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 칼럼] 창작자의 이중생활 (Feat. 전자양)
바닷물이 차오르는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만들고 있는 꿈을 꿨다. 어릴 때처럼 즐겁게 만들기만 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모래를 빚어서 내가 살 곳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조금 슬펐다.
글ㆍ사진 윤덕원
20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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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 단계로 올라가면서 준비했던 연말 공연이 끝내 취소되고 말았다. 어떻게 기적적으로 여름 공연을 하긴 했지만 결국 올해 예정되었던 단독공연들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 소통하는 일은 새로운 곡을 만들고 발표하는 것과 더불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핵심이기에, 공연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일이 없어진 것 이상으로 어렵고 답답한 상황이다. 

그래서 최근의 많은 일정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밴드의 연주나 근황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서 방송하는 것이다. 공연장에서 밴드가 연주를 하면 그것을 중계카메라로 담아 송출하기도 하고, 소박하게는 작업실에서 연주하거나 근황을 소개하기도 한다. 서점 공간을 빌려 시인들을 초대손님으로 모신 북 콘서트 형태로 진행해 보기도 했는데, 이야기가 좀 더 풍성해져서 좋았지만 진행을 매끄럽게 하면서 연주도 잘 해내기는 조금 어려웠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일 외에 라디오나 TV 방송 출연을 늘리고 있는데, 전업 방송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방송에서 이야기하는데 익숙해졌다. 처음에 비하면 발성이나 발음도 좋아지고 이야기에도 여유가 있다. 특히 EBS 라디오에서 진행을 맡았던 '시 콘서트' 같은 경우는 본격적으로 시와 책, 문학을 다루었기에 어느 정도는 낭독에도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방송의 경험이 쌓여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방송 중에 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하는 것은 어렵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어색한 빈틈이 없게 대화의 방향을 이끄는 것이 방송을 하는 데 중요한 덕목이라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매 순간마다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두 역할을 오가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스위치를 전환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새로운 곡을 만드는 창작의 스위치를 켜는 것은 더욱 큰 전환이다.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며칠이 걸릴 때도 있다. 하지만 시대와 매체의 변화가 더욱 빨라지면서, 이제는 이런 역할들을 마다할 근거도 여력도 없다. 순수하고 깨끗한 인세만으로 살 수 없다면. 

창작에 종사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역할을 더욱 많이 요구받고 있는 이들은 오늘날의 작가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을 돌아보면 행사장에서 만난 동료 중에 뮤지션 다 작가나 시인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팟캐스트에서, 방송에서, 북콘서트에서 자신의 역할을 요구받는 작가들을 만났을 때 나는 그들에게서 동지애 비슷한 것을 느낀다. 



『책, 이게 뭐라고』는 소설가이자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기도 했던 장강명 작가가 쓴 동명의 산문집이다. 처음에 '책, 이게 뭐라고' 의 게스트로 인연을 맺게 된 장강명 작가는 이 팟캐스트의 두 번째 시즌에서는 진행자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더불어 쓰고 읽는 일과 말하고 듣는 일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만든 책이다. 본업인 소설가와 부업(?)이라고 할 수 있는 팟캐스트 진행자를 오가며 작가는 자신의 원래 모습인 '읽고 쓰는 사람' 과는 다른 '말하고 듣는 사람' 으로서의 경험을 풀어 놓는다. 팟캐스트를 시작하면서 겪은 일들과 생각들, '책'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 팀원들과 고민했던 이야기들을 읽으며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때를 떠올렸다. 출판 산업과 매체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나 역시 비장해진다. 스트리밍 시대에 가장 먼저 속하게 되었던 음악 창작자들이 겪었던 일들이 이제 작가들에게도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스포일러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장강명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시즌 2를 끝으로 팟캐스트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나 역시 한동안 꾹 눌러왔던 마음들이 비집고 나와서 감정을 추스르기가 좀 힘들었다. 바닷물이 차오르는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만들고 있는 꿈을 꿨다. 어릴 때처럼 즐겁게 만들기만 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모래를 빚어서 내가 살 곳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조금 슬펐다. 약간 될 대로 되라 하는 마음으로 해파리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기로 했다. 눈을 뜨면 어디론가 떠내려가 있겠지.


엄마 어제 찾아온 그 푸른 해파리

나를 오늘 데려간대요

나를 위에 태우고

흐물흐물 하늘로 흘러갈 거예요

머리가 아파 너무 아파

그 해파리 오늘 따라 가야만 해요

내 인생의 그림은 멀리 떠내려가요

미안 미안 그대 혼자 흐르면서

전자양 ‘해파리의 잠가루비’



책, 이게 뭐라고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저
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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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

뮤지션. 인디계의 국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1대 리더. 브로콜리너마저의 모든 곡과 가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