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제이미, 고 조권!
조권이 늘 응원하고 싶은 사회는 머지않아 거꾸로 조권을 응원하고 싶은 사회가 될 것이다.
글ㆍ사진 박희아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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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제이미> 공연 사진. 쇼노트 제공

"그럼 내 미래는요?" 뮤지컬 '제이미(JAMIE)'에서 조권이 맡은 제이미는 17세의 게이이자, 드랙퀸이 꿈인 소년이다. 이 소년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나이 많은 드랙퀸 휴고에게 소리쳐 묻는다. 소년의 눈빛은 반쯤 겁에 질려있지만, 휴고의 답은 단호하다. 그 미래가 오로지 너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이 순간은 제이미에게 앞으로 수많은 길이 주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조권은 제이미로서 울적한 소년의 본심을 드러낸다. 

실제 드랙퀸이 꿈인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조권은 혼란에 빠진, 용기가 충분하지 않은, 하지만 끼와 명랑함은 넘쳐흐르는 소년 제이미 그 자체로 무대에 서 있다. 이 역할이 너무 하고 싶어서 군대에 있을 때 정기 휴가를 내고 하이힐 한 켤레만 들고 가서 오디션을 봤고, 오디션을 준비하기 위해 "전신 거울이 없어서 커피포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연습했다"는 그의 말을 듣고 이 역할을 마냥 17세 소년의 성장기로 바라보기란 어렵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헤롯을 시작으로, '이블데드'와 같은 뮤지컬 작품들에서 가수 이상의 자리를 꿈꾸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늘 충실하게 소화해온 사람으로서 조권은 17세 소년을 연기하기에 이미 충분히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 환경이 어려웠고, 어머니가 병을 앓고 계시다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꺼내는 조권의 모습은 어쩐지 자신의 하루하루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커가는 제이미의 모습과 꼭 닮았다. 제대를 하고 새로운 날들을 맞이한 조권에게 쏟아지는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는 "오늘은 너희들을 위한 날이야"라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친구들과 졸업 파티의 흥겨움을 나누는 제이미의 것처럼 친절하고 따사롭다. 이것은 그동안 조권이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 종종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내던 순간들과 겹쳐지며 가능해진 일이다. 


뮤지컬 <제이미> 공연 사진. 쇼노트 제공

타인의 삶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넓히는 사람의 연기와 노래는 그 자체로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조권이 늘 응원하고 싶은 사회는 머지않아 거꾸로 조권을 응원하고 싶은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은 간혹 벽에 부딪히더라도, 계속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제이미와 같은 명랑한 사람들의 에너지를 조권 또한 지니고 있다. 언제나 밝을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나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응원은 언제도 아깝지 않다. 그러니, 고 제이미(Go Jamie), 고 조권(Go Jo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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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