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림 “신이 엄마에게 한번만 휴가를 내려준다면”
엄마가 손톱에 매니큐어 칠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왜 엄마 손을 이끌고 네일 샵 한번 가볼 생각을 못했을까, 엄마의 거친 손에 꽃잎 같은 네일 아트를 한번이라도 해드릴 걸 후회돼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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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모녀 관계는 그 어떤 가족애보다 한 뼘쯤 더 특별하다. 유일한 분신이자, 우정 이상을 주고받는 친구이자, 처음 겪기 때문에 낯설기만 한 인생의 선후배와 같은 엄마와 딸. 하지만 늘 곁에 있다는 익숙함에 이따금 그 소중함을 잊게 된다면, 모녀 사이를 한층 달달하게 만들어줄 책 한 권을 권해본다. 방송작가 송정림이 써내려간 55가지 버킷 리스트를 담은 에세이 『엄마와 나의 모든 봄날들』을 엄마와 함께 읽어보기를.



엄마와 딸의 버킷 리스트라는 콘셉트에 눈길이 가는데요, 원고 구성을 버킷 리스트로 한 이유가 있을까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와 못해본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못해본 일을 꼽다가 아쉬워서 마음이 많이 아팠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닥칠 수 있는 게 이별이잖아요. 그때 폭풍 같은 후회 속으로 빠지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라고, 그래서 그 추억으로 든든해지고 당당해지라고 권하고 싶었어요. 

책에 쓰인 버킷 리스트들은, 엄마와 단 하루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인데 저는 이제 불가능해졌어요. 아직 함께할 엄마가 살아 계시다면, 함께할 수 있는 그 나날들에 부러움을 담아 경축하고 싶어요.

작가님에게 ‘엄마’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가장 위험한 생의 고비에서, 가장 기쁜 순간에서 터져 나오는 이름.

혼자 불빛 하나 없는 밤길을 걸어가는 기분일 때 부르고 싶은 이름. 

부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름. 

부르면 건전지에 충전되는 것처럼 힘을 얻게 되는 이름. 

부르면 꿈이 생기는 이름.  

그런데 또, 감정의 어느 부분을 건드리면 툭…… 터져 나오는 눈물 방아쇠. 

그런 존재가 ‘엄마’입니다. 

책 속엔 작가님이 직접 엄마와 함께한 버킷 리스트와 함께하지 못한 버킷 리스트가 같이 담겨 있는데요, 가장 함께하고픈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주 간단한 일인데 못 해봐서 후회가 되는 게 있는데요. 저는 엄마가 손톱에 매니큐어 칠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왜 엄마 손을 이끌고 네일 샵 한번 가볼 생각을 못했을까, 엄마의 거친 손에 꽃잎 같은 네일 아트를 한번이라도 해드릴 걸 후회돼요. 엄마는 “아유 싫어” 하면서도 딸이 고집부리면 따라가셨을 텐데, 처음엔 어색해하시다가도 “아, 예쁘다…….” 해주셨을 텐데 말예요.

언젠가 모녀가 함께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네일아트를 받는 걸 본 적 있는데, 부러움이 사무쳤어요. 엄마의 손에 스무 살이 머물게 해드리는 일, 예쁜 설렘을 선사하는 그 일을 꼭 해보고 싶네요. 신이 엄마한테 휴가 한번 안 내려주실까요? 

 ‘언니’와의 자매 관계도 자주 등장합니다. 모녀 사이만큼이나 자매 사이도 특별한 것 같아요.

언니( 작가)는, 별명이 ‘동생 바보’예요. 처음 만나는 언니 지인들은 제게 “정연이네 ‘내 동생’ 이구나?” 해요. 언니가 항상 “내 동생, 내 동생” 하니까 늘 궁금했다면서요. 항상 챙기고 퍼주고…… 동생을 위해서 아끼는 것 없는 언니예요.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이 진리예요. 저는 언니 사랑 절대 못 따라가죠. 언제나 제 글의 제 1 독자인데 기살리기 대장이에요. 그동안 언니의 그 특급 칭찬들이 저를 일으켜주곤 했어요. 

언니와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살다가 서로의 사정 때문에 각자 멀리 떨어진 동네로 이사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시 또 같은 동네로 이사를 왔어요. 서로 바빠서 못 보는 날이 많아도 그냥 같은 동네니까 마음이 놓이는 거 있잖아요. 언제든 같이 마실 나가서 책도 사고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할 수 있으니까요. 많이 외로운 날에는 “놀아줘!” 하면 만사 제치고 나와줄 언니가 있다는 건, 서로 취미와 취향이 맞아서 어떤 화제든 대화가 끊일 줄 모르는 언니가 있다는 건, 힘든 어깨를 끌어올려줄 언니가 있다는 건, 생의 벅찬 축복이죠. 언니는 그렇게 제게 천군만마 같은 존재예요.

책 속 버킷 리스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생신이 되면 엄마를 모시고 맛있는 식당에 가서 식사하곤 했거든요. 저는 생신 날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렸다고 생각했지만 미역국 한번 제 손으로 끓여드리지 못했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엄마의 미역국 취향도 잘 몰라요.

엄마는 자식들 생일 때마다 미역국을 끓여주셨거든요. 미역국 취향도 다 달라서 어느 자식 생일에는 소고기 미역국을, 어느 자식 생일에는 성게 미역국을 잘도 구분해서 끓여주셨어요. 정말 신기한 일은,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 언니의 생일이었는데 조문객들에게 주는 국으로 성게 미역국이 나왔어요.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미역국이 성게 미역국이거든요. 엄마는 딸의 생일상을 돌아가신 후에도 차려주시는구나 싶었어요.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생신상을 꼭 차려드려 보기를 바랍니다.

2020년을 휩쓴 코로나로 많은 이들이 생활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었는데요, 책 속에 다 싣지 않은, 이런 때에 특히 엄마와 딸이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코로나 19 사태로 집콕하는 시간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앞으로 이런 거 하나씩 해보자” 하며 엄마와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적어 보여드리는 것도 좋겠죠.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고향 도서관에 같이 갔던 일이 생각나요. 책을 고르며 나눈 대화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엄마 팔짱 끼고 동네 도서관 가서 서로 책 한 권씩 빌려오기, 추천합니다. 엄마 손발톱 깎아드리기, 단 둘만의 사진들을 모아서 모녀 앨범 만들기, 도시락 싸서 가까운 공원 소풍 가기 등등 권할 만한 버킷 리스트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네요.

그리고 이건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인데, 독자분들이 가장 큰 반응을 보여주셨던 ‘엄마 잔소리 녹음해두기’입니다. 그렇게 지겹던 잔소리가 엄마 돌아가신 후에는 정말 그리워지거든요. 나태해질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엄마가 짠! 나타나서 잔소리 한번 해주셨으면 싶어요. “엄마 나한테 잔소리해보세요” 하고 영상으로 녹화해두는 것도 좋겠네요. 그러면 어떤 엄마는 기도만 하신다고 해요. 그 모습도 녹화해두면, 나중에 보면서 위안이 되고 용기를 얻게 될 거예요.  

딸이었고, 이제 엄마가 된 사람으로서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랑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고 사랑의 방법은 마음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발명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백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사랑을 알겠어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고백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그 방법을 잘 찾아내서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좋아요. 소소한 행복도 얼마든지 크게 엄마 가슴에 닿을 수 있으니까요. 엄마를 위로하는 시간은 앞으로의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일을 하다 보니 딸이 행복해지는, 행복 마법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봅니다.


* 송정림

젊은 시절에는 교사 생활을 했다. 중년부터는 드라마와 라디오 작가로 활동한다. 타고난 온유함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알아가는 게 좋아 이른 아침마다 짧게라도 글을 쓴다. 그 글들이 하나씩 모여 산문집으로 탄생한다. 여전히 세상을 선하게 바라보며 살고 싶다.

지은 책으로 『설렘의 습관』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명작에게 길을 묻다』 『신화에게 길을 묻다』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 『착해져라, 내 마음』 『내 인생의 화양연화』 등이 있다. <여자의 비밀> <미쓰 아줌마> <녹색 마차> 등의 극본과 라디오 KBS 1FM <출발 FM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음악> 등의 작가로 일했다.



엄마와 나의 모든 봄날들
엄마와 나의 모든 봄날들
송정림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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