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 “이제 보니, 모든 시는 미완성이에요”
6년 동안 쓴 시를 묶은 것이기 때문에 저도 6년 전에 어떤 심정으로 시를 썼었는지 가물가물해요. 나는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묶고 보니 사랑 이야기가 꽤 많더라고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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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양파 공동체』  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날카로운 개성의 시편들을 보여 준 손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가 <민음의 시> 256번째 시집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섬뜩하고 생경한 이미지를 더욱 단단하게 제련됐다. 그것들은 사랑과 작별, 다시 사랑함의 순환 혹은 삶과 죽음, 다시 태어남과 살아감의 순환 속에서 더욱 깊은 감정의 진폭을 품는다.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는 살아 있기에 고통스럽고, 아프기에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아름답고 참혹한 기록지가 될 것이다.

 

시인 손미는 엄마 없는 염소가 나무에 묶여 있는 것을 보며 슬퍼하는 아이였다. 이런 감성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수학도 싫고 체육도 싫고 규칙도 싫었다. 창가에 앉아 낙서하고 편지를 쓰다가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소설 쓰려고 입학한 문예창작학과에서 숙제로 쓰던 시가 점점 좋아졌다. 그러다가 2009년 시인이 됐다. 5년 만에  『양파 공동체』 라는 시집도 냈다. 시 쓰고, 비밀스럽게 소설도 쓰고, 꿈꾸고, 산책하고, 식물을 기르며 지내고 있다. 매일 걷는다.

 


『양파 공동체』  이후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입니다. 그사이에 시와 시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큰 변화는 없었어요.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고, 가끔 여행가고, 연애하고, 시 쓰고, 산문 쓰고, 마감 닥쳐서 불안에 떨면서 놀고, 또, 쓰고, 읽고, 그러면서 6년이 지났어요. 시 창작 수업도 하고, 취직도 하고, 연애를 끝냈다 시작하면서 시간을 보냈네요.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산문집을 한 권 냈다는 게 가장 큰 일일까요?

 

의문형으로 끝나면서도 무언가 다짐하는 듯한 문장의 제목이 인상적인데요, 시집 제목은 어떻게 결정이 되었나요?

 

먼저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라는 시를 완성한 배경부터 말씀드릴게요. 2년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할아버지를 화장하고 뼛가루를 쓸어 담는 모습을 보았어요. 장마 때라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할아버지의 유골을 묻지 못하고 (봉분 없는 가묘가 있었어요) 납골당에 일주일을 모셔 두었죠. 그 일주일 동안 저는 또 생활로 돌아와 사람이랑 밥도 먹고 사람이랑 전화도 하고 일을 하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그런 생각에 이 시를 쓰게 됐어요. 쓸 때만해도 이 시가 표제작이 되리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시를 쓰게 된 사연과는 별개로 이 제목이 연애시 같아서 시집 제목으로 하지 않으려고 했죠. 다양한 시집 제목 후보들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다른 제목으로 하려고 결심을 하고 있던 찰나 원고를 미리 보신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죠. 시집 제목은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주셨어요. 그날로 바로 마음을 결정했어요. 그래서 이 제목으로 시집이 나오게 됐습니다. 


시집을 묶으며 어떤 시에 가장 끌렸나요? 혹은 어떤 시에 가장 고민이 많았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물의 이름」을 좋아해요. 이 시를 쓸 때는 시집 원고 묶을 때 버리지 않을까 하면서 발표했었는데, 중간에 많이 고쳤어요. 수영을 배우면서, 물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왔고 그 경험을 녹인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애정을 가지고 수정하고 수정했죠. 아직 수영을 잘 하진 못하지만 기술 하나를 배운 것 같고, 그래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한 것을 보여 준 것 같아서 이 시를 참 좋아해요.

 

시집을 넣을까 뺄까 고민되는 시는 거의 버렸어요. 그 중 「질투」, 「산호 여인숙」과 같은 시는 뺄까 말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지라 빼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편집자께서 권유하심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남겨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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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집을 ‘사랑(연애) 시집’이라고 표현해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어떤 시인은 본인의 시가 사랑과 연애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는 데에 부담감이나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던데요.

 

6년 동안 쓴 시를 묶은 것이기 때문에 저도 6년 전에 어떤 심정으로 시를 썼었는지 가물가물해요. 나는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묶고 보니 사랑 이야기가 꽤 많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죠. 아 내가 이 6년을 지나는 동안 지독히 사랑하고 그 사랑에서 벗어나려 애썼구나. 사랑이 실패한 이유는 나에게도 있고 그 사람에게도 있겠지만, 그때는 참, 불안했었어요. 이제는 그 시간들을 통과해 왔어요. 잊을 건 잊고 남겨 둘 건 남겨 두려고 해요. 연애 시집으로 읽혀도 좋아요. 이 시집을 엮는 동안 내가 통과해 온 불행이 그래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불러준 뮤즈가, 하필, 슬픈 연애였을 뿐이니까요.


어떤 시간과 공간이 손미 시인에게 시적인가요? 시적인 순간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지, 아니라면 시적인 순간을 마주하기 노력하는 편인지도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많이 갔어요. 한 곳에만 붙잡혀 있는 걸 못 견뎠어요. 어떻게든 가려고 했죠. 기차에 올랐고 버스에 올랐어요. 비행기도 탔고요. ‘나’ 밖의 세상에서 낯설게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쓰고, 저장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비슷한 풍경 앞에서는 감흥이 안 와요.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참 슬펐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인데, 익숙하더라고요. 사실 하도 많이 다녀서 거의 다 가 본 곳이기도 해요. (국내는요)

 

생활하다 보면 자꾸만 감각이 죽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걸 깨우려고 미술관도 가고, 책도 보고, 인문학 수업도 들으러 다니고 있어요. 요즘 새롭게 하는 일은 산책, 숲길 걷기 등인데 그것도 주말에 잠깐 짬을 내서 해요. 오래 걸어요. 느리게 걸어요. 그러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이 보여요. 동네 하천에 꽃잎이 어떤 모양을 그리며 떠가는지, 꽃잎이 하천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며 떠가는 모습은 행성들이 떠가는 것 같아요.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만나면 감각이 저절로 깨어나는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요. 자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 눈빛이 반짝이는 사람들을 만나요.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다 같은 이야기를 동년배 시인이라면 어디서든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무엇이라 답하는지요. 스스로의 시도 어렵다고 생각하세요?

 

제 시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는데, 첫 시집 내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 그걸 불쾌함으로 표현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좋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특히 시 창작 수업에 가서 제 시 뿐 아니라 요즘 현대시를 보고 많은 분들이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세요. 그래서 저는 첫 시간에 얘기해요. 알고 있는 시인이 누구냐고요. 그럼 김소월, 백석이다. 그러세요. 그 분들의 시는 100년 전의 시다. 지금 100년 전처럼 살고 계시냐고 묻죠. 그럼 아니라고 하세요. 시에도 10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 낯선 것을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거다. 어려운 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안 배운 거다. 그러니까 읽어 보면 된다. 불편해야 넓어지는 거다. 라고 얘기하지요.


제 시의 어려움 정도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계속 변하고 달라지고 있으니 내 시도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 변하고 달라지겠지요. 그게 (상대적으로) 쉬워 보일 수도 어려워 보일 수도 있어요. 제 시는 계속 달라 질 테니까, 어렵든, 쉽든(이 또한 상대적으로). 시 한 편을 썼을 때, 내 스스로 희열이 느껴지는 시를 쓸래요. 진심이면 언젠간 닿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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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에게 시란, 시집이란 무엇인가요. 이번 시집을 중심으로 답해 주실 수 있나요.

 

돌아보니, 부끄러운 시간들이 생각나는데, 20대 때는 시 안 쓰면 죽을 것 같았어요. 신춘문예 떨어지면 죽어야지 다짐도 했었죠. 객기였어요. 나를 전부 걸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데 하필 그게 시였어요. 그러니 시를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시가 완성되고, 나 또한 완성될 것 같았죠. 이제 보니, 모든 시는 미완성인데요. 만약 시간을 돌려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힘 좀 빼라고, 시에 너의 모든 가치를 걸지 말라고. 너는,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다고. 그러니, 시의 보이는 완성도에 따라 (합평의 결과에 따라) 너 자신을 미워하지 좀 말라고.

 

시는, 그리고 시집은 나의 부분을 떼어 부수고 압축해놓은 유골함 같아요. 한 시절이 거기 들어 있어요. 처음 시작할 땐 이런 걸 몰랐어요. 지금 당장 역작을 써야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느껴요. 내가 시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 시가 나를 완성해가고 있구나. 빈틈 많고, 긴장하고, 경직된 나를 시가 완성해주고 있었구나.


이번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가 세상에 나왔어요. 과연 낼 수 있을까 의심했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나왔어요. 시집을 내고 나면 이상해요. 나는 이미 49재까지 다 치루고 묻어둔 유골함을 다시 열어보는 기분이에요. 누군가는 현재형으로 시집을 읽을 거에요. 지금, 여기서, 생생하게 이별하는 연인을 목격할테죠. 그러니 이제 이 시집은 독자의 것이에요. 나는 관여할 수 없어요.


오래 쓰고 싶어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계속 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편이라도 좋으니 진심을 다하고, 앓고, 불러오고, 찾고, 그렇게 조금씩 완성되는 시를, 시원하게, 쏟아내고, 그러고도 또 쓰고 싶은 말이 쌓였으면 좋겠어요. 시와 함께, 지구와 함께, 그렇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손미(시인)

 

소설 쓰려고 입학한 문예창작학과에서 숙제로 쓰던 시가 점점 좋아졌다. 그러다가 2009년 시인이 됐다. 5년 만에 『양파 공동체』라는 시집도 냈다. 시 쓰고, 비밀스럽게 소설도 쓰고, 꿈꾸고, 산책하고, 식물을 기르며 지내고 있다. 매일 걷는다.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손미 저 | 민음사
섬뜩하고 생경한 이미지를 더욱 단단하게 제련되었다. 그것들은 사랑과 작별, 다시 사랑함의 순환 혹은 삶과 죽음, 다시 태어남과 살아감의 순환 속에서 더욱 깊은 감정의 진폭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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