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담요 하나 만드는 데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아기를 만나는 데 10개월이 걸리는 것처럼, 작은 담요를 다 만든 날, 아내에게 한참을 종알거렸다. 드디어 다 만들었어. 사실 다 못 만들 줄 알았거든. 만들면서 다 만들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걸 다, 다 만들었어! 나 있지 더 잘 살고 싶어져.
(서한영교 『두 번째 페미니스트』 , 235쪽)
오랜만에 몰입해서 책을 읽었다. 누군가 “책은 원래 몰입해서 읽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몰입도 단독자의 시간이 많이 확보된 사람에게나 가능하다”고 답하고 싶다. 1주일에 3일은 눈이 침침하다. 안구건조증 때문에 인공눈물을 달고 사는데도 한 시간쯤 책을 읽으면 눈이 뻑뻑하다. ‘내가 요즘 너무 안 울었나? 울면 그래도 뻑뻑한 눈이 조금 부드러워지는데.’ 요즘 너무 눈을 부릅뜨고 세상과 사람을 마주한 건 아닌지 잠깐 반성한다.
회사 컴퓨터 속도가 조금 더 빠르다면, 키보드 소음이 조금 덜하다면 나는 더 일을 빨리,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럼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지 않겠어? 내 속도에 맞추라고 타인을 닦달하지 않겠어?’ 생각한다. 무척 느린 컴퓨터 사양, 버벅대는 키보드가 잠깐 고마워진다.
시인 서한영교가 쓴 『두 번째 페미니스트』 를 읽었다. 2주간 이 책을 품고 읽었다. 회사에서 잠깐, 퇴근길에 잠깐, 그리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잠깐. 그렇게 틈틈이 읽다가 지난 주말 완독했다. 눈물을 쏟아야 하는 책을 나는 싫어한다. 울컥 하게 만드는 책은 더 싫다. 그냥 담담히 말하는 책, 산뜻한 책이 좋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 는 강렬한 표지와 달리 매우 따뜻하고 경쾌한 책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멋진 문학적인 문장들이 우수수 떨어져서, 손을 벌리기 바빴다. 마치 낙엽비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 좋은 책을 혼자 읽을 순 없잖아’ 싶어 출근길에 짧은 리뷰를 SNS에 올렸다. 그리고 <책읽아웃>에도 소개하고 싶어서 녹음하는 날, 가져갔다. 그래도 난 나름 기자잖아? 형평성을 지켜야지? 한 책을 너무 많은 곳에 소개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생각했지만 ‘담요 농사’라는 글에 나온 한 문장 “나 있지, 더 잘 살고 싶어져.”(235쪽)를 읽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눈이 멀어져 가는 아내(애인)와 결혼한 서한영교는 아내가 아이를 품은 10개월 동안 목화솜을 직접 수확해 씨를 뽑고, 손물레를 만들어 실을 자아 아이 담요를 만들었다. 딱 10개월이 걸렸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자라고 있을 때, 아빠는 목화씨(씨앗)로 솜을 만들고 실을 만들고 담요를 만들었다. 그리고 담요가 완성된 날 아내에게 말한다. “나 있지 더 잘 살고 싶어져.”
며칠 전 후배가 카톡으로 물었다. “선배,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해요?” (사회가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돌입한 후배는 2주에 한 번씩 소개팅을 하고 있고 데이팅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답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을 주는 사람. 그런 사람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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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서한영교 저 | arte(아르테)
언어의 미세한 오류들을 점검하기 시작한 남성 페미니스트의 성장기가 담겨 있고, 수유하는 애인의 곁에서 애간장을 태우며 한철을 보낸 사랑의 기록, 속싸개 위에 아이를 눕히고 최상의 섬세함을 다해 자장가를 불러준 육아 일기가 시인의 섬세한 언어로 그려져 있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