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뜨거운 여름> 이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제작해 지난 2014년 첫선을 보인 이 공연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설익은 꿈과 열정을 키워가는 청년들의 뜨거운 시절을 담고 있는데요. 민준호 연출이 직접 극을 쓴 데다 춤과 노래, 독특한 무대 연출로 주목받았던 공연입니다. 특히 전문 무용수와 함께 완성도 높은 안무와 움직임으로 기존 연극과는 색다른 무대를 선보였는데요. 이번 공연에는 현대무용가 김설진 씨도 참여해 더욱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그의 춤과 연기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데요. 공연 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김설진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처음 대본을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했어요. 낯간지럽고 어리숙하고. 그런데 저희가 그때 그랬던 것 같아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다 큰 줄 알고, 멋있는 줄 알고 내뱉었던 말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미숙하고 거칠죠. 그다지 근사하지 않았어요. 그걸 인정하니까 재밌더라고요.
등장인물들과 달리 김설진 씨는 학생 때도 꿈이 확실하지 않았나요?
90년대 후반에 고등학생이었는데, 꿈이 확실하지는 않았죠. 친구들끼리 있을 때 근사해 보이려고 꿈을 말했을 테고, 그래서 남들 보기에는 확실해 보였을지 몰라도 저는 그냥 눈앞에 있는 재밌고 좋아 보이는 걸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예요. 지금은 꿈이 확실하지만.
그렇게 연극도 하게 된 건가요?
민준호라는 사람과 같이 작업하려는 게 연극이 돼 버렸네요. 학교(한예종) 다닐 때부터 교류가 있었고, 같이 재밌는 작업을 해보자는 얘기는 많이 했는데 실질적으로 무언가 만들어보지는 못했거든요. 형은 저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저는 연기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서 지금 공연을 같이 하고 있어요.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에는 좀 익숙해졌나요?
그게 어떻게 익숙해져요(웃음). 무대는 항상 무섭고, 그런데 연기는 재밌어요. 연기가 사람들이 정해놓은 카테고리 안에서는 새로운 분야겠지만, 저에게는 조금 더 깊게 어디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적절한 단어로 표현을 못하겠는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리조또를 드렸더니 왜 죽을 만들었냐고 하시더라고요. 약간 그런 느낌? 분명히 다른 거긴 하지만 결국에는...
그래도 무대에서 언어로 연기를 하려면 기존과 다르게 준비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조금 더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요. 춤은 혼자 잘해도 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런데 텍스트가 왔다 갔다 하는 연기는 잘 들어야겠더라고요. 무용 공연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캐스트가 바뀌지 않는데, 이번에는 일산 공연까지 하면 세 명의 다른 재희와 만나니까 재밌고 신선한 경험이에요. 그래서 저의 새로운 목표는 야구로 치면 멋진 포수되기입니다. 직구든 변화구든 다 받아주고, 1 2 3루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김설진 씨가 연극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걸까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연기하고 있는 대훈이라는 인물은 어때요? 댄서를 꿈꾸는 캐릭터인데.
춤과 연관된 캐릭터라는 건 안 좋았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를 부를까’라는 생각은 들지만. 매체 연기할 때도 ‘안무하는 대신 역할 주세요, 역할을 줄 테니 안무해주렴’ 이런 식이거든요(웃음). 그런데 이번 극에서는 춤이 하나의 장치일 뿐 대훈은 주인공한테 꿈에 대한 건강한 자극을 주는 친구예요. 대훈 외에도 무대에서 다른 인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니까 재밌어요.
사람들이 정한 카테고리에서는 ‘현대무용’이 본업이잖아요. ‘현대’가 들어가면 춤도 음악도 미술도 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웃음).
그렇죠. 제가 생각하는 현대무용은 현시대, 동시대에 이뤄지는 자유로운 춤인데, 예술에 있어 ‘현대’라는 글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르네상스 시대에 다양한 예술이 쏟아졌듯이 정말 많은 것들이 풍성하게 터지고 있는데, 그걸 카테고리로 묶으려고 하니까 복잡해지는 거거든요. 그냥 내버려두면 될 것 같아요.
그 다양함을 지켜보는 대중이 아니라 표현하는 입장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르는 건 잘 안 해요. 예전에 그런 말을 들었어요. ‘너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적인 걸 표현해야 한다’고. 그런데 한국적이라는 게 100년 전의 한국인지, 삼국시대의 한국인지, 아니면 힙합과 국악을 함께 듣는 지금인지 모호하다는 거죠. 사람들이 말하는 보편적이라는 게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관심 있는 걸 하는 게 아니라 저의 개인적인 역사 중에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걸 꺼내고 있어요.
한국무용이나 발레도 늘 새로운 걸 추구하지만, 현대무용은 특히 ‘새로움’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도 고민이 많아요. 현대무용을 하는 입장에서 그런 건 부럽죠. 왜 맨날 새로운 것만 하래, 언제까지 새로운 것만 해야 하지(웃음)? 비보잉은 오랜 수련을 통해 어떤 동작을 만들면 시그니처 무브먼트가 돼요. 발레도 정해진 동작을 해내면 그 테크닉에서 톱이 되고, 체조도 자기 이름이 기술이름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현대무용은 했던 걸 또 하면 ‘지난번에 했던 거다’, 제가 만든 건데도 ‘자기 카피한다’는 말을 듣거든요. 동작에 있어서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발레처럼 같은 작품이 여러 차례 공연되지는 않나요?
11월에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 투어가 있어서 참여하는데, 공연이 2008년도 작품이에요.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물어요. 발레는 해마다 <호두까기 인형>이 공연되고, 장기 공연하는 연극도 많은데, 현대무용은 관객들에게 매번 새로워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 매일 같은 대사를 읊는 연극 무대에 직접 서고 있다는 점이 무척 새롭겠네요(웃음). 앞서 이제는 꿈이 확실하다고 했는데, 어떤 건가요?
잘 죽는 거예요. ‘꿈이 뭐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죽어야 끝날 것 같거든요.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태어난 모든 건 언젠가 생을 마감하니까요. 어렸을 때 드래곤볼이 유행이었는데, 파이터들이 세계정복에 대한 꿈이 있었고, 저도 세계정복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인물은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게 진정한 세계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고 나서도 계속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아요. 후회 없이 잘 죽고 싶다고(웃음).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