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녹음을 하고 있는 오늘이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이에요. 이번 주제는 ‘읽었다고 마구마구 자랑하고 싶은 책’인데요. 마침 여성의 날이기도 해서 여기에 더 왠지 뾰족하게 걸맞은 책을 갖고 가면 좋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책보다 잘 모르는 책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골라서 가지고 왔어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소이언 글 | 윤정미 사진
표지를 보자마자 압도되는 책이에요. 처음에는 제목과 표지를 보고, 성 역할을 고착화시키는 책은 아닌지 궁금증이 생겼는데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핑크 물건들을 모으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관심을 갖고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죠. 이 책은 사진과 글이 같이 결합된 책입니다. 사진을 윤정미 작가님이 찍으셨어요. 작가님은 원래 공간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던 분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 공간에 들어간 사람, 공간에 있는 동물, 공간에 있는 사물 등 관계성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신 분이라고 하는데요.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공부하셨고요. 대학원에서 사진 디자인, 이후 외국으로 유학을 가셔서 비디오까지 전공을 하신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바로 ‘핑크 & 블루 프로젝트’입니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엄청 많은 상을 수상하셨고요. <뉴욕타임즈>에도 소개가 됐고, <라이프>와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도 장식하신 적이 있다고 해요.
책에 등장하는 글들은 소이언 작가님께서 쓰셨어요. 아마도 소이언 작가님이 윤정미 작가님의 사진들을 늘어놓고 스토리텔링을 하신 것 같은데요. 글이 원래 윤정미 작가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담고 있어서요. 시너지가 엄청난 책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책을 보다 보면 6살 지우가 왼쪽 페이지에 있고요. 10살 지우가 오른쪽 페이지에 있는 부분이 있어요. 뭐가 다른가요? 6살 지우는 완벽하게 분홍에 둘러싸여 있잖아요. 그런데 10살 지우의 방에는 물론 분홍색이 많기는 하지만 노란색 물건도 있고, 보라색 물건도 있어요. 파란색도 있고요. 이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거죠. 자라면서 세상에는 색깔이 참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동시에 남자 색, 여자 색이라는 것은 없구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색이 중요한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성장하게 된다는 겁니다.
색이라는 것에 어떤 성관념, 고정관념을 심어 놓지만 이것을 선택하고 변주하고 활용하는 건 개인의 몫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에요. 우리의 선택으로 내 주변의 물건이나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러니까 나의 색깔을 찾는 것이 어쩌면 인생에 중요한 어떤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김이경 저 / 윤석남 그림 | 한겨레출판
이 책은 3월 1일 삼일절과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기 위해 일부러 이 시점에 기획을 해서 나온 것 같아요. 마침 지금 책 제목과 같은 이름으로 윤석남 선생님의 전시회가 학고재 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거든요. 독립운동을 한 여성 초상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고요. 전시가 좋다는 리뷰도 굉장히 많으니까요. 관심 있는 분들은 꼭 관람하시면 좋겠어요.
저는 윤석남 선생님의 그림을 워낙 좋아하기도 해요. 많이들 아시겠지만 윤석남 선생님은 가정 주부로 사시다가 마흔 이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신 작가님이고요. 여든이 넘은 지금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죠. 최근에는 초상화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요. 조선시대 여성 초상화가 유달리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놀라운 건 독립운동 국가유공자 중 여성이 전체 3%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책에 실린 여성 독립운동가 14인 중에도 월북을 해 인정을 못 받는 분도 있고, 생사를 알 수 없는 분도 있어요.
글은 『애도의 문장』을 쓰신 김이경 작가님께서 쓰셨는데요. 마침 작가님이 역사를 전공하셔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신 것 같아요. 덕분에 우리가 몰랐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 그 당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서 뜻을 모았다는 사실을 재발견할 수 있어요. 특히나 이 책이 특별한 게 김이경 작가님이 각 인물에 대한 글을 1인칭으로도 쓰시고, 인터뷰처럼도 쓰시고, 서간문처럼도 쓰셨다는 거예요. 인물의 이야기를 각자 다른 형식으로 쓰신 게 굉장히 특별한 지점입니다.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고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는 지금,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제 한 몸을 불살랐으나 결국 얻지 못하고 찾지 못한 채 중원에 묻힌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대신해 조국에 가서 보고해야만 한다. 싸웠노라고. 조국을 위해 싸웠노라고. 나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캘리가 추천하는 책
진서하 저 | 발코니
역대급 캐스팅과 역대급 호흡으로 역사에 남은 <책읽아웃>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공개방송에서 정세랑 작가님이 독립출판 에세이로 소개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에요. 반갑고, 놀랍게도 지난 1월에 개정판이 출간되어 지금은 예스24에서도 구매하실 수 있게 되었더라고요. 동네 책방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독립출판 에세이가 힘 있게 살아 남아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잖아요. 이 과정이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데요. 저는 무엇보다 사랑의 힘을 계속 생각했어요. 정지혜 작가님이 첫 책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에서 ‘투표적 소비’ 라는 개념을 소개해주셨죠. 최소한의 돈을 써서 최대 이익을 얻는 ‘합리적 소비’와 비교해서, 투표적 소비는 자신의 가치관을 넓히거나 공감하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을 말하거든요. 내가 응원하고, 내가 공감하는 가치에 돈을 쓰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렇게 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도 요즘은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책의 멋진 점은 또 있는데요. 책에 세 개의 추천사가 있거든요. 책의 탄생과 성장에 큰 기여를 한 책방 ‘책봄’의 최현주 대표님, 책을 쓴 진서하 작가님의 십년지기 친구 이민희 님, 그리고 독립출판으로 나온 초판본을 먼저 만난 독자 박소정 님의 글이 실려 있는데요. 유명한 작가에게 추천사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책과 정말 가까운, 진심으로 추천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사를 받은 거잖아요. 그 마음이 느껴지면서 덕분에 책이 더 완벽해졌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정말 의미가 있는 추천사들을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작가님은 “순간마다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늘 힘들었다” 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와서도 내가 한 말들, 내가 부주의하게 한 반응들을 곱씹고 반성하는 사람인데요. 그래서 더욱 우정, 사랑이 소중한 거죠.
나는 대체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이들과 마음이 맞아 서로의 치부를 내어놓고 함께 울고 웃는 나를 발견할 때만큼은 내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그 착각이 때로 나를 살게 만들었고, 아주 잠깐은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내가 나여서 너무 힘들지만 이렇게 어떻게든 나아지려고 애쓰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을 생각하면 또 덩달아 조금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 책 함께 읽어보자고,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고 여기저기 자랑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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