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을 하고 나면 내가 겪는 모든 것들이 시어로 다가오겠다고 꿈꾸던 때가 있었다. 볼 품 없는 나의 시 세계가 등단이라는 옷을 입으면 날아다닐 거라고. 도서관 시 코너에 꽂힌 이들만큼의 재능이 없단 건 알면서도, 이들의 세계에 몸 담그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벅차던 날들.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은 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도 정해놓지 않은 채 그저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달고 싶었던 지도 모른다. 이런 치기 어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때에 ‘시조 시인’으로 당선이 되었고, 그 후로 6년이 흘렀다. 등단 이후에야 ‘쓰는 나’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단 건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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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아니라 ‘시조’라니. 나를 소개할 때 ‘시조를 쓴다’고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이 장르를 쓰는 나조차도 시조에 대한 마음이 확실하지 않아서였나, 한참을 방황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조 쓰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면 한자를 두루 욀 것 같고, 전통 차를 마시며 시구를 읊어댈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시조는 조선시대 때나 쓰던 것 아니에요?’하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고, ‘시조창 한번 읊어주세요’와 같은 요구들을 들어야 하는 ‘시조 쓰는 20대’로서의 위치가 꽤나 불편했다.
중학교 때부터 우리는 ‘3장 6구 45자 내외, 종장 첫 음보는 3글자’라고 형식에 대해서만 배워 왔으며, 황진이나 윤선도와 같은 고시조들만 배워왔다. 그 덕에 시조는 고리타분하고, 충이나 효 같은 유교적인 이미지로만 각인되었다. 나는 한자도 잘 모르고, 심지어 고시조도 잘 외지 못한다. 이런 내가 한 음보씩 시어를 엮어가는 장르인데도, 구구절절 말해야 하는 비주류의 시 세계에 있다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시어들을 붙들고 있는 게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입사를 하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더 내팽개쳐졌고, ‘쓰는 사람’으로의 나는 매너리즘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어디서나 뒤로 밀려나는 비주류의 장르에 속해 있다는 건 자꾸 신경 쓰였다. 그게 억울하면 더 부지런히 써서 이 장르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하고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그리 투철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아주 이따금씩 들어오는 청탁 원고로 내 이름이 시조계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만 활동해왔다. 아예 놓지 않았던 것은, 시조에 대한 애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방황하면서도 나는 내 근본이 시조에 있음을 늘 전제에 깔아두었다. 돌아갈 곳은 정해져 있다고.
더러는 주체적 의지에 의해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상황에 의해 선택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후자의 경우를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로 바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운명’의 힘은 구체적 개인의 의지나 주관보다는 외적 상황의 힘이 워낙 강해서 그 논리와 기율에 따라 모든 일이 움직이는 데 개입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토록 가혹해만 보이는 운명에 일방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타개하고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줄곧 전개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 유성호, 『단정한 기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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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 장르에 붙어있었을까. 누가 ‘시조를 왜 쓰게 됐어요?’라고 물으면 별 이유를 답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글을 배우던 시조 시인 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도 모른 새 시작되었으니까. 시작에 대해선 그럴듯한 답을 하진 못하겠지만, ‘왜 이 장르를 계속 해?’에 대한 답은 찾았다. 형식이나 글자수 제한이 있는 시조에서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절제하며 시어를 배치해야 한다. 이 절제들을 모아 보면 입으로 내뱉고 싶은 리듬이 생겨난다. 시가 춤추는 것 같다. 제약이 리듬으로 변화하는 걸 내 손과 입으로 느낄 때만의 희열이 있다. 시조의 이런 정형 때문에 시가 진척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이걸 견뎌낼 새 시어를 발견하려는 노력 중에서 여러 단어를 복기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을 지나는 동안 빈 페이지로 며칠을 보내곤 하지만. 내가 찾은 시조의 매력이란 ‘절제 속에서의 자유 찾기’랄까.
이 재미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 날의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자니 낯이 자꾸 뜨거워져 피하기만 했다. 이 작업에 매달린 게 거의 반 년인데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시조에 대한 공부를 다시 조금씩 하다 보니 꽤 매력적인 장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애증이 애정으로 변화하는 와중이다.
우리는 짧고 아름다운 청춘의 ‘꿈’이야말로,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운명적 비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할 경우 성취 가능한 희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꿈’의 성취는 그만큼 ‘꿈’을 꾸어온 자에게만 허락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스스로 사유와 행위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삶에 대한 판관으로서 ‘꿈’에 인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 유성호, 『단정한 기억』 中
며칠 전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시조를 쓰는 동인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이제 시작하는 동인이기에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여러 후보 중 우리의 마음에 든 건 ‘객’이었다. 시조 쓰는 2030대로서의 고민인 이방인 혹은 손님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이름이었다. 50대 이상의 시인들이 대부분인 시조계에서도 우리는 떠돌고 있고, 현대시만 바라보는 독자들에게도 떠돌고 있는 우리들. 이 단어 속에 6명을 가지런히 놓아두면서 생각했다. 잠깐 머무는 어느 곳에서라도 시어를 퍼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를 소개할 때 ‘시조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이 장르의 매력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건 언제쯤이 될 진 모르겠지만, 놓진 않겠다. 그럼에도 계속 쓸 것이다. 알아줄 사람이 생겨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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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기억유성호 저 | 교유서가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시를 많이 읽고 해설까지 하는 국문과 교수가 쓴 산문은 어떠할까. 이번 산문집에서는 남의 글을 읽고 자기 글을 쓰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저자가 처음으로 자기 속내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이나영(도서 PD)
가끔 쓰고 가끔 읽는 게으름을 꿈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