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갖춘 밴드' 유투의 무대는 흔히 '지상 최대의 콘서트'로 묘사된다. 지난 40여년 간의 역사를 완벽히 압축하는 무대 구성과 압도적인 연출,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영리한 기획이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티켓 파워를 통해 유투는 2018년에도 최대의 수익을 올린 아티스트에 올랐다. 현재진행형의 전설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이자, 지속적인 혁신의 상징이 바로 유투 콘서트다.이 황홀한 경험은 지금까지 한국엔 허락되지 않았다. 입이 떡 벌어지는 유투의 공연은 거대 규모의 공연장을 갖추지 못한 한국에선 영원히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더는 DVD와 유튜브를 뒤적일 필요가 없다. 2019년 12월 8일, '조슈아 트리 투어(The Joshua Tree Tour)'의 일환으로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유투의 첫 내한 공연이 성사됐다. 이들의 2019년 셋리스트 중 핵심적인 15곡을 선곡하여 소개한다.
Sunday bloody sunday (1983,
“일요일, 피의 일요일. 얼마나 오래 우린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는 13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영국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총격에 의해 사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있었다. 그 비극의 증거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분쟁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 곡이다. 둔탁한 드럼연주로 시작돼 거친 목소리를 가진 보노의 노래는 울부짖음에 가깝다. 이는 저항 정신보다도 현실을 토로하는 탄식이다. 영국 차트 1위에 올라있던 마이클 잭슨의
세상이 변하지 않은 탓에 그들은 변함없이 이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대부분의 투어 때마다 부르는 곡으로 유명한 'Sunday bloody Sunday'는 평화의 갈구요, 전쟁과 비극의 산물이다. 세계 곳곳, 유투의 공연장에서는 멈추지 않고 그날의 일요일을 울부짖는다. (조지현)
New year's day (1983,
소년과 10월이 떠나가고
실제로 폴란드에서 열린 '버티고 투어(Vertigo tour)'나 '360?투어(360?tour)' 관련 영상들에서 이 곡이 연주될 때마다 온 관중이 빨간색과 하얀색 수선을 활용하여 자신의 국기를 그려 밴드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곧 다가올 밴드의 내한공연에서 지구 저편의 국민들이 가졌던 당시의 감동을 간접적이라도 느낄 수 있길 기대해보자. (이택용)
Bad (1984,
혼란, 무력감, 절망, 고립. 이 모든 것을 내버리라고 외치는 'Bad'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있다. 유투가 결성된 곳이자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은 1980년대 초반 경제난의 영향으로 마약 중독자가 증가했고, 사람들은 고통 속을 헤엄쳐야 했다. 보노는 당시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위로를, 우리에게는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 곡으로 전하고 있다.'Bad'는 또한 유투가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하는 일에 기여한 곡이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이 곡을 부르던 보노는 앞으로 밀려오는 관객들에게 밟혀 위험에 처한 여성을 구했다. 여성을 직접 만나러 가기 위해 무대 밑으로 뛰어내린 보노는 구출된 관객을 따스하게 안아주며 함께 춤을 췄다. 유투는 이를 계기로 전 세계 팬을 확보하게 되었고, 상징적인 라이브를 보여준 밴드로 각인됐다. 'Bad'는 유투에게도, 우리에게도 각별한 곡이다. (정효범)
Pride (In the name of love) (1984,
1987년에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을 통해 보편적 인류애를 설파한 'Pride (In the name of love)의 두려움 없는 기타 리프와 '떼창'을 위한 후반부 코러스의 힘은 늘 그래왔듯 내한공연에서도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소승근)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1987,
앰비언트의 선구자 브라이언 이노가 영적인 신시사이저로 여백을 채우면 리듬을 잘게 쪼갠 악기들이 혈관으로 타고 들어와 심박수를 높인다. 기타 연주를 지연시켜 만든 딜레이와 깨끗한 공간감은 1984년 전작
거리에 따라 계급, 종교가 나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와 달리 모든 것이 무명에 가까웠던 에티오피아를 본 보컬 보노는 구분 지어 차별하는 세상이 아닌 '이름 없는 거리', 시온(Zion)을 꿈꿨다. 가사를 쓰고 이를 알리기 위해 어떠한 장벽도 없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콘서트를 갈망했고, 마침 공연용 곡을 연구하던 기타 주자 에지에 의해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길이 탄생했다. 보노, 에지 콤비의 인류애적 사색이 확실한 목적 아래 담긴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은 곧 있을 국내 무대에서도 새 역사를 쓸 유투의, 유투 라이브의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임동엽)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1987,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가 매만진 광활한 사운드 속 절규하는 보컬 보노의 목소리는 꼭 인간이 대자연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로큰롤을 넘어 의미가 담긴 음악을 만들기 원했던 유투는 이 곡에서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직 내가 원하는 걸 찾지 못했다' 한탄하는 가사는 보노가 <롤링스톤>지에서 밝힌 대로 신에 대한 의심, 그에 따른 좌절을 표현한다. 고된 진리 탐색의 과정에는 그러나 희망이 서려 있는 법. 나약한 인간의 절규 속에는 그렇게 회복과 성장에 대한 가능성이 함께 자라난다.
의식적인 메시지뿐 아니라 노래는 차분하게 중심을 잡는 베이스라인과 질주하는 기타, 따라 부르기 쉬운 보컬 멜로디를 엮어 대중의 기호에도 적중했다. 'With or without you'와 함께 1987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고 이는 1980년대 후반 미국 시장 고지에 꽂은 승리의 깃발이었다. 믿음을 갈망하는 노랫말은 종교의 영역을 가로질러 꿈을 좇는 모든 이들에게 한줄기의 단비가 되어준다. (이홍현)
With or without you (1987,
<보헤미안 랩소디> 속 퀸(Queen)이 그랬듯, 이들에게도
명확한 메시지성을 가진 밴드의 여타 노래들과 달리 이 곡의 가사는 다소 모호하다. 그 덕분에 어떤 이에게는 삶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누군가에게는 사랑에 대한 자세를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각자 모양과 크기가 다른 자신만의 꽃을 키우게끔 하는 자양분 역할을 하는 셈. 잔잔한 가운데 순간순간 내비치는 역동적인 연주와 호소력 짙은 보컬은 찰나의 전율이 아닌 평생의 여운을 남기며, 그래서 오래 듣고 함께 곱씹어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나 아픔이 있더라도 결국 우리는 어딘가에 있을 진정한 자신을 찾아 살아가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U2가 있건 없건', 그 여정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시그니처 송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황선업)
Bullet the blue sky (1987,
U2의 많은 정치, 사회적 노래 중에서도 'Bullet the Blue Sky'의 논쟁점은 특히 첨예했다. 노래는 1980년대 엘살바도르에서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을 펼친 미국을 겨눴다. 내전이 한창이던 1986년에 엘살바도르를 방문한 보노는 지면이 떨리고 탄약 냄새가 진동하는 현장에서 그동안 엘살바도르 정부군을 지원해온 미국에 분노를 느꼈다. 단지 파워게임을 위해 그들과 관계없는 땅에 전쟁 무기를 판매하며 살상을 방조한 것에 개탄했다.
참혹한 현실을 확인한 그는 노랫말과 음향으로 미국을 질타했다. 가사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해 무턱대고 정부를 지지하던 미국 내 기독교인의 양심을 저격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며 비판의 대상을 분명히 했다. 전투기 소리와 같은 굉음을 내는 기타 솔로는 디 에지가 울리는 시대의 경종이었다. 문제작 중 문제작이었던 노래의 매서운 메시지는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정민재)
Running to stand still(1987,
브라이언 이노가 많은 음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지만, 그 최고 수혜자가 유투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유투는 밴드의 각인이 새겨진 기타 리프와 각 트랙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공간감을 얻었고 이 안에서 보다 섬세해진 사운드를 구사했다. 구도자의 자세로 종교와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둔탁한 일렉 기타 대신 초기 블루스의 통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Running to stand still'는 약물을 남용하고 지친 눈빛으로 세상을 배회하는 여인을 관조한다. 피아노 반주와 드럼, 흐릿한 기타 배킹이 주축이 되는 단순한 곡이지만, 잔잔한 수면에 던진 돌이 종래에는 커다란 물결을 만들듯 각 악기의 소리 그리고 보노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어 절정을 향해, 듣는 이의 마음을 향해 나아간다. 유투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종교, 정치 등의 거시적인 메시지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 매몰된 개인을 이야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Running to stand still'이 그렇다. (정연경)
Red hill mining town (1987,
유투는 명확한 소신을 지닌 밴드였고, 그들이 주조한 희대의 모던 록 명반
둔탁한 드럼과 명징한 기타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침착한 곡 진행은 장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돋보이는 건 광산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연상되는 호소력 짙은 보노의 보컬이다. 그가 절절하게 'Hangin' on'을 울부짖는 부분은 슬픔과 단단한 의지가 한데 섞인 마치 시위대의 선봉장의 인상이다. 현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마음에 와닿도록 풀어낸 스토리텔링, 매력적인 화법이 드러나는 곡이다. (장준환)
In god's country (1987,
때론 시대를 낭만적으로(혹은 낭만주의적으로) 작동하려 한다는 점이 이따금 유투를 무모하게 보이게도 했다. 예컨대 'In god's country'에서의 방식이란 꿈이라는 장소에서 자유의 여신을 현시한 뒤 미국의 한계를 마주해보고 또 이상향을 그려보는, 지극히 영적이고도 구도적인 체험과도 같아서 그저 순진하기만 한 반성에 순수하게 의지하려는 모습처럼 읽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현실적인 접근으로도 해결하기 버거운 거대한 시대 문제 앞에선 낭만적인 텍스트가 되려 선명하게 솟아나기도 한다. 희망이 여전히 몸부림치나 황량한 허화가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해버린 1980년대의 서구 속에서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곡은
Elevation (2000,
새천년 최초의 록 명반,
'Elevation'은 당연히 'Elevation Tour'의 시작을 알렸고, 'Vertigo Tour'에선 인트로 리프를 늘려 전율의 '떼창'을 유도했다. 이번 '조슈아 트리 투어'에선 앵콜 곡으로 등장해 뜨거운 장내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끌어올린다. 유투의 투어 셋리스트에 영원히 살아남을 곡. 시나위의 '상승'보다 U2의 'Elevation'을 먼저 알았던 나에게도, 지상 최대의 밴드를 직접 마주하는 고척 스카이돔의 관객들에게도 감격스러운 순간이 될 것이다. (김도헌)
Vertigo (2004,
명실상부 전성기인 1980년대와 다채로운 사운드의 1990년대를 지나, 현대에 도달해서도 유투가 가진 왕좌의 위엄은 실로 견고했다. 바로 2004년도 작
젊은 세대 못지않은 폭발적인 에너지 또한 돋보이는 요소다. 비록 메시지는 기존의 진중함에 비해 다소 가벼워진 모습이지만, 뚜렷한 멜로디 캐치 능력과 시대를 거쳐온 노련함만큼은 여전히 건재하지 않은가. 1980년대부터 꾸준히 달려온 유투의 기세를 대표하는 'Vertigo'는 그해 그래미 어워드 록 부문에서 무려 3개를 수상하며 놀라운 기염을 토했다. (장준환)
Beautiful day (2000,
테크노를 앞세웠던
라틴 팝, 댄스, 아이돌 그룹의 진영이 넓어지면서 록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았던 새 천년, 3년만에 돌아온 유투가 승리했다. 1990년대의 유투보다 더 유투답게 돌아왔음을 선포한 이 곡이 제 43회 그래미에서 3개의 부문을 수상한 것이다. 세상 그 자체에서 환희를 얻을 수 있다는 가사는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감되고 필요하기에 빼놓을 수 없다. 목적 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 숨을 고르게 하고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는, 마치 진실된 친구 같은 곡. (임선희)
One (1991,
1990년대 U2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 대표 발라드. 당시 멤버들 간의 불화와 베를린 장벽 붕괴에 영향 받아 쓰인 가사는 'One'이라는 제목 아래 화합보단 분열의 아픔을 노래한다. 멤버 에지의 기타 연주가 영감이 되어 15분 만에 완성했으며 싱글로 거둬 들인 수익을 에이즈 연구를 위해 기부하는 등 U2의 사회적 행보는 여기서도 계속된다.
앨범 군데군데 일렉트로니카, 펑크, 사이키델릭 등 전에 없던 다채로운 사운드들이 눈에 띄는 와중 이 곡은 U2표 발라드의 전형을 담고 있다. 천천히 고조되며 갈라지는 보컬 보노의 위태롭고 강렬한 창법이 전하는 울림과 외침은 오늘 날 이 곡을 명곡의 반열에 올렸다. 발매 이후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안착했으며 2010년 <롤링스톤> 선정 '역대 최고의 노래 500' 속 36위를 차지했다. 메리 제이 블라이지, R.E.M 등 많은 뮤지션들의 커버는 물론 투어마다 빼놓지 않고 선곡되는 대표 히트곡. 애초 쓰인 가사와 별개로 'One'은 끊임없는 화합을 양산 중이다. (박수진)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