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매되었던 2017년만 하더라도 비의 ‘깡(Gang)’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Hundred Dollar Bill’에 비유하고 자신의 컴백은 ‘왕의 귀환’이며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 날 못 잡아 안달이 나셨’는데 자신은 ‘꽤 많이 바빠’서 ‘귀찮아 죽겠’다는 자기애로 가득한 가사나, 몸을 엉거주춤하게 숙인 채 팔을 고릴라처럼 흔들어 대는 안무, 일렉트로-힙합으로 진행되다 말고 갑자기 깜빡이도 안 켜고 R&B로 핸들을 꺾어버리는 기괴한 곡 전개까지. ‘깡’은 자기애가 너무 과한 슈퍼스타가 그걸 과시하려다 시원하게 망해버린 트랙으로 기록됐다.
일이 희한하게 풀리기 시작한 건 2019년쯤부터였다. ‘깡’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댓글란 댓글작성 금지가 해제됐다는 걸 발견하면서, 사람들은 모닥불로 날아드는 부나방떼처럼 ‘깡’을 조롱하기 위해 뮤직비디오 댓글란으로 모여들었다. 비슷한 시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대실패로 인해 비를 놀리면서 노는 데 재미를 붙인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그렇게 매일 노래의 기괴함을 조롱하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노래에 애착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어느 구석을 좋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래지만, 자주 보고 듣다가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1일 1깡은 부족해요. 1일 3깡 정도는 해야지. 아침 먹고 깡, 점심 먹고 깡, 저녁 먹고 깡. 식후깡으로.” 사람들이 연신 자신을 놀려먹기 바쁜 걸 지켜보는 비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처럼 담담하다. 사실 비는 ‘깡’ 이전에도 사람들이 자신을 밈으로 소비하는 걸 원동력으로 뒤바꾼 전력이 있다. 그가 2014년에 발매했던 ‘LA SONG’은 후렴구의 ‘라-랄랄랄라-’ 부분이 아무리 들어도 태진아 같다는 놀림을 받았는데, 그 반응이 가시질 않는 걸 본 비는 아예 대선배 태진아를 모셔와 무대에 함께 세워 버림으로써 자신을 놀려먹는데 동참했다. 노래의 기괴함을 조롱하던 분위기는 자연스레 ‘대중과 함께 놀 줄 아는 광대’ 비에 대한 찬사로 뒤집어졌다. 마치 지금의 ‘깡’이 그렇듯이.
데뷔 2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슈퍼스타지만, 사람들이 비를 바라보는 시선은 확실히 전성기 때와는 많이 다르다. ‘깡’과 ‘차에 타 봐’, <자전차왕 엄복동>을 거친 뒤 이제 비에게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완전히 떼어내는 건 불가능해졌다. 비로서도 대중이 자신을 놀리는 걸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조롱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2014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비는 2020년에도 자신을 향한 조롱에 동참해 한바탕 같이 노는 광대가 되는 길을 택했다. 꾸러기 표정만큼은 포기 못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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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