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내 미래는요?" 뮤지컬 '제이미(JAMIE)'에서 조권이 맡은 제이미는 17세의 게이이자, 드랙퀸이 꿈인 소년이다. 이 소년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나이 많은 드랙퀸 휴고에게 소리쳐 묻는다. 소년의 눈빛은 반쯤 겁에 질려있지만, 휴고의 답은 단호하다. 그 미래가 오로지 너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이 순간은 제이미에게 앞으로 수많은 길이 주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조권은 제이미로서 울적한 소년의 본심을 드러낸다.
실제 드랙퀸이 꿈인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조권은 혼란에 빠진, 용기가 충분하지 않은, 하지만 끼와 명랑함은 넘쳐흐르는 소년 제이미 그 자체로 무대에 서 있다. 이 역할이 너무 하고 싶어서 군대에 있을 때 정기 휴가를 내고 하이힐 한 켤레만 들고 가서 오디션을 봤고, 오디션을 준비하기 위해 "전신 거울이 없어서 커피포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연습했다"는 그의 말을 듣고 이 역할을 마냥 17세 소년의 성장기로 바라보기란 어렵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헤롯을 시작으로, '이블데드'와 같은 뮤지컬 작품들에서 가수 이상의 자리를 꿈꾸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늘 충실하게 소화해온 사람으로서 조권은 17세 소년을 연기하기에 이미 충분히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 환경이 어려웠고, 어머니가 병을 앓고 계시다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꺼내는 조권의 모습은 어쩐지 자신의 하루하루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커가는 제이미의 모습과 꼭 닮았다. 제대를 하고 새로운 날들을 맞이한 조권에게 쏟아지는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는 "오늘은 너희들을 위한 날이야"라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친구들과 졸업 파티의 흥겨움을 나누는 제이미의 것처럼 친절하고 따사롭다. 이것은 그동안 조권이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 종종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내던 순간들과 겹쳐지며 가능해진 일이다.
타인의 삶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넓히는 사람의 연기와 노래는 그 자체로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조권이 늘 응원하고 싶은 사회는 머지않아 거꾸로 조권을 응원하고 싶은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은 간혹 벽에 부딪히더라도, 계속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제이미와 같은 명랑한 사람들의 에너지를 조권 또한 지니고 있다. 언제나 밝을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나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응원은 언제도 아깝지 않다. 그러니, 고 제이미(Go Jamie), 고 조권(Go Jo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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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