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사라지고 싶지만 사라지고 싶지 않던 시간 (G. 김달님 작가)
지금 제 옆에 밤보다는 낮을 좋아하는, 글을 쓸 때 느끼는 조용한 기쁨과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김달님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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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다르게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병원에서 10분만 걸어가면 큰 공원이 있어서 그쪽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휠체어를 밀고 가는 동안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의 표면이 바퀴에 진동으로 전해졌다. 두 발로 걸을 때는 느끼지 못한 불편함이었다. 황성공원, 김유신 장군묘, 화장실… 기분이 좋은 듯 할머니의 목소리에 음이 따라 붙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달님 작가님의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나의 두 사람』 에서 50살 차이 나는 늙은 부모 김홍무 할아버지와 송희섭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아낸 김달님 작가님은 두 번째 에세이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에서 할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울던 2018년 어느 여름부터 일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기록합니다. 자꾸만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오늘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는요. 김달님 작가님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키는 일, 그들과의 시간을 기록하는 소중한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눌게요.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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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달님 편>

 

오은: 저희 제작진이 김달님 작가님 출연을 엄청 기다렸어요. 『나의 두 사람』 의 울림이 아직도 생생한 것 같아요. 정말 반갑습니다.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서 출연 제안을 했을 때 바로 수락하셨나요?


김달님: 네, 그럼요. 빈말이 아니라 이번 책을 내면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이 두 가지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책읽아웃>에 출연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안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오은: 첫 책도 반응이 뜨거웠잖아요. 이후에 글 쓰는 자아로서의 김달님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아요.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도 경험하게 되고 그랬을 텐데요. 어떠셨나요?


김달님: 책 내고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일단 외부적으로는 SNS 팔로워가 늘었고요.(웃음) 전에는 글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고, 당연히 제 글에 대한 반응을 얻는 일도 없었는데요. 책을 내고 나서 제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일이 저에게는 가장 큰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제 스스로 저를 규정하는 마음이 바뀌었어요. 이것이 제게는 아주 중요한 변화인데요. 전에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앞으로도 글을 쓸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가장 큰 변화 같아요.

 

오은: 그동안 독자들도 꽤 많이 만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억나는 독자가 있으신가요?


김달님: 정말 많은 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얘기를 한다면 두 분 계세요. 한 분은 편지를 보내주신 분이에요. 제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로 편지가 왔어요. 보니까 한 할머니 독자 분이 직접 편지를 써서 출판사 통해 보내주신 건데요. 그 분도 어린 손녀를 키우고 계셨어요. 최선을 다해서 손녀를 키우고 있지만 이 아이가 자라서 받게 될 상처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팠다고, 그런데 『나의 두 사람』 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그것이 본인에게는 희망이 되었다는 내용의 편지였는데요.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또 한 분은 호주에서 엽서를 보내주신 독자 분이에요. 그 분도 할머니 독자셨고요. 한인 할머니들이 모여서 독서모임을 하는데 거기서 『나의 두 사람』 을 읽었다고, 책이 정말 좋았다면서 대한민국에 희망이 보인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웃음)


오은: 저는 늘 이런 말을 해요. 틈이 나서 하는 일은 취미다, 틈을 내서 하는 일은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일, 나의 자아를 찾아주는 일이다, 라고요. 김달님 작가님이 틈을 내서 꼭 하는 일은 무엇이 있나요?


김달님: 요즘을 생각해보면 우선 글 쓰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일 책을 조금이라도 읽거나 글을 조금이라도 쓰는 일을 틈을 내서 하려고 해요. 또 하나는 매일 부모님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에요. ‘카카오’에서 ‘프로젝트 100’의 리더를 맡고 있거든요. 100일 동안 매일 부모님께 안부를 묻고 그것을 기록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웃음) 매일 틈을 내 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덕질이에요.


오은: 어떤 장르의 덕질인지 참 궁금한데, 여쭤봐도 될까요?


김달님: 저는 방탄소년단을 덕질 중입니다.(웃음) 지민 씨를 제일 좋아해요.


오은: 정말 틈을 내서 하는 일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들어주는 일 같아요. 그래서 저도 적극적으로 틈을 내려고 하는 편입니다. 이제 김달님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잘 들어주세요. “작가. 종종 두 번째 사는 삶이기를 바라곤 하는 사람. 부모가 예감하지 못한 시기에 갑작스레 세상에 오게 됐다. 1988년에 태어난 그는, 그런 사연으로 1939년생 김홍무 씨와 1940년생 송희섭 씨의 품에서 자랐다. 김달님, 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김홍무 씨가 지어주었다. 그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무렵 할아버지는 우연히 올려다 본 밤하늘의 밝은 달을 보고 저 달처럼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지었다고 한다. 두 살 때는 요구르트를 좋아했다고 하고, 조금 더 자라서는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모두 두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어 도망치듯 독립을 할 때까지 그와 두 사람이 살았던 집은 경주 산동네에 있는 벽돌집이다. 항아리에서 고추장, 된장이 나란히 익어 가던, 산바람에 빨래가 구김 없이 마르던, 겨울이면 눈이 무릎까지 푹푹 쌓이던 집에서 할머니의 뜨거운 김치국밥과 가죽나물 장아찌를 먹으며 성장했다.


독립 후에는 바쁘고 빠듯하게 살았다. 어영부영 서른이 된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난 네가 글을 쓰게 될 줄 알았다.” 그 말에 대답을 하고 싶어 퇴근 후 두세 시간씩, 주말에도, 자기 전에도,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도 틈틈이 썼다. 책장에 꽂힌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보며 과연 나도 책을 낼 수 있을까 하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그 이름들과 함께 있다. 그것이 여전히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글을 쓸 때는 노래 한 곡을 반복해서 듣는 편이다. 『나의 두 사람』  때는 루시드폴의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를,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때는 권나무의 <어릴 때>를 계속 들었다. ‘시간’이라는 말, ‘순간’이나 ‘세월’이라는 말에 약하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 「그 여름」이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볼 때마다 쓸쓸해지는 이유다.


한여름 수박을 정말 좋아하고,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 정말 좋아하는 시인은 박준 시인. 2014년에는 박준 시인의 시집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다. 꽤나 길치이지만 마음이 가는 길은 잘 찾아내곤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보여준 적이 있다면 그것은 늙은 부모가 주었던 사랑을 사랑인 줄 알고 자란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입니다. 소개글에 할아버지께서 “나는 네가 글을 쓸 줄 알았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까 이 말이 지금의 김달님을 있게 한 셈이기도 한 것 같아요.


김달님: 그러게요. 항상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겁이 나서 시작을 못 했었어요. 회사에서 한창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이 기억난 거죠. 할아버지가 나를 믿어준 것처럼 나도 글을 쓰면서 살아볼 수도 있겠다, 한 번 써보자, 결심하게 된 일 같아요.


오은: 그때 『나의 두 사람』 에 실린 글을 쓰기 시작하신 거고, 그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하신 거죠?


김달님: 네, 맞아요. 제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된 중요한 계기는 ‘브런치북 프로젝트’라고 책을 출판해주는 프로젝트 때문이었어요. 공모전에 참여하는 형태로 글을 연재했고, 저는 금상이었어요. 대상 수상작은 바로 출간이 됐고요. 그런데 출판사 대표님께서 제 글을 어떻게 우연히 보시고 연락을 주신 거예요.


오은: 시간이라는 말, 순간이나 세월이라는 말에 마음이 많이 간다는 소개 내용이 있었잖아요. <오은의 옹기종기>에 ‘deep & slow’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깊고, 천천히 생각해야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인데요.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오랜만에 ‘김달님 작가님에게 시간이란?’이라는 질문을 드리려고 해요. 인터뷰 끝에 답변을 해주세요.


김달님: (웃음) 네.


오은: 2014년에는 박준 시인의 시집을 가방에 넣어다녔다고 해요. 그때라면 제가 시집을 두 권 냈을 시기인데(웃음) 박준 시인의 첫 시집에 밀리고 말았는데요. 박준 시인과 강원도 어딘가에서 만나신 적이 있다면서요?


김달님: 박준 시인님은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웃음) 제가 여름휴가로 친구들이랑 정동진 독립영화제에 간 적이 있어요. 야외에서 여러 영화를 보는데요. 한 단편 영화가 어느 젊은 시인에 관한 영화였어요. 영화가 끝나고 GV를 하는데 감독님이 “여기 영화의 주인공인 젊은 시인이 와 있다”면서 무대로 시인을 불렀고, 그 시인이 자기 시 한 편을 낭독하시는데 박준 시인님이신 거예요. 낭독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가시는데 제가 너무 놀라서 무작정 뛰어 갔어요. 너무 좋아한다고 말씀을 드리니까 사인을 해주신다고 하시면서 가방에서 시집을 꺼내시더니 거기 사인을 해주셨어요.


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게 준 것이 정말 사랑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언제였어요?


김달님: 같이 살 때는 이게 사랑이라고 명확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 거예요. 다만 책에도 썼듯 제가 엄마의 존재를 그리워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들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구나, 느꼈던 시기는 독립을 하고 어른이 되었을 때인데요. 사실 편견이 많잖아요. 조손가정, 결핍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 대한 슬플 것이다, 외로울 것이다, 라는 편견이 있겠죠. 그런데 저는 되게 명랑한 사람이더라고요. 친구들도 많고, 긍정적인 면도 많고, 항상 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런 것들이 어디서 왔을까, 나를 만들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알게 되는 거죠. 두 사람의 단단한 사랑을 받아서 그런 거구나, 라는 걸 나이를 먹어가면서 계속 느꼈던 것 같아요.


오은: 이번 책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를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를 해주세요.


김달님: 첫 책 『나의 두 사람』 이 저에게 부모가 되어 주었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을 자식 입장에서 쓴 책이라면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어진 부모 곁에서 보호자로 살아가게 된 자식의 시간이 담겨 있는 책이에요.


오은: 아주 힘든 시기에 쓰인 글일 테고요. 이 글이 묶여서 책으로 나왔을 때 기분도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김달님: 『나의 두 사람』 을 쓸 때는 저한테 기쁨으로 남아 있는 기억을 돌아보면서 쓰는 일이었기 때문에 쓰는 게 상대적으로 즐거웠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쓰는 시간과 사는 시간이 겹쳐져 있었고요. 그 시간이 저에게는 아주 중요하면서도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에요. 이 책이 나왔을 때 저의 어떤 부분을 떼어낸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애틋했던 것 같고요. 또 지금도 진행이 되고 있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도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고민도 굉장히 많았던 책입니다.


오은: 옛날 이야기를 쓴다고 하면 그것은 회상이기 때문에 미화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뭔가를 덧씌우기도 하는데 이 시간을 통과하면서 기록했기 때문에 더 생생하게, 하지만 아프게 썼을 것 같아요.


김달님: 최근에 제 책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가 있었는데요. 책을 쓴 계기를 물어보시더라고요. 보호자로 살아가는 시간이 저 자신은 보호하지 못하는 시간이 될 때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래서 되게 자주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사라지고 싶지 않았어요. 사라지지 않기 위한 방법이 글을 쓰는 일이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병원에 다녀온 밤에 조금씩 기록했어요. 그게 또 저를 견디게 해줬던 것 같아요.


오은: 덜컥 두 사람의 보호자가 된 후 처음 든 감정은 ‘두려움’이었다고 쓰셨어요.


김달님: 작년 여름부터 한동안 아주 경직된 채로 산 것 같아요. 덜덜 떨면서요. 생각해보니까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의 보호자로 산 적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덜컥 보호자가 된 건데요. 처음 두려웠던 것은 일단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두 사람이 내 앞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는데 뭘 먼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병원에 가야 하는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두려웠었고요. 처음 겪는 질문과 선택도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제 결정들이 두 사람에게 너무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었죠. 예를 들면 두 사람에게 응급 상황이 오면 연명 치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질문이 그런데요. 이것들을 내가 결정해도 되는 건가 항상 무서웠던 것 같아요.


오은: 책에서 좋았던 부분 중 하나가 응급 상황이나 요양 병원 등에 대한 정보가 많은 것이었어요. 이런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셔서 아마 노부모를 모시는 보호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실제로 친구들에게 “간병하게 되면 궁금한 건 내게 물어보라”고 하신다고요?


김달님: 참 외로웠어요. 모르는 것들이 많은데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참 막막했는데요. 제가 이런 정보들을 먼저 알게 됐으니까 나중에 친구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은: 1년이라는 시간, 힘든 일도 많고 매일 한숨도 쉬었을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도 도움 받았던 일들도 있었겠죠. 기억나는 위로가 있으신가요?


김달님: 한 번은 할머니가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예요. 본인이 너무 불안하셨는지 계속 말을 하실 때가 있었어요. 할머니는 원래 예의 바른 분이시고,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닌데 계속 큰 소리로 화를 내면서 말을 하시는 거예요. 다른 환자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게 보이고, 저는 너무 당황스러우니까 할머니한테 “할머니, 조용히 해야 돼. 그러지 마.” 이런 말밖에 못 했어요. 그런데 저와 함께 갔던 한 어른이 할머니에게 “할머니, 그동안 참고 사느라 너무 힘드셨죠?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이야기하세요.”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그 말을 듣고 본인도 약간 놀라신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고맙다면서 그분 손을 잡고 이야기 하시는데 조금씩 잦아드는 게 보이더라고요.


오은: 병원은 이렇게 작은 기적들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곳이기도 한 것 같네요. 뭉클했습니다. ‘deep & slow’에 대한 답을 들어보고 싶어요. ‘김달님 작가님에게 시간이란?’ 오늘 대화에서 답을 찾으셨나요?


김달님: 시간은 앞으로 제가 계속 글로 쓰게 될 소재 같아요.

오은: 아마도 이 ‘시간’을 담고 글을 쓰시는 한, 김달님 작가님은 우리에게 늘 든든한 작가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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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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