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이번 ‘어떤,책임’ 주제는 ‘숲을 보게 하는 책’입니다.
캘리: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어서 제안한 주제였어요.
불현듯(오은): 저는 조금 어려웠어요. ‘숲’이라는 은유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뿐더러 숲을 보게 한다는 건 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프랑소와 엄: 전 크게 고민 안 했어요.(웃음) 좋은 책이라면 숲의 시각을 당연히 갖고 있을 테니까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조남주 저 | 문학동네
띠지에 ‘우리 모두가 지나온 초록의 시간’이라고 되어 있죠. 이 책은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했지만 청소년 시기를 막 지난 사람들이 읽으면 그때가 떠올라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하나 하나의 순간들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하는 책이었거든요. 조남주 작가님은 늘 차이에서 출발하시는 것 같아요. 차이가 차별이 되는 순간을 예리하게 짚어내시고,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해주시는데요. 숲은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이잖아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설령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각기 다른 모양새와 질감을 갖고 있어요. 그렇듯 『귤의 맛』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차이에 대한 이야기, 그 차이에서 오는 차별의 목소리를 경계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소설에는 네 명의 등장인물 소란, 다윤, 해인, 은지가 등장합니다. 네 명은 당연히 다르죠. 집안 상황도 다르고요. 운동을 잘하는 친구도 있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도 있고, BTS를 좋아하는 친구도 있어요. 이런 친구들이 어떻게 친해지는지부터 이야기가 시작해요. 이들은 사소하거나 큰 일들을 겪으면서 끈끈한 우정을 쌓아나가요. 그런데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뭐냐고 한다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소중하듯 그냥 숲을 보는 거예요. 사춘기라는 시기를 어른들은 남들도 겪는 거라고, 지나가는 시기라고 일축하기 일쑤잖아요. 혹은 어른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말을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사춘기가 그 자체로 소중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누구나 겪지만 다 다르게 통과하는 시기라고요. 그 때 겪은 하나 하나의 일들이 내 마음과 몸에 스며 앞으로 겪을 일의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무엇보다 네 명의 비중이 비슷해요. 그 점도 좋았어요. 보통은 주인공이 있고, 주변 인물들이 곁에서 사건에 개입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작품은 네 명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을 읽어드릴게요.
첫 번째 독자이자 소설을 시작하게 해준 사랑하는 딸에게 고맙습니다. 제가 쓰는 이야기들은 딸로부터 시작되거나 딸에게서 완성됩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셰이머스 라만 칸 저 / 강예은 역 | 후마니타스
저자 셰이머스 라만 칸은 아빠가 파키스탄, 엄마가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 가족에서 성장했어요.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생활했는데요. 사는 동안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고요. 그러다 저자가 셰인트폴이라는 엘리트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돼요. 졸업 후 교사가 되어 다시 이 학교에 돌아와 학생들의 모습을 1년 동안 관찰하고, 연구한 것이 이 책이죠. 첫 장에 셰인트폴의 캠퍼스 조감도가 실려 있는데요.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학교에 천문대가 있고요, 예배당도 몇 개나 있어요. 중앙식당은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식당과 유사한 모습으로 묘사가 되어 있어요. 건물도 아주 고풍스럽고요. 여기는 슈퍼 리치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부자들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그리고 저자는 이 안에서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불평등을 점점 더 의식하게 됐고, 의문을 갖게 돼요. 왜 엘리트 교육이 누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인데 누구에게는 미치도록 노력해서 겨우 얻을 수 있는 일인가? 왜 저 친구는 이 모든 특권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왜 나는 계속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걸까? 하고요. 저자는 졸업할 때 동문회장에 뽑힐 정도로 학교 생활을 잘해냈지만 자연스럽게 아이비리그로 진학하는 동기들과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셰인트폴에 교사로 다시 돌아온 거예요.
책이 아주 묵직하고, 주제 의식도 깊고, 내용도 방대한데요.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생각해봤더니 예상을 뒤집는 내용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저자는 '신엘리트'라고 부르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발견한 것이 특권의 편안함이었다고 말해요.
마치 신엘리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봐! 우리가 무슨 배타적인 클럽 같은 게 아니라니까. 외려 가장 민주화된 집단이 우리라고. 우린 오페라만큼 랩 음악도 편안하게 듣잖아. 고급 레스토랑에 가든 기사 식당에 가든 우린 상관없다고. 우린 다 받아 줄 수 있어!”(중략) 그리고 이런 표식들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특권층은 혜택 받지 못한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너희들이 그런 위치에 있는 건 바로 네 자신의 편협함, 이 개방된 새 세상을 이용하지 않기로 한 네 자신의 선택, 네 자신의 관심 부족 때문이지, 지속적인 불평등 때문이 아니라고.”
과연 불평등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너희들은 특권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특권층의 지금 특징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 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헨리 블랙쇼 글그림 / 서남희 역 | 길벗스쿨
그림 느낌이 너무 좋죠? 이 그림책은 성인이 봐도 좋고, 아이들이 봐도 좋을 책입니다. 뒷표지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픈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책. 그리고 여전히 아이처럼 살고픈 어른들을 위한 특별한 책.’ 불현듯 님과 캘리 님이 그런 것 같아요.(웃음)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어린 친구들에게. 그거 알아? 어른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아이를 품고 있어.’ 그리고 다음 장을 보면 우산을 쓰고 가는 어른들 모습이 나오는데요. 그림을 보면 그 안에 아이들이 숨어 있어요. 어른들 몸 속에 종이인형 같은 느낌의, 채색을 안 한 아이가 있고요. 더불어 이렇게 써 있습니다. ‘눈을 또렷이 뜨고 어른들을 차근차근, 꼼꼼히 살펴봐. 어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아이를 숨기려고 항상 바쁜 척을 하고, 스트레스 받는 척을 해.’ 스트레스 받는 척을 하는 어른의 모습과 안의 아이의 모습이 조금 다르죠.(웃음) 그러다 가끔 어른들 안에 있는 아이가 튀어 나오는 거예요. 여기 한 신사의 모습을 보세요. 아이가 밖으로 튀어 나와서 뛰고 있죠. 어른들이 춤출 때 장면도 나오는데요. 여기에는 ‘웃긴 아이들의 모습 같아’라는 말이 함께 있어요.
이 장면도 좋아요. 사랑을 고백하는 성인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적혀 있어요. ‘어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는 아이처럼 혀 짧은 소리로 간질간질 이야기를 해. “따랑해!”’(웃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될수록 안에 있는 아이가 더 자주 튀어나온다고 얘기를 해요. 실제로 그렇죠. 나이 드신 분들 보면 아이 같을 때가 많잖아요. 귀여운 할머니도, 고약한 할머니도, 유치한 할머니도 있잖아요. 여기서 또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은 아주 아주 중요해. 안에 있는 아이가 평생 잊지 못할 것들을 배우는 시기거든.’
이 책을 어린이와 같이 보시는 분들은 “네 마음 속에 어른이 있을 수 있고, 거꾸로 어른 속에도 아이가 있을 수 있어. 엄마 아빠가 힘들어할 때는 아이가 튀어나왔다고 생각해.”라고 얘기해줄 수 있을 거예요. 성인 혼자 읽을 때도 힘들거나 한다면 내 안의 아이에게 옷도 잘 입혀주고, 맛있는 밥도 해주면서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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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빵빵빵
2020.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