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의진 평전] 석달마을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70년의 기록
1949년 12월24일 경북 지역의 공비를 토벌하던 국군 부대가 문경 석달마을 24가구 주민 127명 중 86명을 마치 사냥하듯 학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글ㆍ사진 강청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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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2월24일 경북 지역의 공비를 토벌하던 국군 부대가 문경 석달마을 24가구 주민 127명 중 86명을 마치 사냥하듯 학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인솔자가 상황을 오판한 데 이어 정찰만 하고 오라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면서 빚어진 비극이었다. 이 날 확인 사살을 면하고, 형님의 시신 밑에 깔렸던 채의진 소년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졸지에 가족 9명을 잃고 고아가 되다시피 한 채의진의 앞날은 이 날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생을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전사로서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역대 정권은 다른 숱한 국가 폭력 사건과 함께 이 사건 역시 덮어 버렸다. 유족의 끈질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를 무시하고 공비가 저지른 일로 조작했다. 중고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당국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진상규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채의진은 퇴직 후에 본격적으로 이 사건을 널리 알리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1980년대 말 영문으로 석달마을 학살 사건 보고서를 작성해 전 세계에 알렸다. 그는 학살 사건이 해결되는 날까지 머리와 수염을 자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이후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 덥수룩한 흰 수염에 붉은 베레모를 쓴 그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현장이라면 어느 곳에나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우는 한국판 체 게바라의 탄생이었다.


 

 

빨간 베레모정희상 저 | 시사IN북(시사인북)
어린 시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가 평생을 인권을 위해 싸운 과정을 그려냈다. 스물여섯 새내기 기자 시절 그를 만나 27년간 기자와 취재원이라기보다는 동지로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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