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혜영이 요리책을 출간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그의 요리 사진을 떠올리다 ‘왜 이제야 책이 나왔을까’ 생각했다. 눈길을 끄는 정혜영의 요리를 보고 출판사 관계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 그 이유를 가장 먼저 묻고 싶었다. “요리사도 아닌데 무슨 책을 내나” 싶었다는 정혜영을 요리책 저자로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셰프 샘킴의 책. “평범한 주부처럼 가족과 함께 먹기 위해 요리했고,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마음껏 요리를 배우고 할 수 있었다”는 정혜영에게 『정혜영의 식탁』 은 요리책이기 전에 일상의 기록이다.
결혼한 뒤 가족을 위해 밥을 짓고, 요리를 만들고, 예쁘게 담았던 수많은 날이 모여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우리집 요리사’로 열심히 살아온 제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는 것 같습니다._ 『정혜영의 식탁』 중에서
쉽고, 자주 하는 요리만 골랐어요
SNS로 요리 실력이 알려졌어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원래 SNS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의 생활을 보거나 내 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데 취미가 없는 편인데 제가 워낙 예쁜 걸 좋아하니까 남편이 인스타그램이라는 게 있는데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말도 못 꺼내게 했어요. 안 한다고 했죠.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자기 SNS를 보여줘서 들여다보니까 사람들이 사진 찍어서 올리는데 ‘별거 아닌데?’ 싶더라고요. 그때 남편이 운동을 열심히 할 때라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 줬거든요. 아침마다 맨날 하는 일이 샐러드 만드는 거니까 그럼 이걸 한 번 올려보자 하고 시작했어요.
출간 제의 많이 받지 않았나요?
많이 받았는데 요리책을 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가족들을 위해 요리했을 뿐이고, 전문가도 아닌데 무슨 요리책을 내나 싶어서 아예 답장도 안 드렸어요.
마음이 바뀐 이유는요?
예전에 같이 작업했던 기자님이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어요. 같이 책을 내고 싶다고요. 그러면서 출판사를 소개하셨는데 샘킴 셰프의 책을 출간한 곳이더라고요. 정말 신기했던 게 그 메시지를 받기 일주일 전 즈음에 서점에서 샘킴 세프의 책을 보면서 ‘지금까지 본 책 중에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책을 만든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신 거예요. 신기하기도 하고 들뜨고 재미있어서 덜컥 계약해버렸어요.
샘킴 셰프의 책이 다리가 되었네요. 계약하고 바로 출간 준비하셨나요?
레시피는 아주 오래전에 출판사에 넘겼어요. 레시피 넘기고 자료 조사하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동영상을 만든 분들도 많고, 비전문가인데도 잘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내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이 책을 내는 목적과 이유가 없으면 낼 수 없을 것 같다고 미루고 미뤘는데, 중간에 편집자가 바뀌었어요. 이전에 계시던 편집자는 설득하고 기다려주는 스타일이었다면 새로 오신 분은 추진력이 있어서 바로 진행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덕분에 책이 나올 수 있었죠.
우려했던 것과 달리 반응이 좋아요. 지금은 어떠세요?
‘아, 낸 이유가 있었구나’….(웃음).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니까 감사했죠. 아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충실했을 뿐이거든요.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가족들하고 같이 먹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요. 그게 쌓여서 지금의 실력을 갖추게 됐고, 출판사에서 그걸 기록할 수 있게 도와줘서 책이 나왔죠.
책에 들어갈 요리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궁금해요.
쉽게 만들 수 있고, 집에서 자주 하는 요리들을 골랐어요. 어려운 요리보다는 쉬우면서 색다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려고 했죠. 예를 들어 평소에 쉽게 할 수 있는 유부초밥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서 손님상에 올릴 수 있게요.
레시피가 최대 다섯 줄을 넘지 않는 게 특징이에요. 이것도 쉽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가요?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정리했어요. 요리하다 보면 많은 내용을 읽을 시간이 없거든요. 가령 ‘어슷썰기를 하세요”라는 식의 내용은 과감히 정리했어요. 책을 한 번 펼쳐 보고 ‘이 정도는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은 어떻게 촬영하셨나요?
처음에 출판사에서 스튜디오를 빌려서 사진을 찍자고 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준비할 것도 많은데 아이들 오기 전까지 다 찍으려면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편집자하고 상의해서 스튜디오 대신 집에서 촬영했어요. 약속한 시간 내에 끝내려면 미리 준비해야 해서 촬영 전날 장보고 새벽 두 시까지 손질하고, 분류해놓고 잤어요. 촬영 당일에는 요리하고 하나 완성하면 사진 찍고, 끝나면 설거지하고 또 다음 요리 만들고 이렇게 5일 찍었어요.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OO 먹이기 위한 방법’처럼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많이 소개하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강조했던 게 ‘편식은 안 된다’라는 거였어요. 싫어하는 음식이 있으면 이걸 먹으면 왜 좋은지 설명해줘요. 만약 김치를 줬는데 먹기 싫어하면 반만 먹어 보라고 할 때도 있고요.
잘 먹이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재료를 안 보이게 해서 먹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같이 먹거나 다른 방법으로 요리해 줘요. 예를 들면 아이들이 고기 먹을 때 상추에만 싸 먹으려고 하거든요. ‘깻잎에 싸 먹어도 맛있어’라고 해도 안 먹어요. 깻잎 향이 싫은 거죠. 그런데 신기한 게 ‘스팸 무스비’에 깻잎이 안 들어가면 또 안 좋아해요. 이런 식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랑 섞어서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물론 아이가 너무 싫어하면 억지로 먹이면 안 되고요.
아이들하고 요리 자주 하시나요?
어릴 때부터 자주 했어요. 아이가 네 명이잖아요. 아이들한테 “오늘은 셔벗 만들어 볼래?”하고 역할을 나눠 주죠. “엄마는 총괄 셰프야, 너는 냉동실에서 딸기 꺼내와”, “너는 계량컵에 물을 담아”, “너는 저울을 두고 설탕 몇 그램을 채워” 이런 식으로요. 아이들이 이 과정을 놀이처럼 재미있게 느끼고, 계량컵 사용하고 무게를 재면서 수 개념을 익히기도 해요.
요리가 왜 좋은가요?
요리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잖아요. 재료 준비부터 마지막 설거지까지 하다 보면 가끔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내가 준비한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친구를 만나거나 손님을 초대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잖아요. 흔히 하는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의 속뜻도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는 거고요. 이런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게 좋아서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음식 주변을 눈여겨 봐요
요리를 따로 배웠다고 들었어요.
첫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셋째 아이 낳기 일주일 전까지 요리 클래스를 들었어요. 원래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요리가 잘 맞았어요. 클래스에 가면 에피타이저부터 후식까지 하루에 총 일곱 개 정도 배웠는데요. 배우고 나면 그날 바로 해보고 싶어서 집에 들어가면서 재료를 사 갔어요. 특히 초반에는 남편밖에 먹을 사람이 없는데도 꼭 만들어 주고 어떠냐고 물어보고 그랬어요.
주로 어떤 요리책을 보나요?
다양하게 봐요. 중식만 빼고요. 중식도 배우긴 했는데 집에서 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일단 화력이 안 따라주고 재료도 구하기 쉽지 않고요. 중국 요리는 사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웃음) 특히 튀김, 볶음 요리는 집에서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어요.
테이블 세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따로 공부하셨나요?
처음에 요리 배울 때 테이블 세팅하는 법까지 배웠어요. 선생님이 만든 요리를 내 접시에 담았더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같은 요리도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걸 알았죠.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면 음식 외에 다른 것들을 눈여겨봤어요. “저건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 걸까?’ 생각하면서 어떤 그릇에 담겨 있는지, 그릇의 여백은 어느 정도인지를 봤어요.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프렌치토스트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예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잘하는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면 자세히 보는 거죠. ‘아, 이렇게 바나나를 올리니까 훨씬 예쁘네?’, ‘소스를 이렇게 종지에 담아서 주는구나’하고 기억했다가 아이들한테 똑같이 해줘요.
그릇 관련 질문 많이 받으시죠?
어디서 샀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지금은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아요. 13년 전에 여행 가서 사거나 10년 전에 선물 받거나…. 대부분 아주 오래전부터 모아 온 것들이에요. 그래서 답하기 민망하더라고요. 결국엔 못 구하는 것들이니까요. 원래 그릇 살 때도 세트로 사지 않고, 시간을 가지고 마음에 꼭 드는 게 있을 때 사는 편이에요. 결혼할 때도 한 번에 안 샀어요. 만약 정말 예쁜 찻잔을 보면 이게 다시 내 눈에 보일 때까지 기다려요. 하다못해 쓰레기통을 하나 사더라도 꼭 맘에 드는 게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사요.
고르는 기준은요?
현란한 무늬가 있는 식기는 잘 안 사요. 하얀 그릇에 담을 때 제일 예쁘더라고요. 한식은 흙으로 만든, 투박한 모양의 도자기 그릇에 담는 게 예쁘고요.
셰프마다 시그니쳐 메뉴가 있잖아요. 정혜영의 시그니처 메뉴를 꼽는다면?
시그니처 메뉴라기보다… 아이들이 엄마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메뉴는 있어요. 아이마다 다른데요. 첫째는 볼로네제 파스타, 셋째는 스팸 무스비를 제일 좋아해요. 남편을 위해 만든 샐러드가 많으니 샐러드를 꼽을 수도 있겠네요.
최근 관심사는 ‘건강한 밥상’
유튜브나 요리 방송을 생각해 봤거나 제안받은 적 없으신가요?
책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방송은 더 그렇죠. (웃음) 제안은 많이 받았는데…. 저는 아주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에요. 이번에 책 낼 때도 주변에서 “왜 동영상은 안 찍었냐”고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일단 제가 그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은 아이들 키우기도 바쁘고요.
정리해 놓은 레시피가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A4 용지에 정리해 놓은 레시피를 서양요리, 면 요리, 한식 요리. 밥 요리 등 나름의 방법으로 분류해 놨어요. 빨리 찾을 수 있게요.
레시피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많을 것 같아요.
먹어 보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많이 물어봐요. 그럼 “간단해! 지금 받아 적어”라고 쉽게 알려줘요. “이 재료 없으면 안 넣어도 돼”라고 하기도 하고요. 무조건 쉽게 가르쳐 주려고 해요. 그래야 할 마음이 생기거든요. 복잡하면 하기 싫어져요.
‘배달 음식 안 먹을 것 같다’는 반응도 있더라고요.
당연히 먹죠. 핸드폰에 배달 앱도 있고요. 어떤 음식이든 해서 바로 먹는 게 가장 맛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시켜 먹는 음식은 주로 치킨 아니면 분식이에요. 다른 건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맛과 아주 다르더라고요. 플라스틱 용기에 다 식어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플라스틱 그릇이 싫어서 분식을 시켜도 꼭 그릇에 옮겨서 먹어요. 일회용 식기 분류하는 것도 번거롭더라고요. 남은 음식 다 씻어내고 분류하느니 설거지를 하더라도 집에서 쓰는 그릇에 담아 먹는 게 좋아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요리가 있나요?
건강한 밥상에 관심이 많아요.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이라는 책을 보고 관심이 생겼어요. 이 책에서 저자가 “여자들이 부엌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라면서 조리 과정을 최소화해도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튀기거나 볶지 않아도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요리법을 배워 보고 싶어요. 친구가 지금 그런 음식을 배우고 있는데 맛있냐고 물었더니 맛있대요. 예전에는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는데 점점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크니까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어져요. 아마 곧 배우러 갈 것 같아요. (웃음)
오늘 저녁 메뉴가 뭔지 궁금해졌어요.
어제 친구가 살아 있는 전복을 말없이 택배로 보냈더라고요. 전복솥밥 자주 먹는 것 같으니 해 먹으라고요. 다 씻어서 분류하고 진공포장 해서 냉장고에 넣어놨어요. 오늘 먹을 만큼 꺼내서 전복 밥이나 전복죽 만들어 먹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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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식탁정혜영 저 | 이덴슬리벨(EAT&SLEEPWELL)
과연 어떤 요리를 가족에게 해줄까? 그녀가 자주 하는 밑반찬, 샐러드, 서양 일품요리, 전통 한식 요리, 베이킹과 제철 과일 음료 중 다양한 요리 중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데 맛도 좋은 73가지 요리를 뽑았다.
최진영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viajeros
2019.12.10
봄봄봄
2019.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