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계속 쓰겠어요
나를 소개할 때, ‘시를 써요’라고 하기엔 단단한 시어의 시인들의 얼굴이 떠올라 부끄럽고, ‘시조를 써요’라고 명백한 사실이지만 차마 꺼내기 어려웠던 시조 쓰는 사람으로서의 입장 정리.
글ㆍ사진 이나영(도서 PD)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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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을 하고 나면 내가 겪는 모든 것들이 시어로 다가오겠다고 꿈꾸던 때가 있었다. 볼 품 없는 나의 시 세계가 등단이라는 옷을 입으면 날아다닐 거라고. 도서관 시 코너에 꽂힌 이들만큼의 재능이 없단 건 알면서도, 이들의 세계에 몸 담그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벅차던 날들.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은 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도 정해놓지 않은 채 그저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달고 싶었던 지도 모른다. 이런 치기 어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때에 ‘시조 시인’으로 당선이 되었고, 그 후로 6년이 흘렀다. 등단 이후에야 ‘쓰는 나’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단 건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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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아니라 ‘시조’라니. 나를 소개할 때 ‘시조를 쓴다’고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이 장르를 쓰는 나조차도 시조에 대한 마음이 확실하지 않아서였나, 한참을 방황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조 쓰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면 한자를 두루 욀 것 같고, 전통 차를 마시며 시구를 읊어댈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시조는 조선시대 때나 쓰던 것 아니에요?’하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고, ‘시조창 한번 읊어주세요’와 같은 요구들을 들어야 하는 ‘시조 쓰는 20대’로서의 위치가 꽤나 불편했다.


중학교 때부터 우리는 ‘3장 6구 45자 내외, 종장 첫 음보는 3글자’라고 형식에 대해서만 배워 왔으며, 황진이나 윤선도와 같은 고시조들만 배워왔다. 그 덕에 시조는 고리타분하고, 충이나 효 같은 유교적인 이미지로만 각인되었다. 나는 한자도 잘 모르고, 심지어 고시조도 잘 외지 못한다. 이런 내가 한 음보씩 시어를 엮어가는 장르인데도, 구구절절 말해야 하는 비주류의 시 세계에 있다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시어들을 붙들고 있는 게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입사를 하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더 내팽개쳐졌고, ‘쓰는 사람’으로의 나는 매너리즘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어디서나 뒤로 밀려나는 비주류의 장르에 속해 있다는 건 자꾸 신경 쓰였다. 그게 억울하면 더 부지런히 써서 이 장르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하고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그리 투철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아주 이따금씩 들어오는 청탁 원고로 내 이름이 시조계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만 활동해왔다. 아예 놓지 않았던 것은, 시조에 대한 애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방황하면서도 나는 내 근본이 시조에 있음을 늘 전제에 깔아두었다. 돌아갈 곳은 정해져 있다고.

 

더러는 주체적 의지에 의해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상황에 의해 선택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후자의 경우를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로 바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운명’의 힘은 구체적 개인의 의지나 주관보다는 외적 상황의 힘이 워낙 강해서 그 논리와 기율에 따라 모든 일이 움직이는 데 개입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토록 가혹해만 보이는 운명에 일방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타개하고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줄곧 전개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 유성호,  『단정한 기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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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 장르에 붙어있었을까. 누가 ‘시조를 왜 쓰게 됐어요?’라고 물으면 별 이유를 답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글을 배우던 시조 시인 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도 모른 새 시작되었으니까. 시작에 대해선 그럴듯한 답을 하진 못하겠지만, ‘왜 이 장르를 계속 해?’에 대한 답은 찾았다. 형식이나 글자수 제한이 있는 시조에서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절제하며 시어를 배치해야 한다. 이 절제들을 모아 보면 입으로 내뱉고 싶은 리듬이 생겨난다. 시가 춤추는 것 같다. 제약이 리듬으로 변화하는 걸 내 손과 입으로 느낄 때만의 희열이 있다. 시조의 이런 정형 때문에 시가 진척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이걸 견뎌낼 새 시어를 발견하려는 노력 중에서 여러 단어를 복기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을 지나는 동안 빈 페이지로 며칠을 보내곤 하지만. 내가 찾은 시조의 매력이란 ‘절제 속에서의 자유 찾기’랄까.


이 재미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 날의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자니 낯이 자꾸 뜨거워져 피하기만 했다. 이 작업에 매달린 게 거의 반 년인데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시조에 대한 공부를 다시 조금씩 하다 보니 꽤 매력적인 장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애증이 애정으로 변화하는 와중이다.

 

우리는 짧고 아름다운 청춘의 ‘꿈’이야말로,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운명적 비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할 경우 성취 가능한 희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꿈’의 성취는 그만큼 ‘꿈’을 꾸어온 자에게만 허락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스스로 사유와 행위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삶에 대한 판관으로서 ‘꿈’에 인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 유성호,  『단정한 기억』  中

 

며칠 전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시조를 쓰는 동인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이제 시작하는 동인이기에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여러 후보 중 우리의 마음에 든 건 ‘객’이었다. 시조 쓰는 2030대로서의 고민인 이방인 혹은 손님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이름이었다. 50대 이상의 시인들이 대부분인 시조계에서도 우리는 떠돌고 있고, 현대시만 바라보는 독자들에게도 떠돌고 있는 우리들. 이 단어 속에 6명을 가지런히 놓아두면서 생각했다. 잠깐 머무는 어느 곳에서라도 시어를 퍼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를 소개할 때 ‘시조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이 장르의 매력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건 언제쯤이 될 진 모르겠지만, 놓진 않겠다. 그럼에도 계속 쓸 것이다. 알아줄 사람이 생겨날 때까지.

 


 

 

단정한 기억유성호 저 | 교유서가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시를 많이 읽고 해설까지 하는 국문과 교수가 쓴 산문은 어떠할까. 이번 산문집에서는 남의 글을 읽고 자기 글을 쓰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저자가 처음으로 자기 속내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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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쓰고 가끔 읽는 게으름을 꿈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