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4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일해서 돈 벌고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는 상식적인 사회에 대한 꿈은 배신당하고 오로지 부동산과 주식과 펀드가 모든 걸 빨아들인다. 2016년 촛불을 들었던 마음이 이런 식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치솟은 집값을 보겠다는 건 아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부동산 대폭로, 누가 집값을 끌어올렸나』의 공동 저자 민생·노동 관련 시민단체 더불어삶의 안진이 대표에게 물었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 본부장님과 함께 쓰신 책입니다. 책을 기획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했기 때문에 김헌동 본부장님의 주장은 원래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강연회였습니다. 2019년 5월, 제가 운영하는 시민단체 <더불어삶> 주최로 김 본부장님의 공개 강연을 개최했어요. 일반 시민과 직장인들이 주로 참여한 자리였는데, 강연 내용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고 청중의 반응도 아주 좋았습니다. 세상에 더 많이 알려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김 본부장님이 가지고 계신 풍부한 경험과 지식, 획기적인 개혁 방안은 ‘책’이라는 매체로 종합 정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동 저자이신 김헌동 본부장님과 대담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시는 과정에서 느끼신 점이나 재미있는 일화 같은 것이 있다면요?
주거 문제가 원래 방대하고 복잡합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른데,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주택과 토지가 투기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 있고 제도가 복잡하게 바뀌어 왔습니다. 거짓이 참으로 알려진 것도 많고 과장되어 알려진 것도 많아요. 저도 나름대로는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김 본부장님과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저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어요. 앞으로 더 채워 나가려고 합니다.
대담 과정에서 놀라웠던 점을 하나만 이야기하면, 사전에 질문지를 드리지 않았는데도 김 본부장님이 어떤 질문에도 술술 대답하시는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A4 한두 장 분량의 대답은 기본이었고요. 필요한 대목에서는 숫자도 툭툭 튀어나옵니다. 강남의 무슨 아파트가 1997년에 얼마, 2008년에 얼마, 그리고 2020년인 지금은 얼마, 이런 식이었어요. 현장에서 20년 동안 활동하신 전문가의 내공은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더불어삶>이라는 시민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단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덧붙여서 ‘노동, 주거, 재벌’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러한 주제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더불어삶>은 회원들이 직접 노동·민생 문제를 공부하고 실천 활동을 해나가는 단체입니다. 상근활동가 중심이 아니고 각자 생업이 있는 시민 회원들에게 맞춰 운영됩니다. 지금까지는 ‘실속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홍보를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시민들에게 <더불어삶>을 더 많이 알려 나가려고 합니다.
노동, 주거, 재벌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이 세 가지가 민생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부동산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노동과 재벌 문제는 서로 얽혀 있고, 부동산과 재벌도 긴밀한 관련이 있고요. 부동산과 재벌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 책의 2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자 소개에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뜻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활발히 활동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책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른바 진보 언론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반개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 정부를 비판하지 않고 야당만 탓하더군요.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편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편에 서서 보도하고 시민운동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삶>은 비록 규모가 작은 단체지만 비판에 성역을 두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는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 친재벌 정책을 비판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촛불 시민들의 요구를 기준으로 정책을 분석, 비판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의 힘으로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닙니다. 천만 촛불 시민의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촛불 정부’라고 지칭했는데,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초창기부터 나타났습니다. 노동 쪽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자회사 편입을 정규직화로 포장하거나 대량해고 사태를 일으켰지요. 또 초반에 최저임금을 인상하긴 했는데, 아무런 사전 계획도 없고 후속조치도 없이 조중동의 눈치만 보다가 너무 쉽게 방향을 틀더군요. 결국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철회되고 소득주도 성장은 불로소득 주도 성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집값 폭등과 전월세 폭등이 겹치는 바람에 국민의 주거권이 심각한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촛불 들었던 시민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동산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폭로’와 ‘대폭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지요?
김 본부장님이 소제목에 쓰신 대로 “무늬만 진보, 포장만 개혁”인 세력의 실체를 알리고 싶습니다. 단순한 정책의 실패가 아니고, 무능해서 집값을 못 잡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독자들께서 확실히 아셨으면 합니다. 투기 세력은 어느 정부 때나 있었습니다. 투기로 재미를 보지 못할 것 같으면 그들은 조용해집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그들이 활개 친 원인은 정부 출범과 함께 ‘투기의 꽃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주택임대사업자 특혜로 50만 투기 세력을 양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3기 신도시, 한국형 뉴딜, 도시재생 뉴딜 등에 수백 조를 몰아주었습니다. 최근에 보니 신공항 사업에 또 돈을 쏟아붓겠다고 하고, 토건 사업 예비타당성조사(예타)마저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정책적으로 거품을 더 키우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전체적으로 화가 나고 혈압이 오르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재미를 찾는다면 중간중간 삽입된 정치인들의 아파트 보유 내역을 눈여겨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3부에서 실명으로 인물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부분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재미로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집값의 정상화라는 것이 너무 거대한 문제라서 개인들의 노력이나 사회운동을 통해서나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민단체 대표로서 이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거대한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 맞습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맞습니다. 책의 3부에도 썼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정책을 망쳤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중용되어 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주택정책을 만들던 관료들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똑같이 정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26번째, 27번째, 아니 30번째 대책을 내놓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의 집권세력에게는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고 실력도 없습니다. 그러면 야당이 진정성을 가지고 괜찮은 대안을 제시할 확률이 있느냐? 그럴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요. 결국 해답은 강하게 결집된 시민들의 힘입니다. 관료와 정치인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 정도로 시민의 힘이 강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밤에 읽으면 분노가 치솟아서 잠을 못 자는 책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낮 시간에 읽으시고요.(웃음) 후대에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지인들에게 권해주세요!
*안진이 시민단체 〈더불어삶〉의 대표로 노동, 주거, 재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회원들과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공개 강연회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거리 시위나 캠페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촛불 정부라던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뜻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과 더 활발하게 소통하기로 마음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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