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친절한' 음악에 익숙하다. 손가락이 지배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맞춰 3분을 넘기지 않는 러닝 타임, 사운드 극 초반에 선곡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 디자인과 관련한다. 게다가 주지하듯 코로나 블루에 잠긴 사회를 고려하여 고요한 위로를 속삭이거나 쾌락을 선사하는 콘텐츠가 기하급수적 증가세를 보인다. 다수의 음악은 최대한 대중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착한 심성을 지녔다.
김일두의 음악은 반면 심기를 거스른다. 가사를 음미하자니 휘갈긴 시의 언어가 이해를 거부하고, 쇳가루를 덕지덕지 묻힌 사포 같은 목소리는 고독함을 듣는 이의 몫으로 돌린다. 오직 보컬과 통기타로 추상 표현주의를 악상으로 옮긴 영혼 시리즈 3부작,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흐리는 <꿈 속 꿈>. 그곳에서 우리는 쉽게 타협을 논하지 않는 김일두를 보았다.
그랬던 그가 몸을 들썩이게 하는 음악을 들고 왔다. 영혼과 꿈이라는 무체에서 벗어나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열두 달을 주제로 잡았기 때문일까. 좀 다르다. 여태껏 보여준 음악 중 멜로디가 가장 명징하다. '가깝고도 머언', '마음에 쓰는 편지'와 이어지는 '투명한 너'는 그에게서 보기 드문 풀밴드를 선보이며 복고 흐름을 적극 수용한다. 특히 '가깝고도 머언'의 브라스 사운드를 타고 연신 흐르는 '괜찮아'가 낭만으로 풀어지는 것이 쾌감으로 귀결된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가 영롱하게 일렁이는 '마음에 쓰는 편지'와 '투명한 너'를 지나면 나머지는 모두 일전에 발매한 곡을 다시금 매만진 것들이다. 여전히 매끈하다고 할 수 없는, 독하게 우려낸 원시성은 남아있으나 일종의 '거리 좁히기'를 선택한 모양이다. 기타 스트로크만이 배경이 되었던 '머무르는 별빛'과 '사랑의 환영'에 무드를 더해 부피를 채운 것, 그로 인해 유영하는 메시지와 깊은 울림이 부담 없이 가슴에 내려앉게 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는 성공이다.
대표곡 '문제 없어요'의 감흥이 덜 하다는 아쉬움만 있을 뿐, 앨범에 흠이란 없다. 이전에는 아티스트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의 두께가 두터웠다면, <새 계 절>은 그가 주조한 일 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명확한 전달을 꾀한다. 이 와중에 특유의 나그네 정서가 뿌리 깊이 박혀 있어 대중을 의식하여 친화를 택한 것보다는 장르의 변화를 통해 다각화된 면모를 선보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김일두의 음악이 더없이 반갑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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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