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서 돈을 버는 세상은 끝났다. 그런 세상이 있긴 했었나? 극소수를 제외하면 작가라는 직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없다.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 대부분이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을 갖고 있으며,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원고를 작성해 책 한 권을 완성한다. 그렇게 열심히 만든 책도 대단한 수익을 가져다주진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책을 냈다는 만족감이 더 클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출간하고 싶어 한다. 특히 소설가 지망생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밤을 새서 쓰고, 초고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고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어 한다. 도대체 그런 열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단지 소설가라고 불리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일까? 명예욕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구는 원초적이다. 소설을 쓰는 건 칼럼으로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거나, 논문으로 이론을 정교하게 만드는 일과는 다르다. 소설에는 한 가지 주장으로 수렴될 수 없는 삶의 복잡한 결이 담겨 있다. 가령 우리의 욕망은 사회과학 서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철학서는 철학자의 결혼생활에 대해 알려 주지 않으며, 노동 관련 통계에는 울분에 찬 욕설이 담기지 않는다. 한 가지 이데올로기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세상이 소설에 담겨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니까 한 10년 전에? 열심히 합평 수업을 들으러 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울고 웃었다. 그때 소설에 담고 싶었던 것도 세상의 복잡한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이것이 정의다, 저것이 악이다’라는 단언에 염증을 느껴 ‘정말 그것이 정의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가?’라고 되묻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한 통찰력과 설익은 분노 때문에 결과물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말하자면 나에게는 좋은 소설을 위한 재료 자체가 없었다. 복잡한 세상을 표현하기에는 나 스스로가 너무 미숙했다.
혹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까? 한때 소설을 쓰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딱히 의욕도 열정도 없는 사람 말이다. 『연과 실』을 읽고 나면 퇴근 후 합평 수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할지도 모른다. 앨리스 매티슨의 소설 작법서 『연과 실』에는 우리는 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며, 그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마의 산』의 서술은 삶을 잠식하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주제와 떼어 놓을 수 없다.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의 날 선 대화들은 한 개인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보여 주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작가가 품고 있는 감정과 아이디어는 적절한 규칙을 통해서 자유롭게 해방될 수 있다.
미숙함이란 열정에 비해 기술이 모자란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때문에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기술을 습득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연과 실』에는 미숙한 작가의 실수를 위트 있게 꼬집는 대목이 많아 습작을 써 봤던 이들이라면 읽다가 얼굴이 빨개질지도 모른다. 시간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것, 갑작스럽게 초현실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것, 주인공의 내면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서술하는 것, 모두 이야기에 자신 없는 작가 초년생들이 저지르는 실수이다. 이것은 실제로 내가 습작을 쓸 때 저질렀던 실수이기도 하고, 하나의 작품에서 이 모든 실수가 등장하기도 했다. 도발적인 작품, 혹은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엉성함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적절한 통제가 있어야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 『연과 실』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 연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실을 팽팽하게 당겨야 한다. 예전에는 복잡한 세상을 복잡하게 묘사하면, 엉망인 인간을 엉망으로 묘사하면 작가의 본분을 다한 줄 알았다. ‘복잡한 세상’이 ‘복잡한 세상을 묘사한 작품’으로 바뀌려면 그사이에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당신 안에도 자유롭게 날고 싶은 연이 있을 거라 믿는다. 소설 같은 것 왜 쓰냐는 위악으로 그 연을 찢어 버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기술만 익히면 충분히 연을 날아 올릴 수 있으니까. 오랫동안 억눌러 온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데에는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때로는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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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기(엑스북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