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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처럼 한 방울씩 신시사이저 음이 조심스레 떨어진다. 그 리듬에 맞춰 하나처럼 엉켜있던 열두 멤버가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물결을 만든다. 멤버들은 따뜻한 봄바람에 이르게 만개한 꽃잎처럼 조금씩 퍼져나가다 노래가 시작하기 직전에야 각자의 위치를 찾아간다. 힘을 아끼듯 크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소리와 정서를 쌓아가던 노래는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며 전신을 활용하는 안무 동작에 실린 예나의 ‘두 눈을 감고 느껴봐’라는 외침과 함께 갑작스레 템포를 올린다. 어느새 무대 중앙에 위치한 원영이 ‘Shoot! Take a Panorama’라며 속삭이는 순간, 노래는 비로소 본색을 드러낸다.
‘Panorama’는 아이즈원이 12월 7일 발표한 네 번째 미니앨범
그 가운데 언제나 돋보이는 건 이들의 노래와 무대 완성도였다. 아이즈원을 탄생시킨 예능 프로그램의 순위 조작과 관련한 재판이 진행되며 그로 인한 각종 잡음이 끊임없이 불거졌음에도, 적어도 이들이 무대 위에서 피워내는 꽃의 멋과 향기에 의심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즈원의 노래와 무대를 듣고 보다 보면 누구라도 이들이 내뿜는 에너지의 크기와 속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휘몰아치기’ 때문이다. ‘Panorama’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의 속도가 아닌 1.5배로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듯 한 번 시동이 걸리면 잠시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마지막을 향해 그저 내달리기만 하는 노래를, 멤버들은 늘 더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소화해낸다.
물론 평온함만이 무기는 아니다. 아이즈원 멤버들은 결코 길지 않은 자신의 파트를 단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대로 소화한다. ‘Panorama’에서는 앞서 언급한 예나와 원영의 파트 외에도 사쿠라가 원영에 기대 카메라를 응시하며 내뱉는 ‘이제 같이 날아가’, 곡 후반 이미 정점이 아닐까 싶었지만 한 번 더 피치를 올리며 곡과 보컬의 한계를 시험하는 은비의 ‘하늘 너머 날아가 / 온 세상에 이 목소리 퍼지게’, 핑클 ‘영원한 사랑’의 ‘약속해줘’를 넘어서는 케이팝의 또 다른 약속 원영의 엔딩 파트 ‘영원히, 약속’ 등이 눈과 귀에 띈다. ‘Panorama’는 무르익은 멤버들의 역량으로 곳곳이 포인트고 곳곳이 킬링 파트인 노래로 완성되었다.
놀라운 건 이런 완성도가 굳이 긴 시간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즈원은 익히 알려져 있듯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프로젝트 그룹이고, 따라서 케이팝의 필수요소로 자주 언급되는 수년에 걸친 긴 연습생 기간이나 합숙 과정이 없었다. 여기에 올해 초 데뷔부터 프로듀싱을 담당해 온 플레디스와의 계약이 종료되며 스윙엔터테인먼트로 권한이 이동되는 악재도 만났다. ‘Panorama’의 꽉 찬 무대는 이렇듯 어떻게 해도 일관성 있는 기획 제작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기반에서 다시 한번 이들만의 세계가 완성도 높게 구현된 기적에 가까운 순간이다. 아무리 좋은 원석들만을 모아도, 아무리 거창한 세계관을 만들어도 좀처럼 해낼 수 없는 것들을, 이들은 이토록 너끈히 해낸다. 아이즈원만의 휘몰아치는 세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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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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