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참혹한 진실을 파헤친 소설 『은희』가 출간되었다. 박유리 작가는 기자로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직접 취재하고 조사한 기록 위에, 18살 소녀 ‘은희’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사실과 허구적 이야기를 뒤섞어 『은희』라는 값진 소설적 진실을 만들어냈다. 군사정권 당시 벌어진 국가적 유괴와 강제 실종을 취재하며 생겨난 인간 존엄에 대한 질문은 그녀를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으로 이끌게 되고, 결국 ‘은희’의 죽음을 파고드는 장편소설 『은희』를 쓰게끔 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덧붙여 사건의 진실을 전하는 박유리 작가의 말을 들어 보자.
기자가 쓴 소설이라는 선입견(?) 같은 것에 대한 두려움, 걱정은 없었나요?
두려움은 내가 무엇을 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드러내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시작하면서, 온전히 이야기를 마칠 수 있을지가 가장 두려웠습니다. 기자로서 기사를 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사에 온 정신을 쏟지 않으면 글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감에 시달리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마감의 밤’은 정말 끔찍하지요.
기자가 쓴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요? 기자였던 적이 있는 작가들이 한국 문단에서 많은 작품을 내고 있습니다. 김훈, 김연수, 장강명 선생님들이 그러합니다. 문학의 외연 또한 기사 형식을 혼합한 르포를 넘어 노랫말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저는 기사가 외딴곳에 홀로 서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글의 장르이며, 그 어떤 장르와 만나고 헤어질 수 있지요. 이제껏 소설, 에세이, 운문을 결합한 기사를 썼고, ‘기사야? 소설이야?’라는 날 선 반응과 더불어 응원과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문학의 밖에서 문학을 바라보고, 문학을 시도해왔습니다.
독자 반응과 관련된 두려움을 꼽으라면,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끔찍한 현실을 통과한 그들이 허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소설이 그들에게 또 다른 공포로 다가올지 두려웠습니다. 작품으로서 좋은 소설을 낸다 한들, 당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작품이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소설이 나오기 전에 뵙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말씀드렸습니다. 5월 28일 소설이 출간되던 날, 처음 책을 드린 분도 한종선, 최승우 생존자 대표님이었습니다. 아직 그분들은 책을 읽지 않으셨습니다. 기억이 공포가 될 수 있기에, 한종선 님은 마음의 준비가 될 때 소설을 읽겠다고 하셨습니다. 『은희』를 사랑하는 독자분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 동행하셨기에 대략의 내용을 알고 있고, 제가 끔찍하고 자극적인 소재로 이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믿음을 갖고 계십니다.
꼭 써야겠다고 생각한 작품이었나요?
어떤 일은 치르지 않으면 생의 다음 시간으로 넘어갈 수 없기도 하지요. 저에게 형제복지원이 그러했습니다. 첫 번째 책을 내게 된다면, 형제복지원이어야 한다는, 설명할 수 없는 운명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참혹한 행위가 일어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준과 미연, 은희가 제 속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3년간 그들이 제게 말을 걸어주는 순간을 기다리거나 홀로 있는 방에서 그들과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세 사람이 죽은 자들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이었어요. 살아 있는 이들이 거는 간절한 말을, 들리지 않는 척할 수는 없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취재를 할 때도 ‘묻는다’는 행위 이전에 ‘본다’는 행위를 중요시합니다. 판단하기 전에 보는 것이 나의 작은 세계가 아닌, 그들을, 풍경을, 현실을, 세상을 오롯이 보게 하지요. 때로는 질문을 멈출 때, 그들이 온전히 제 안에 들어오기도 해요.
기자로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을 마주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걸 보았던 것 같아요. 1975년부터 1987년까지 513명이 사망한 충격 실화 이전에, 한 명의 존재가 되고 싶었던, 그러나 매일 헛디디고 마는 생존자들의 실패가 제겐 뉴스보다 더 귀한 이야기였고, 고통이었습니다. 수용소는 생과 사를 가르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의 생을 완전히 파괴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인간됨의 파괴야말로 역설적으로 인간됨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지 않을까요?
수용소에서 이미 파괴된 채 나온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단식을 하고, 증언을 하거나, 울부짖는 자로 소비됩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하는 자’ 이전에 매일 실패하나 또다시 거친 현실을 딛고 세상을 응시하는 생존자들의 몸부림을 보았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다시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기억은 생존자들을 놓아주지 않고 습격하며, 실패하게 합니다. 그래서 기억은 지나간 시간이나, 결국 돌아오고야 마는 현재와 미래이기도 합니다.
후속작이 기대됩니다. 무엇을 쓸 생각이신가요?
몇 년간 집값이 사람들을 짓눌렀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집의 소유 여부, 집의 위치가 우리들의 생각과 정치적 신념마저도 바꾸어놓았다는 거죠.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 고급 주상복합 건물에 살면서 집값이 떨어질까 염려돼 쉬쉬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창문이 깨지는 데도 문제가 없다고 속마음을 숨기기도 해요. 들어가 살아야 할 공간이 사람들 위에서 삶을 지배하죠. 공간과 존재에 대한 소설집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이어지는 옴니버스 형태일 것 같고, 가제는 『인간 위의 집』이라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빈곤을 어떻게 폐기처분 했는지에 관한 사회 분야 책은 얼마 전 탈고한 상황입니다. 하반기 시대의 창에서 발간할 예정입니다. 형제복지원은 현대사에서 단일 사건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부터 빈곤을 버리고 치우는 방식으로 처리해왔습니다.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형제복지원 등 수많은 감금 사건들이 그러한 맥락에서 일어났습니다. 최근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조만간 진실과화해위원회가 꾸려질 예정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난 강제실종들은 개별 사건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제 역사적 차원에서 재조명되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자로서,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은희』에 집중하기 위해 1년 전 한겨레신문사 내부의 사업국으로 옮겼습니다. 1년 6개월 휴직을 하고 소설을 썼는데도 탈고를 할 수 없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기자는 맞지만, 신문에 기사를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요즘 즐겨 읽는 책 또는 잘 읽은 소설이 궁금합니다.
다독가가 아니라는 점이 조금은 콤플렉스예요. 멍때리고 앉아 있거나 사람들의 말을 듣지요. 어떤 순간에 운명처럼,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의 말이 문장처럼 들리기도 해요.
가장 쓰기 힘들었던 장면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힘들었던 장면이 특별히 있지는 않습니다. 『은희』는 그림자처럼 지울 수 없는 기억과 이 기억을 대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운전을 하거나 라면을 먹을 때도, 검고 기다란 기억의 그림자를 결코 끊을 수 없지요. 저 또한 그들의 기억과 함께 라면을 먹고 운전을 했기에 편안한 장면이 없었습니다. 쓰는 내내 짓눌렸습니다.
사회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소설의 장, 단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 고발적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장단점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의 재현에 그쳐서는 문학이 아니겠지만, 사실이 포함돼 있다고 문학이 아닌 것도 아니며, 사회문제가 포함되었다고 해서 고발적인 소설도 아닐 것입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형제복지원을 고발하였는데, 소설이 굳이 고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발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행위라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방관자로서 구분 짓고 힐난하기보다는 그들의 시간으로 들어가 고통에 동참하는 행위 아닐까요. 나는 그 속에서 어디쯤 서 있는지를 돌아보는 행위 아닐까요.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일은 고통스러우나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망자 513명이라는 숫자를 뚫고 들어가,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한, 제 무덤조차 갖지 못한 이의 어떤 시간 속으로 들어서는 것이 『은희』를 읽는 일이에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과 치르지 못한 장례를 뒤늦게라도 치르고 싶습니다.
* 박유리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파괴되고 외로운 이들의 침묵을 듣는 일이 좋았다. 흙바닥에서 시가 되어버린 일기를 쓰는 시리아의 난민 소년, 헤어지는 날 우산을 내어준 영등포 집창촌의 여인, 매월 5만 원을 상납해야 주연배우의 풍경이 될 수 있었던 이름 없는 드라마 엑스트라, 4차 혁명 시대에 땅을 잃고 전국을 헤매는 화전민들에게서 살아낸다는 것의 치열함과 서글픔을 보았다. 가장 비루한 존재들의 아름답고 위대한 시간을 쓰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믿는다. [국민일보]에 이어 [한겨레]에 이런 글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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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