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신의 얼굴 - 마지막 회
결국 우리의 얼굴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고, 좋은 일에 함께 웃고, 아픈 일에 함께 울며, 내 몫의 책임을 인정하고 힘든 일들을 단호하게 헤쳐 나가는 그 모든 순간의 표정들로.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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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사람의 얼굴은 거짓말을 한다. 카메라를 한 차례 거쳐서 보는 얼굴일수록 수시로 그렇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도 카메라 앞에선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버전의 자신을 연출한다. 숨을 들이마셔 배를 집어넣고, 얼굴이 최대한 잘 나오는 각도를 찾아 고개를 틀고, 셀카 어플로 자잘한 후보정을 한다. 우리도 그럴진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일상인 유명인들은 어떠하랴. 유명인의 얼굴에서 그가 살아온 솔직한 삶의 역사를 읽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칼럼의 시작은 언제나 그들이 기록해온 삶의 궤적에서 시작해 얼굴로 역산해 들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어렵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순간의 그들, 성공하기 전과 성공한 후의 그들, 그들이 맡았던 배역과 그들이 불렀던 노래의 결들. 그 수많은 점들 사이를 이어 궤적을 찾고, 그런 다음 그 궤적이 남긴 흔적을 얼굴에서 읽어내는 과정. 그게 지난 3년 간 이 칼럼에서 하려고 했던 일이다. 내가 제대로 해낸 건지 확신은 없다. 아마도 그건 내가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판단해 주실 일이겠지.

새삼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피로에 찌든 이 남자의 얼굴은 어딘가 낯설어 꼭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갑상선 수술 이후 비대칭으로 부어 오른 얼굴과 살 때문에 두드러진 팔자주름, 처진 눈과 그 밑을 채운 다크서클. 우둔하고 답답해 보이는 그 얼굴을 한참 보고 있노라면 대체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진다. 하지만 나를 기억하고 곁을 지켜주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내 얼굴을 사뭇 다르게 증언할 것이다. 뭔가 골똘히 생각할 때 입술을 앙다무는 습관이 있는 얼굴, 차갑고 퉁명스러운 무표정이었다가도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넬 땐 일순 방어를 풀어 헤치며 웃는 얼굴, 누군가 힘들 때 곁에 앉아 참을성 있게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었던 얼굴. 정말 그들은,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는 내 얼굴의 단점을 보지 못한 것일까? 그럴 리가. 내가 따스하게 대했던 사람들이기에, 그들도 내 얼굴에서 따스했던 순간만을 골라 기억해준 것이리라. 마치 내가 유명인들의 삶의 궤적을 좇은 뒤 그 흔적을 얼굴에서 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내 벗들도 내 얼굴을 그렇게 대해준 것이다.

결국 우리의 얼굴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고, 좋은 일에 함께 웃고, 아픈 일에 함께 울며, 내 몫의 책임을 인정하고 힘든 일들을 단호하게 헤쳐 나가는 그 모든 순간의 표정들로. 타고 난 얼굴을 고치는 것에는 늘 한계가 따르지만, 그 얼굴과 함께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갈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3년 동안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했던 이야기를 모아 그 등뼈만 추려보면,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 부디 당신의 얼굴이 어디서든 따뜻하고 아름답게 기억되게 해주시길.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봅시다.

 

<이승한의 얼굴을 보라>는 이번 주로 연재를 마칩니다. 긴 시간 칼럼을 아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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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얼굴 #책임 #이승한의 얼굴을 보라 #삶의 궤적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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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2020.06.24

그동안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야기들로 만나게 되길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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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