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는 순간마다 수많은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평생 한 사람과 사랑할 수 있을지, 최악의 나를 보여줘도 괜찮을지, 어디까지 공유할 수 있을지, 결혼에는 왜 방학이 없는지.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연애 각본이나 남들이 다 한다는 매뉴얼을 가지고 질문에 대처하고는 한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나에게 다정한 하루』 등 심리학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왔던 서밤(서늘한여름밤)이 이번에는 한 사람을 만나 연애에서 결혼까지 7년 동안 겪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직접 부딪치고 깨진 시행착오를 통해 질문을 피해가기보다 질문을 통해 미성숙한 자기 모습을 대면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조금씩 나쁘고 이기적인 사랑
심리학 이야기를 주로 해왔던 것과 달리, 이번 책은 연애 에세이에요.
원래는 이런 에세이가 될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사람들이 사랑하기 전에 해야 할 질문을 책으로 엮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책 내용이 바뀌면서 구성이나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죠.
사랑하기 전에 해야 할 질문들은 무엇이었나요?
이를테면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는 거죠. 질문만 보면 이상하게 보이지만, 계급이 분명 존재하고 그게 삶에 대해 가지는 상상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거든요. 막연하게 일 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 가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 사람과, 여권이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개인적인 경계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명절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결혼하기 전에 꼭 이야기해야죠. 연애와 결혼 관계는 가치관을 맞춰가야 하는 문제니까요.
그림일기로 표현하는 것과 글로 표현하는 게 다른 점이 있었나요?
그림은 눙쳐서 표현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림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그림 안에서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데, 글은 훨씬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고 숨길 곳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면서 썼어요. 책을 쓰면서 글 쓰는 연습도 많이 하게 됐고요.
에필로그에는 배우자의 글이 들어갔어요.
그림일기에서도 어떤 이슈에 대해서는 남편이 글을 쓰고 제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해 봐서, 글도 같이 넣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늘 글을 쓰면 남편이 거의 제일 첫 독자였어요. 늘 ‘잘 썼다’ ‘프로 작가다’ 하면서 제 기운을 북돋워 줬죠.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사생활을 많이 드러내게 되는데요.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면 미문이라도 남겼을 텐데, 남길 게 없잖아요. 솔직함밖에 줄 수 없는 게 없어요. 어떤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서 교훈을 받으려면 그 이야기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논문이나 기사는 결론에 어떤 과정을 거쳐 도달했는지 정보를 왜곡하지 않고 공개해야 하는데, 에세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완성된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과정 없이 그저 성숙해졌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들, 혹은 힘들게 했던 생각이나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해야지 이 글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돌아보거나 얻어갈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읽은 가족들 반응은 어땠어요?
엄마는 역시 자기가 더 좋은 사랑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반응이었고, 나머지 친척들은 잘 읽었다, 남편 잘 만났다 등의 말씀을 해주셨죠. “너, 요즘 섹스를 잘 안 한다며?” 이럴 수는 없으니까요. (웃음)
섹스를 등산에 비유한 게 재밌었어요. 다른 운동도 아니고 등산이라니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에요. 섹스가 마치 운동 같은데, 운동 중에서는 등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질한 에피소드도 많아요. 이별하고 난 뒤 인터넷 게시판에 이별 글을 남긴 사람들한테 일일이 쪽지를 보냈다고요. 답장이 왔었나요?
답장이 많이 왔어요. 인류애가 느껴지더라고요. 힘든 걸 공감하니까 열심히 답장을 해주셨는데,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분명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나아졌다고 하더라고요. 3개월이 기점이라고 해서 날짜를 세면서 기다렸었죠.
딸기 바나나 요거트가 너무 맛있어서 애인에게는 주고 싶지 않다는 옹졸함도 나오죠. 이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 상태여서 이런 이야기도 나올 수 있는 걸까요?
숨기고 싶어한 내용이었다면 쓰지 않았을 거예요. 다들 연애를 하면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너무 애쓰잖아요. 사실 다들 이기적이고 비겁한 면이 있는데도요. 조금씩 나쁘고 이기적이어도 전체적으로는 관계가 잘 굴러갈 수 있어요. 첫 연애는 성숙하게 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제 모습이 아니더라고요. 지금 남편과의 연애에서는 그냥 미성숙한 마음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었던 것 같아요.
프롤로그에 “시작했던 곳과 다른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나의 경험을 풀어놓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쓰셨어요.
저처럼 좋은 사람이나 좋은 가정을 보지 못하고 자라왔던 사람에게 이 경험을 나누고 싶었어요. 항상 저도 부모님의 관계를 똑같이 답습하지 않을까 항상 불안했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어떤 부분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나누고 싶었어요.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관계를 실험했으면
결혼을 ‘예상치 못한 기득권의 맛’(120쪽)이라고 표현했어요.
결혼한 사람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결혼이 제 것이 되자마자 안정감과 편안함, 모든 사람이 나를 축복해주는 느낌을 한 번에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저희는 사회에서 너무나 환영할 만한 커플인 거죠. 둘 다 비장애인에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직장도 있고요. 그래서 그 기득권을 오롯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 편안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요.
이성애자들만 이런 권리를 갖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동성결혼 법제화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차별을 통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건 당연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또 한편으로는 이 제도에 편입되고 싶지 않은 사람도 폭력적으로 끌려 올 때가 있잖아요. 그런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마냥 마음 편히 결혼해서 너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거죠.
‘어쨌든 너는 결혼하지 않았느냐’ ‘네 사회적 위치로는 그나마 낫다’는 비판도 들어오잖아요.
당연히 그런 비판이 있을 수 있고 타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그 힘으로 부수고 나갈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운이 좋은 사람들이 앞에 가면서 길을 닦아놔야 운이 덜한 사람도 함께 갈 수 있어요. 이번 설에 하는 ‘차례상 대신 브런치’ 모임도 제가 알려져 있고, 이성애자고, 결혼했기 때문에 열 수 있었고요. 명절에 시가에 안 가는 걸 혼자서 조용히 할 수도 있지만, 더 대놓고 함께하자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런 게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 명절에 시가 안 가려는 유별난 여자애가 어디 있느냐 하면 저를 보고 한 명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잖아요. 그래서 더 많이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 안에서도 서로 대립할 때가 많아요. 내 의자가 더 시급하다는 게, 다들 연대할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네 의자가 내 의자거든요. 우리는 같이 벤치에 앉아 있어요.
여성혐오에 대한 내용도 많이 들어 있었어요. 남편과 함께 살면서 부딪치는 지점이 많았을 텐데요.
온도 차이만 있어도 서운하더라고요. 페미니즘을 몰라도 여자라면 싸한 순간이 있잖아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저는 너무 화가 나서 밤까지 잠이 안 오는데 남편은 잘만 자요, 그러면 화가 나는 거죠. 같은 여자라도 같은 지점에서 같은 강도로 분노하긴 어려운데 내 배우자는 분노해주길 바라는 게 현실적인 기대인 걸까 생각은 들어요. 어쨌든 지금은 제 배우자에게 내가 화내는 것 같으면 너도 화내는 척이라도 해라, 그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웃음)
책을 읽고 공감했다는 리뷰와 함께, 이 관계가 부럽다는 리뷰도 있었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는 리뷰가 제일 좋아요. 특히 저랑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너무 습관처럼 불행을 기다리는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리뷰를 보았을 때 책 쓴 보람이 있다고 느꼈어요.
불행이라는 키워드가 제목에도 나오는데요. 항상 불안해하는 마음이 있었나요?
부모가 행복한 걸 못 보고 자란 사람들은 늘 그런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언젠가는 부모처럼 되지 않을까 불안해서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해 과잉 노력을 하다가 지치고 나 자신을 잃어버릴 때도 많고요. 특히 관계가 좋을 때 이 관계는 언제 불행해질까 하는 질문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또 불행이 오죠.
그렇죠.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때도 있죠.
지금은 불행을 기다리지 않는 상태인가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관계가 꼭 행복해야 된다는 생각, 관계를 영원히 지속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없어졌고요. 우리 둘이 서로 진실한 자기 자신으로 만나는데,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언젠가 서로 안 맞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서로 갈라설 수도 있어요. 이 관계가 끝까지 행복하게 가야 한다는 집착을 버린 상태에요.
불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까요?
습관처럼 불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행복을 견디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연애를 시작할 때 좋으면서도 자신이 낯설 때가 있어요. 늘 누더기 입고 편안해하던 사람인데 명품 옷을 입은 것 같고, 이건 내 옷이 아니고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워요. 낯선 행복을 좀 견디고 익숙해졌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관계 안에서 그런 행복을 찾기 쉽지 않아요.
행복이 이미 왔을 수도 있어요. 그걸 행복이라고 느끼지 않고 낯설고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거든요. 이게 낯설어서 싫은 건지 정말 싫은 건지 살펴볼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커플들에게 심리상담을 권하는 내용도 있었어요.
커플뿐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심리상담을 권하고 싶은데요, 커플들이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저는 커플 상담 전에 개인 상담을 받아보라고 많이 권유해요. 개개인의 문제를 정리하고 나서 커플 상담을 받아야 서로 더 원만하게 대화하기 좋아요. 갈등이 있을 때 꼭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가 반복되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이 관계 안에서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관계를 실험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배워온 연인의 모습이 꼭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닐 수도 있어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우리가 맺는 관계의 특별함은 무엇인지 우리만의 관계를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너에게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사랑할까?”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너는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 날 사랑해?(응) 내일도 날 사랑할 것 같아?(응) 그럼 된 거야.” 그렇다. 그러면 된 것이다. 불행한 미래가 길모퉁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사랑하는 오늘이 있다.
결혼은 믿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믿는다.
(194쪽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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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서늘한여름밤 저 | arte(아르테)
‘사랑은 사랑으로 시작될까?’와 같은 경쾌한 질문에서부터 ‘어떻게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겠어?’ ‘일주일에 섹스는 몇 번이나 해야 할까?’ ‘평생 너만 사랑할 수 있을까?’와 같은 금기의 질문까지, 터놓기 힘든 물음을 좇아 민낯의 모습을 한 사랑에 대해 고백한다.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