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독서실을 시작했다. 금요일 밤 9시에 모여서 1시간 30분 책을 읽은 다음 각자 그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테스트 버전으로 오래 전부터 독서실을 하던 분들만 받았다. 두 번 해보고 신규 회원 가입도 열어 두었는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는 멤버가 우울에 대해 이야기하길래 코로나로 인해 외국은 우울증 환자가 2배 늘었는데 한국은 5배 이상 6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더라, 관리 잘해야 한다고 했다. 요가를 다시 시작했더니 한결 나아졌다고 하길래 책에 보면 우울증은 전두엽과 후두엽 사이 전기신호를 원활하지 않아 일어나기도 하는데 전후두엽간 신호가 잘 전달되려면 운동이 필수라고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두 번째 멤버는 여러 번 서점 행사에 참여했던 분이다. 주로 심리관련 북토크였는데 저자와의 대화 중에 심리상담사를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지만 병원 가기는 망설이는 중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한결 밝아진 모습이었다.
“리스본에서 '마음치유책방' 유튜브 촬영할 때 하지현 선생님을 뵙고 좋았어요. 용기 나서 병원으로 찾아갔는데 저 우울증 아니래요.”
화면 안에서 검사지를 들고 환하게 웃는다. “정말 다행이에요”라며 덩달아 좋아했다. 종종 만날 때마다 얼굴이 쓸쓸하고 목소리가 떨려서 걱정했던 손님이었다. 건강하다니 기뻤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다가 옆을 보니 다른 멤버 얼굴이 어둡다. 왜 표정이 안 좋냐고 했더니 “제가 우울증이거든요. 듣기가 좀 불편해서요.”라고 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오래 여럿이 모이는 모임을 하지 않다보니 누군가의 다행이 누군가의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었다. 진심으로 사과했고 우리는 웃으며 모임을 마무리했지만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코로나의 날들을 통과하며 나는 무엇을 잊었고 잃었고 놓쳤을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클럽하우스가 있어 다행이다. 방 제목은 ‘서점에 대하서 바라는 것을 들려주세요’라고 적었다. ‘들려주세요’가 가장 중요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들어와 서점에 바라는 점을 이야기해주었다.
“독립서점은 주인의 색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중에 맞추느라 취향을 잃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독립 서점 주인분들은 혼자 너무 많은 일을 하더라고요.”
“오래 하세요. 아끼는 공간이 문 닫을 때마다 마음이 상당히 아파요. 서점이라면 더 아플 겁니다.”“저는 도서관에서 일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본인의 지자체에 건의하세요. 지자체와 도서관에 예산이 있습니다. 작은 서점들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서점에 바라는 점을 들려주면 반영해서 더 나아지려고 했던 것뿐인데 깨달았다. 책과 책방을 아끼는 분들은 이렇게나 진심이구나. 그런데 이 분들에게 동네책방이란 도움이 없으면 소멸할 것처럼 보이는 약한 존재였구나. 소중하게 여겨주는 분들을 걱정시키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은 고맙게 간직하되 단단해질 방법이야 책방 스스로 부지런히 찾아야한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다, 다만 찾지 못했을 뿐. 길을 찾는 일을 좋아하는데 한동안 고단하여 외면하고 있었다. 응원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다. 덕분에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스피커 중에 “주차장 좀 만들어달라”, “왜 그리 좁냐, 쾌적하게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 “배송료가 비싸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 외국 도서관에서 일하신다는 분이 마이크를 열고 이야기했다.
“국경이 닫혀서 1년을 한국에 있었습니다. 전국 서점을 다니며 500권정도 책을 샀어요. 애정을 갖게 되어 사람들과 동네 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놀랍게도 대형서점에게나 바라야 할 것을 동네 작은 서점에 바라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동네 서점은 결국 언젠가는 자신이 소멸할 것을 알면서도 책 읽는 문화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입니다. 주차장, 포인트, 무료 배송과는 바꿀 수 없는 가치 아니겠나요.”
덕분에 주차장 이야기를 하시던 분이 생각을 바꾸셨다.
“잘 몰랐구나 싶네요. 듣고 보니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 계신 동네 서점 사장님들, 혼자 어려워하지 말고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우세요. 돕고 싶습니다. 기부라도 하고 싶어요.”기부를 원하는 동네서점은 없었다. 이해를 원했다. 시작할 때보다 한결 좋은 분위기 속에 방을 닫았다. 같이 방에 있던 서점 주인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한국에 동네서점들이 여기저기 생겨난 것은 5년 전쯤부터다. ‘동네서점’이 뭔지 사람들이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모른다고 비난하지 말고 알게 해주자, 방금 전에도 보았지 않나, 알고 나면 달라진다 생각했다. 다음 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땡스북스에서 ‘동네서점 사용법’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걸 보았다. 작은 서점들이 퍼나르기 시작했다. ‘책의 사진을 찍지 마세요. 저작권 보호를 위한 일입니다. 판매하는 상품이니 책을 조심히 다룹시다. 음료는 테이블 위에 두세요. 물에 취약한 책을 보호해주세요.’ 당연히 알아야할 듯한 내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이유는 대형서점에선 음료를 들고 다니거나 사진을 찍거나 책을 구겨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 방을 끝낼 때 서점을 아끼는 분들에게 주기적으로 열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을 열고 동네서점에 대해 알려보기로 했다. 지역별로 같이 할 서점주인들도 모았다. 작은 서점이 갖는 의미와 힘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알게 해주고 싶다.
서점 계정에 적었다.
“작은 서점이라 불편하고 부족한 점이야 있겠습니다만, 우리의 작음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초보 시절엔 작다는 말에 마음이 상해 2호점을 크게 만들기도 했지만 더 이상 커지는 것을 욕심내지 않고 작아도 잘할 수 있는 일, 작아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향해 가려고 합니다. 단단하게 키우려고 매일 노력하다보면 어느 날엔가 “어? 작네?!”라는 말에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할 수도 있겠죠. 네에. 우리는 작은 서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나는 책들은 틀림없이 좋은 책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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