전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문이나 사안이 있다면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석탄에서 석유화학 산업의 하류 부문인 에틸렌, 프로필렌 같은 화학제품 생산뿐 아니라 가솔린 등 석유를 생산해내는 이른바 <탄소하나> 산업을 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이라고 북한도 크게 선전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를 안정적인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도록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석유가 안 나는 한반도에서 갈탄을 가스화해서 수소와 반응시켜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의 채산성 등을 더 연구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 4월 완공 예정인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 2019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에 대한 분명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지만, 북미 대립은 아직 해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 세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통일의 첫 걸음을 뗀 남북관계 역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등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한미동맹에 얽매인 남측에 대해 북측은 지속적으로 민족 문제의 “당사자”다운 모습을 주문하고 있는데요, 정부, 기업, 시민사회에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을 겁니다. “미국에 대해 할 말하고 자주적인 행동을 하라”라는 당부를 쉽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정부로서 여러 가지 요인들을 더 생각하다 보니 우선은 미국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책의 우선순위로 한국 주도를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당사자의 다른 표현입니다. 한국이 주도하는 모습이 한미동맹 때문에 미국 주도로 되어버린다면 이는 정책의 한계입니다. 미국과 협의할 사항과 통보할 사항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안을 협의한다면 협의가 아니라 지시를 기다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현재 정부의 상태가 그런 모습으로 북한에 비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기업과 시민사회에 리스트를 제시하고 할 수 있게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기업과 시민사회도 또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리스트화해서 정부나 지자체와 협의해야 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면 결국 미국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북미관계 진전에 모든 걸 맡기고 기다리는 게 해법이라면, 한국 정부와 사회는 할 일이 없습니다. 그건 매우 슬픈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남북경협 전문가로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평화와 통일이 실현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평화와 통일이 안 되면 일자리는 더욱 사라집니다. 한국경제는 지금 전환기입니다. 3D 업종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종사하고, ‘고등’ 실업자들이 넘쳐납니다. 중소기업은 이윤율 하락으로, 대기업은 수출 악화로 고용을 늘리지 않습니다. 개방경제를 외쳐왔던 미국조차,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호무역으로 가고 있고 해외에 나갔던 투자기업을 자국으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에너지 자급이 되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는 바야흐로 개방경제가 벽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물론 개방경제가 유지되어야 한국경제가 살아남습니다. 폐쇄경제로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자립형 개방경제는 젊은이들에게 힘이 됩니다. 무엇을 개방하고 무엇을 자립해야 하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한국경제를 에너지에서 자립을 추구하고 부존자원과 범용기술 그리고 신기술을 종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민족경제공동체로 발전시켜 넓은 시장과 튼튼한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줍니다. 북한과 함께 보완, 균형, 협동의 정신으로 경쟁력을 갖춘 평화경제체제를 만든다면 1억 명 내수시장 규모의 소비력과 생산력을 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긴장과 논란에 휩쓸리기보다는 장기적인 평화경제의 이점을 생각하는 것이 젊은이들이 가질 꿈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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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와 협동하자이찬우 저/라이프인 기획 | 시대의창
상황이 갖춰졌을 때에나 비로소 움직이겠다는 수동적인 발상을 버리고 남과 북이 평화와 통일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길을 열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