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로부터 멀리, 가까이……
그렇게 가면 되니까, 그럼 그렇게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닌 거니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음 날 혹은 모레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 된다고요.
글ㆍ사진 김나희(클래식음악평론가)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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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의 구원

 

파리로 떠날 준비를 하던 겨울이었다. 유학원에서는 물가가 싼 중소도시에서 어학 하는 걸 추천했지만, 이미 파리 오페라와 살 플레옐의 연간 프로그램을 확인한 나에게 파리가 아닌 다른 도시에 산다는 건 의미가 없었다. “서울에서는 몇 년을 기다려도 자주 듣기 힘든 분들 아니니?” 선생님과 부모님의 생각도 같았다. 피아노를 가지고 중간에 도시를 바꾸며 이사를 하느니 쭉 파리에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공연장과 박물관, 갤러리, 쾌적한 마트와 적당히 북적이는 도시의 분위기 없이 지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 파리에 가서 어학 수업을 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바로 학교에 지원하고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성적을 목표로 한참 불어에 매달렸다. 벽돌보다 두꺼운 두툼한 불불사전을 들고 조용하고 외진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시간을 보낼 공간이 필요했다.

 

예전에 고등학교였다는 도서관은 숨어 들기에 걸맞은 공간이었다. 사람으로 북적이지도 않았고,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릴 만큼 사위가 조용했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서는 라디에이터가 뿜어내는 열기와 서가 사이의 미세한 책 먼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랐다. 그곳은 거의 완벽한 도피처였다. 사전을 꺼내 낯선 외국어 속을 한껏 헤매다가도,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 서가에서 무엇이든 꺼내 읽을 수 있었다. 시사 현안과 온갖 과학용어, 철학용어가 등장하는 어학 시험에 나오는 예문들과 씨름하다 보면 시집 속 정제된 언어들이 유독 그리웠다. 시집을 꺼내 페이지를 따라가다 보면, 햇살에 언 몸을 녹이듯, 어느덧 모국어의 세계로 돌아와 있을 수 있었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와중에 다시 지도와 나침반을 찾은 기분이었다.

 

“미안하다

나의 시간이여 나는 너를 이제 버린다. 나는 차갑게 세계를 건너갈 것이다.” _허수경,   『모래도시』  , 문학동네

 

그 시집들 중에 유난히 이름이 익숙한 시인이 눈에 띄었다. 친구B가 엽서와 편지지에 만년필로 정성껏 옮겨 써 전해주던 시인이었다. 수능 문제집에서 처음 마주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 페이지를 찢어내 오답 노트 사이에 간직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그 시를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틈이 날 때면 ‘당신,…….’으로 시작하는 그 시를 소리 내 중얼거리고는 했다.

 

익숙한 이름의 시인이 발표한 새로운 시집에는 익숙한 이름의 소설가가 쓴 발문이 실려 있었다. 소설가의 대표작인 자전적 장편소설은 ‘열여섯의 나’로 시작한다. 그 문장들은 열여섯의 내가 만난 구원이었다. ‘열여섯의 나’가 살기 위해.

 

8학군에 속한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은 학기 초부터 “우정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다. 여기는 전쟁터고 너희들은 총을 들고 싸우러 온 병사와도 같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너희들은 서로가 서로를 반드시 이겨야 할 경쟁자로 삼아야 한다. 내가 더 올라가려면 옆자리에 앉은 친구를 제치고 이기면 된다. 친구 같은 건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영원한 우정 따위는 없다.”라는 이야기를 각기 다른 버전으로 쏟아냈다. 얼마쯤은 맞지만 열여섯에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처를 남겼고, 상처를 견디기 위해 아름다운 문장들이 필요했다. 읽고 있는 동안만큼은 가혹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무엇이.

 

열여섯에 소설 속 문장들을 읽다가 여러 번 눈물을 참지 못했을 때처럼, 나는 소설가가 쓴 발문을 읽다가 도서관의 책상 위에 눈물을 떨궜다. 시인의 모든 시들이 쓰여지기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로 전해 들었다는 부분에서는 잠시 책장을 덮고 숨을 골랐다. 지금까지 읽은 모든 활자들 중에 가장 아름답게 쓰여진 가슴 저린 소설과 수능 문제집에서 뜯어낸 페이지 속에 담겨 있던, 내가 가장 여러 번 소리 내어 중얼거렸으며 그러다 결국 몽땅 외워버린 시를 쓴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운 친구였다니.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음악처럼 흘러가는 문체, 어느덧 사람의 심장 속으로 들어와 훅, 일격을 가하며 감정을 뒤흔드는 스타일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문학으로 빚어내는 세계의 주파수가 그렇게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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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


수년이 지나 파리에서 열린 문학 포럼에서 나는 소설가를 만났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불어로 번역된 책을 가져와 사인을 받으려고 긴 줄을 섰다. 소설가는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어쩌다 옆에 서서 통역을 하던 내가 행사가 끝날 즈음 소설가에게 말했다. 그 많고많은 그의 작품들 중에 시집의 발문을 언급하며,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고. 내가 모국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고 있었던 탓일까, 소설가는 다른 소설집에 나오는 단편소설의 이야기가 독일에서 만난 친구와의 에피소드라고 했다. 내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소설집을 아직 읽지 못했다고 하자 흔쾌히 그녀는 자신이 몇 페이지 읽었다며, 책 날개가 읽던 페이지에 꽂혀 있는 책을 가방에서 꺼내 내밀었다.  모르는 여인들』  초판 1쇄였다.

 

“집에서 공항까지 1시간, 인천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 다시 뮌스터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면 3시간, 내려서 택시를 타면 15분이 걸려요. S의 집까지 가려면 16시간 반 정도가 필요하니 그렇게 시간들을 더해봐요. 하루의 2/3이면 S한테 갈 수 있다고, 그렇게 만날 수 있다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손도 잡고 있을 수 있다고 그렇게 말이죠. 이렇게 일상을 지내면서도 매일매일의 시간을 살면서 자꾸 16시간이면, 이렇게 헤아려봐요. 그렇게 가면 되니까, 그럼 그렇게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닌 거니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음 날 혹은 모레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 된다고요.”

 

큰 병을 앓으며 홀로 투병하는 친구 S에게 가야겠다면서, 소설가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S에게 더 가까워지기 위해 소설가는 지난여름 파리에 왔다. 파리의 메트로 안은 40도가 넘어가 한 번 외출을 할 때마다 사우나에서 빠져나온 듯 기진맥진, 견디기 힘든 더위였다. 소설가는 제대로 된 냉방장치가 없는 도시에서 폭염을 견디며 어떻게 하면 뮌스터에 갈 수 있는지 여러 번 물었다.

 

“비행기보다는 기차가 나을 거예요. 시내에서 바로 시내로 갈 수 있어서 동선이 편하거든요.” 뮌스터까지 가는 기차를 찾으려고 인터넷 검색을 내내 했다는 소설가에게 나는 프랑스 철도 앱을 알려준다. 프랑스 철도 회사만 깔지 말고 독일 철도회사의 앱도 다운받으라고 말한다. 낯선 외국어가 수월하지 않은 소설가에게 내가 먼저 화면을 보여주었다. “4시간 30분 정도 걸려요. 중간에 한 번 갈아타고요.” “그럼 반나절이면 갈 수 있네요.” 그리운 친구에게 더 가까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설가의 목소리에는 어떤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노선은 다양했다. 파리 북역에서 쾰른까지 탈리스를 타고 가서, 다시 뮌스터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는 노선이 있었고 파리 동역에서 만하임까지 떼제베를 타고 가서, 만하임에서 쾰른까지 이체에를 탄 다음 쾰른에서 다시 뮌스터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는 노선도 있었다. 앱으로 바로 결제까지 되고 모바일 티켓도 된다고 하자 소설가는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앱만 켜도 S한테까지 갈 수 있네, 좋은 세상이에요.”라며 감탄을 표한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이제 10시간이 넘게 줄었어요.”라고 말하는 얼굴에서 얼핏 희망과 기대감이 엿보인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면 점심때에는 뮌스터에 도착하는 거잖아.”라는 밝은 목소리에 이어 “파리에 와서 심카드를 구입하니 유럽에 거는 전화가 무료야. S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더 수월해졌어요.”라며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이 30년 가까이 쌓아온 우정은 어떤 것일까. 막연하게 짐작만 해본다. 서로를 알아주고, 서로의 글을 가장 먼저 들려주고 읽어줄 수 있는 그런 사이. 시인의 시가 활자가 되거나, 소설가의 문장들이 책으로 나오기 전, 인쇄된 활자로 읽기 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먼저 가닿는 그런 사이. 절창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시인의 시를 육성으로 가장 먼저 전해 듣고는 했던 사람인 소설가의 지금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너에게 가겠다.”는 한 가지 생각에만 온통 사로잡힌 소설가에게 S의 근황을 묻자 그 와중에도 몸의 고통을 견디며 꾸준히 번역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한때 파리에도 거주하며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쳤던 독일 시인의 시를 한국어로 옮긴다고 했다.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S의 영혼은 끝없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중이겠네요.”

 

92년에 독일에 도착해 무려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헤매온 떠돌이 같던 마음은 모국어라는 목적지를 향하고 있을 것이었다. 비록 몸은 뮌스터에 있으나 번역을 하는 동안만큼은, 시인의 영혼은 모국어로 구성된 세계를 향해 계속 귀환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시인이 견디고 있을 고독함에 울컥해지는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견디기 힘든 지난여름의 폭염도,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으로 인한 거리의 소음도,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열어 뮌스터행 기차표를 찾아보던 시간들도 이제는 지나갔다.

 

다시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를 꺼내야겠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허수경 저 | 창비
자신의 여정이 결국은 모두 시로 가기 위함임을 고백했다는 시인. 어둡고 쓸쓸한 느낌의 시어들이 고독에 겨운 시인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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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클래식음악평론가)

파리에서 피아노와 법학을 공부했다.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접하고 글로 남긴다. 바흐와 말러, 바그너, 피나 바우슈를 위해 지구 어디든 갈 수 있다. 인터뷰집 <예술이라는 은하에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