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창간 이후 기자, 사진가, 편집자, 발행인으로 살아온 저자 정용철이 중심에서 물러난 뒤 깨달은 삶의 진실에 대해 쓰고, 직접 찍은 사진을 엮었다. 저자는 은퇴 후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하면서 익숙해진 긴장을 풀게 되고, 나와 타인을 향한 시선에 ‘애정과 부드러움’을 담으려 하고, 웬만한 일은 통과시킨다고. 하나 여전히 사는 데에는 최선을 다한다.
이 책에는 인생의 가장자리에서 바라본 삶과 자기 성찰이 담겨 있다. 사람, 자연, 일, 말, 관계, 소통, 글쓰기 등 인생 보편의 주제를 다룬다. 하루하루를 전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장기로도 볼 수 있다. 소소한 그의 일상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 역시 눈부신 생의 진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이 『사랑 많은 사람이 슬픔도 많아서』입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최종 교정을 보면서 ‘이 책은 결국 사랑과 슬픔의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자, 시간, 글쓰기 등에 관해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그 안에 슬픔이 깔려 있더군요. 생각보다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어둠, 아픔 이런 것들이 또 슬픔이랑 통하죠. 편집자가 이 제목을 제안했을 때 저는 반대했습니다. 사랑이 많다는 말이 걸렸거든요. 그러다 사랑이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랑은 부지런함이었습니다. 관심, 애틋함, 연민도 사랑이지요. 사랑은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좋은 것일수록 나누고 싶다.”라는 말이 있어요. 제가 『좋은생각』 을 만들고, 지금까지 글을 쓰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어요. 건강, 운명, 인간관계 등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많거든요. 이게 일종의 슬픔이 됩니다. 인간의 한계, 부족, 미완성 등을 느낀 사람이 슬퍼합니다. 재미있는 건 사랑이 많은 사람이 슬픔을 더 잘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슬픔도 많이 느끼죠. 슬픔이 있다는 건 사랑도 있다는 얘기겠죠? 그러니 우리는 슬픔을 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슬픔과 사랑이 만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슬픔의 끝에서 만나는 찬란한 희망일 겁니다.
월간 『좋은생각』 은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본 적 있을 것입니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발행인으로 잡지를 만들었는데, 책의 서문을 보면 ‘좋은생각’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에도 썼지만 저는 늘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시골에서 십 남매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나 존재감이 미미했죠. 지망한 학교마다 떨어졌고 직장도 자주 옮겨 다녔습니다. 그런 사람이 『좋은생각』 을 만든 겁니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잘 만들면 되겠지 했는데 갈수록 부담감이 커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읽는 잡지를 만드는 내가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 싶고, 제대로 공부하며 실력을 쌓은 주변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가 작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잡지의 인기가 높아지니 감당하기 어렵더군요. 그런데 이런 생각도 나중에 든 거예요. 올해로 『좋은생각』 이 삼십 년이 됐는데 처음 십 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일에 휩쓸려 가다 보면 정작 안을 들여다보기가 어렵거든요. ‘우리 잡지가 최고다, 내가 쓴 글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스스로에게 도취된 채 지냈어요. 그땐 이 책의 의미와 가치를 잘 몰랐지요. 조금씩 알아 가면서부터 내가 해 온 일이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또 지난날의 부끄러움이 보였죠. 이것 역시 『좋은생각』 이 가진 힘 아닐까요? 이 책은 사람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 같고, 작아 보이지만 그 힘이 대단합니다. 그곳에 있지만 미처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곳의 실재를 보여 줍니다. 독자가 독자를 보며 끊임없이 서로를 확장시켜 나가죠.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잡지를 스스로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제가 매달 만들었으니 얼마나 중압감이 컸겠습니까.
작가님이 직접 찍은 사진이 책에 들어 있고, 또 글에도 사진사의 역할을 했다고 나옵니다. 작가님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입니까?
젊은 시절에 사보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때 사진사가 따로 없어서 제가 그 역할을 했죠. 취미나 재능이 아니라 그저 책에 쓰려고, 먹고살려고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 보니 깨달은 게 있어요. 세상에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사람, 자연, 물건에서도 그 고유의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죠.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 쉬운데 사진기를 통해 프레임을 만들고 대상을 포착하면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걸 알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진으로 보관하고 싶었죠. 또 전하고 싶었고요. 제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타인과 공유하길 바랐습니다. 사진은 제게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여행 가서 사진 찍을 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걸 제가 찾아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오래 찍었는데도 썩 잘하진 못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양으로 승부하죠. 여러 장 찍다 보면 좋은 사진 하나쯤 건질 수 있으니까요. (웃음)
“처음부터 내 생각을 정확하게 밝혀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쉽게 응하거나 애매하게 말했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잘못 결정했어도 지키지만, 번복이 가능한 것은 결국 뒤집어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173쪽)를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이렇게 책에는 작가님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꺼내 놓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죠. 삼십 년간 해 온 말과 쓴 글이 있잖아요. 잡지를 통해 영향받은 분도 많고요. 솔직한 글이 그분들에게 실망을 주진 않을까 걱정되고, 제 주변 사람이 상처를 받진 않을까 염려도 됩니다. 결국 이건 작가의 선택 문제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정직을 빼면 의미가 없습니다. 산문 같은 경우엔 더 그렇겠지요. 저는 정직은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글을 쓰는 사람에겐 그게 생명력이지요. 독자에게 부끄러울 일을 쓰면 어떻습니까. 정직하지 못한 게 더 부끄럽지 않을까요. 저는 이번 책 『사랑 많은 사람이 슬픔도 많아서』에서 저의 못남을 충분히 고백했습니다. 거리낌이 없어졌습니다. 보다 자유로워졌지요. 대신 근거를 가지고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하나 짚어 가며 오랫동안 생각한 뒤에 썼습니다. 파커 J. 파머, 폴 투르니에 같은 작가의 글과 『좋은생각』 독자 글에서 배운 것입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쓴 글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 많은 사람이 슬픔도 많아서』이 책은 작고 소박합니다. 대단한 메시지가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솔직하게 쓴 글을 읽고 독자들이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접촉’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은 뒤 앞으로의 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가장자리로 물러선 뒤 보이는 것들에 대해, 자신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비단 작가님만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겪을 일일 텐데요. 스스로 느끼는 변화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일터에서 종일 시간을 보낼 때와 은퇴 후에 보는 세상은 당연히 다릅니다. 속한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이겠죠. 저는 긴장해야 하는 일의 현장에서 벗어난 뒤 몸과 마음이 풀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잠자는 게 편해지고 꿈까지 순해졌습니다. 요즘은 성과보다 재미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간에 자유로워져 책을 더 읽게 되었습니다. 파커 J. 파머, 폴 투르니에, 유진 피터슨 등이 쓴 책입니다. 경험한 바를 진실하게 풀어낸 글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여유롭게 책을 읽으니 내면세계가 풍성해졌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유로워지고 보다 깊어졌습니다. 인생이 아름답고 즐거워 보입니다. 물론 삶은 고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랑과 감사의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존재의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나와 가장 변한 점은 이제 꺾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사상에, 어떤 환경에 꺾임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기꺼이 꺾여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꺾인 나뭇가지가 편하게 보이거든요. 색도 변하고 가지도 아래로 처진 가지. 이걸 포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포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한계나 다른 이의 실수 같은 걸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멸이 이해되고 그럴수록 ‘있음’은 더 소중해지지요.
삼십 년간 『좋은생각』 을 만들며 수많은 글을 읽고 또 써 왔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글은 어떤 것이며, 그런 글을 쓰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읽었을 때 찡한 감동을 받는 글이 있습니다. 그런 글은 작품성을 따지지 않고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위로받고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문장을 읽을 때 ‘아, 작가가 좋은 삶을 살고 있구나.’ 부러워하고 감탄합니다. 삶에 긍정적이고, 관계 속에서 기쁨을 찾으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묘미를 알게 된 글을 읽으며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글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소박하고 잔잔한 일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좋은생각』 에서 이런 글을 자주 만납니다. 사람들의 일상을 글로 마주하며 세상은 충분히 따뜻한 곳이구나 생각합니다. 읽을 때마다 글쓴이의 마음과 삶이 아름다워 놀랍니다.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독자들은 서로에게 공감합니다. 일면식도 없지만 글쓴이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현재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마음, 이곳의 사랑과 미움을 드러내고, 실존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 줄 수 있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을 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되는 것,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것, 그럼에도 이 책에 다 담지 못한 내면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가장 후회되는 일은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 같은 것이 부족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답답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누군가 조언해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달라졌을까요? 적극적으로 나서서 저를 끌어 줬더라면 제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을까요? 아마 그런 사람이 있었더라도 제가 받아들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독립심이 강했거든요.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핑계는 대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어도 별반 다르진 않았을 것 같거든요.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닮고 싶은 이도 없었습니다. 천방지축, 우왕좌왕, 갈팡질팡, 그런 식의 삶이었습니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술도 잘 마셨고, 제 성격이 아님에도 남자다움을 강조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무작정 부딪혀 나가려고 했습니다.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했죠. 그렇게 버티며 꺾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점이 아쉽습니다. 좀 더 흘러가듯 유연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요즘은 시간은 많은데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고민입니다. 제가 생각한 바를 글로 전하고 싶은데 마음은 굴뚝같으나 몸이 따라 주질 않습니다. 정신이 앞서 가 있고 몸은 뒤처져 있습니다. 어떻게든 균형을 맞춰 볼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자주 고민합니다. 이제 슬슬 한계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싶으면서도 조금만 더 집중해서 노력해 보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진실하게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지요. 저를 지키고 세우기보다 허물고 해체했더라면 보다 펼쳐진 글을 썼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글을 써 보고 싶습니다.
* 정용철 1953년, 남해 섬 바닷가의 사촌(砂村)이라는 작은 어촌에서 십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과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이후 부산으로 가 성지공업고등학교 전기과를, 서울로 가 동국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자신의 경력에 애정이 많은 것은 ‘글’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빛(전기)과 쌀(농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92년에 월간 『좋은생각』 을 창간할 때 그의 생각은 딱 한 가지였다. 하루에 좋은 이야기를 하나라도 접하면 그 사람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이후 27년간 잡지를 발행하며 삶의 활력과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지금은 인생의 가장자리에서 보는 노년의 의미, 일상의 소중함, 삶의 아름다움, 개인의 자유 등에 대한 글을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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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