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이상적인 여자주인공은 어떤 사람일까. 작가가 추구하는 스타일에 따라 주인공의 자격도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이른바 ‘캔디형’이라고 불리는 유형의 소녀들은 대중서사에서 긴 시간 사랑받았다. 동정받을 여지가 상당한 상황에서도 햇살 같은 낙관으로 주변을 밝히는 유형이다. 애니메이션 〈캔디 캔디〉의 주제곡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유형의 젊은 여성 캐릭터는 만화책부터 일일 연속극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대중픽’인데, ‘이상적인 나’를 투영하는 데 유효함은 물론 시어머니 눈으로 봤을 때 ‘며느리감’으로도 괜찮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캔디형’의 균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외로워도 슬퍼도”와 “나는 안 울어”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말이다. 외로움과 슬픔은 주인공의 조건으로 거의 항상 유효하지만 후자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특히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햇살캐’라면? 아마도 ‘살 만해서’ 철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2019년 영국 〈가디언〉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한국어 단어 ‘눈치(Nunchi)’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기분을 이해하는 기술”이다. 역경 없는 ‘햇살캐’의 특징은 ‘눈치 결핍’에 있다. 인간이란 언제나 내 어려움은 크게 느끼고 타인의 역경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인데, 언제나 즐겁고 명랑해보이기만 하는 캐릭터가 있다? (뒤에서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참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에마』를 처음 읽다가 중도하차하며 느낀 게 바로 그것이었다. 철없음에 대한 한탄(이라고 쓰고 부러움이라고 읽는다). 『에마』의 첫 문장은 이렇다.
미인이지 총명하지 부유하지 거기에다 안락한 가정에 낙천적인 성격까지 갖춘 에마 우드하우스는 인생의 여러 복을 한몸에 타고난 듯했고, 실제로 세상에 나와 스물한 해 가까이 살도록 걱정거리랄 것이 거의 없었다.1
이런 인생을 살고 싶긴 해도 이런 주인공 이야기를 읽을 마음은 없던 스물한 살의 나는 절반 즈음의 지점에서 소설 읽기를 포기했다. 애초에 『에마』 읽기를 시작한 이유도 캐나다인인 영어 회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자기가 사랑하는 영화 〈클루리스〉를 틀어준 기억 때문이었다. 두 시간 동안 영화로 볼 때는 그냥 예쁘고 신나는 이야기였는데, 소설로 한 글자씩 뜯어가며 읽으니 조금 괴로워진 것이다. 번역본이 나오기 전이어서 영어로 읽어야 했기 때문에 독서 진도가 더뎠다는 이유도 한몫 했으리라.
영화 <클루리스> 포스터
〈클루리스〉. 이 영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여러 의미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된, 하지만 뜻밖에도 후속 흐름이 이어지지는 않은 기념비적인 여성 주인공의 10대 영화. 나는 〈클루리스〉가 에이미 해커링 감독과 배우 앨리시아 실버스톤의 커리어에서 돌출된 첫째 가는 이유는 오리지널 각본이 아니라 『에마』 각색작이라서라고 믿는 사람이다. 앨리시아 실버스톤이 소설의 에마 역인 주인공 셰어를 연기한 〈클루리스〉는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관심 없는 10대 영화라는 점에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물론 성장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무리 어제와 오늘이 같다 해도 물 한 잔은 더 마시기 마련이니까! 〈클루리스〉의 주인공 셰어는 비버리힐스 고등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학생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부유하고 자상한 아버지 멜과 함께 풍족하게 살고 있다. 끊임없는 쇼핑이야말로 셰어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인데, 영화의 도입부부터가 패션지 화보같다. 한껏 꾸미고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수영장 옆에서 파티를 하고, 차를 타고 달리는 광고 영상같은 장면들로 시작한 영화는 긴 금발을 찰랑이는 셰어의 모습 뒤로 “샴푸 광고인 줄 아셨죠? 하지만 저도 평범한 10대의 인생을 살아요. 일어나서 양치질하고 학교 갈 때 입을 옷을 고르죠”라는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그렇다. 딱 그 정도가 대부분의 관객과 셰어의 공통점의 전부다. 아버지가 재혼하고 이혼하면서 생긴 의붓오빠 조시의 존재가 약간 거슬린다는 정도가 셰어의 자그마한 스트레스일까? 아빠가 사준 하얀 컨버터블 지프를 타고 학교에 가는 중에 화단을 치고 지나가면서 “어머! 깜빡이도 안 켜고 튀어나왔어요!”라며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친구 디온과 자신에 대한 셰어의 총평 “우리는 질투의 대상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이해하죠.”
〈클루리스〉는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0여년간 지속된 ‘제인 오스틴 붐’의 초입에 있는 작품이다. 1995년에 〈클루리스〉가 개봉했고 같은 해 콜린 퍼스를 전 세계에 알린 영국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과 이안 감독의 과소평가받은 수작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선보였으며, 1996년에 〈엠마〉(기네스 팰트로가 에마로 출연했다) 영화가 나왔고 그해에 『오만과 편견』의 현대적 변주인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출간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 이름은 『오만과 편견』에서처럼 ‘다시’이며 2001년 영화화되었을 때 드라마에서 다시를 연기한 콜린 퍼스가 다시를 연기했다). 이 흐름은 『오만과 편견』의 발리우드식 재해석 〈신부와 편견〉(2004), 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2005), 제인 오스틴 애호가들의 독서와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영화화한 〈제인 오스틴 북 클럽〉(2007), 앤 해서웨이가 제인 오스틴을 연기한 〈비커밍 제인〉(2007) 등으로 잦아들다가 2009년에 이르러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2차 창작 소설(이 작품도 영화화된다)까지 나온 이후에야 잠잠해졌다. 얼마나 난리였냐면 1995년에 제인 오스틴은 〈피플〉지가 선정한 “1995년 가장 흥미로운 인물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될 정도였다.2 제인 오스틴처럼 널리 읽히는 19세기 작가는 더 있지만, 그만큼 대중적 화법으로 반복해서 언급되고 이해받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19세기 사교계에 대한 동경인데,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파티를 즐기는지가 핵심 요소인 셈이다. 〈클루리스〉가 훌륭한 각색인 이유는 『에마』가 사랑받는 정수에 해당하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셀럽인 젊은 여성이 아름다운 옷을 (쉼없이 갈아)입고 사교한다’는 부분을 ‘1995년’이라는 시대에 걸맞게 시각적으로 충실히 옮겼기 때문이다. 참고로 ‘Jane Austen Party’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설과 영화 속 복식으로 ‘제인 오스틴 풍’의 파티를 여는지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 팬들을 위한 코믹콘(Comic Con)인 셈이다.
영화 <엠마> (1996)
에이미 해커링 감독은 〈클루리스〉를 만들기 위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의 로렐라이 캐릭터를 참고했다. “너무나 긍정적이어서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고, 진행되는 상황에 너무 행복해서 거품을 터뜨릴 수 없는” 놀라운 자질을 가진 캐릭터. 그러한 성격이 불러올 수 있는 온갖 농담을 떠올린 뒤 줄거리가 필요해진 해커링은 대학 시절 읽은 『에마』를 소환했다. 리젠시 시대(제인 오스틴 소설들의 주요 배경이 되는 19세기 초 조지 4세 섭정 시대) 하이버리(소설 『에마』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시골 마을)의 속물근성이 셰어와 친구들이 다니는 브론슨 알콧 고등학교와 사회정치적으로 완전히 번역된다고 본 것이다. 셰어와 친구 디온의 이름은 모두 유명한 뮤지션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하지만 에마를 셰어로 바꾸면서 해커링 감독은 현대 사회의 10대(사실은 모든 세대)가 갖는 두려움을 끄집어냈다. 혼돈뿐인 세상에서 통제력을 얻으려는 발버둥의 일환으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을 움직여 통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하지만 세상은 해커링의 세계를 오직 섹스를 두려워하는 10대 소녀들의 패션 전시로만 받아들였고, 해커링은 그런 시나리오들만 받게 되었으며, 〈클루리스〉는 사실상 해커링이 의미 있게 언급되는 마지막 영화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2020년에 안야 테일러-조이가 에마를 연기한 영화 〈에마〉가 공개되었을 때 내가 가장 기뻤던 부분도 호화로운 저택과 드레스, 그릇과 무도회에 있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다. 수치심 없이 부유하다니. 영화에서가 아니라면 지켜보는 일이 이렇게 마음 편할 수 없지.
소설 『에마』는 그 모든 것인 동시에 그 이상의 것이다. 거짓된 솔직함에 대한 제인 오스틴의 이해와 빛나는 대사들을 통해 표현되는 아이러니는 『에마』가 영상화되면서 보여주는 시각적인 즐거움(돈, 돈, 돈! 혹은 돈, 젊음, 아름다움!)에 눈이 현혹되지 않게 해준다. 소설의 첫 문장에 담긴 ‘총명하지’는 의미없는 수사가 아니다. 에마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물론 결혼하면서 소설이 끝난다. 이 문장을 쓰면서 기러기(^^)를 날리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어쨌거나 제인 오스틴 시대의 결혼이란 여성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돈과 관련된 문제임을 에마는 알고 있다. 에마는 제인 오스틴이 겪던 돈과 관련된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운 실험적 인물이었다(그래도 결혼했지만!). 『에마』가 발표된 시대에는 에마가 자신의 결혼을 전력으로 추구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주요 독자층이었을 중간계급 여성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에마에 대해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주인공”이라고 했다. 자기 인생을 사는 데는 소극적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결혼에 개입하는 사람. 모든 것을 갖추었기 때문에 선택할 자격에 고민하는 입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에마는 타인을 계속해서 잘못 파악한다. 자신의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만성적으로, 뿌리 깊게 오해한다. 에마는 자기가 주인공인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을 조연으로 파악하고 그들을 움직이려는 사람이다. 얄미운 건 얄미운 것이고,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자기 돈에 매여 있지 않은 여성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결정을 내릴까. 에마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독신을 경멸하는 이유는 단 하나, 가난 때문이잖아! 수입이 쥐꼬리만 한 독신녀는 우습고 불쾌한 노처녀일 거라는 거지! 아이들의 놀림거리나 되고 말이야. 하지만 부유한 독신녀는 언제나 존중받고 다른 누구 못지않게 분별력 있는 기분 좋은 사람으로 여겨질 거야.”3
소설 속 표현을 빌면, 약간의 위장이나 약간의 오해는 언제나 인간의 삶에 개입해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숨겨둔 악의 혹은 호의 때문일 수 있다4. 예를 들어 소설에서 엘튼 부인은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그들을 깎아내린다. 대화가 끝난 뒤 몇 시간 뒤 우리를 거의 항상 불쾌하게 만드는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유형의 화법이다. 『에마』의 마지막 대사는 에마와 나이틀리의 결혼식에 대해 들은 엘튼 부인이 “아주 처량한 혼례네요!5”라고 말하는 것이다. 에마의 탁월한 친구인 나이틀리조차 그 지성을 에마에 대한 자신의 낭만적인 관심을 감추는데 사용하며 그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돈은 그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가장 노골적이고 표면적인 지표가 되지만, 『에마』를 읽으면서 소설이 그려보이는 하이버리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가난만큼이나 두려운 것은 고립과 고독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다만 2020년판의 〈에마〉에서 에마의 아버지 우드하우스 씨를 빌 나이가 멋지게 해석한 바대로, 소설의 우드하우스 씨는 보이는 대로, 말하는 대로의 인간이다. 그는 낡고 지쳐서 모든 파티가 일찍 끝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코믹한 뉘앙스가 생긴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자 하며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남녀를 둘러싼 온갖 구애행위에 대해서도 진저리를 낸다. 그는 감정적이고 변덕스럽지만 그 모든 것은 공허와 맞닿아 있는데, 공허가 비관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딸 에마의 쉼없는 중매쟁이 노릇(엮을 수 있는 미혼의 남녀가 있다면 무조건 엮고 보는)이 있어서다. 고요함을 추구한다고 해서 혼자서만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는 법이다. 돈이 있고 약간의 활기가 있다. 얼마나 좋은 삶인가. 그래서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우드하우스 씨에게 그만 ‘추구미’를 느끼고 말았다….
+
12월 16일은 제인 오스틴의 생일이다. 소설이든 영화든 함께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보시기를.
이다혜의 어떤 이야기는 두 번 태어난다
소설로 만화로 영화로 드라마로 무대로. 텍스트가 영상이 되고 영상이 텍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이야기들, 이야기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에 주목합니다.
1 『에마』, 제인 오스틴, 윤지관, 김영희 옮김, 민음사, 2025년
2 https://www.upi.com/Archives/1995/12/15/People/1923819003600/
3 『에마』, 제인 오스틴, 최세희 옮김, 시공사, 2016년
4 시공사, “서로 터놓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완전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인간에게 드문, 아주 드문 일이다. 조금이라도 속이거나 얼마간 오해하게 될 일이 늘 생겨나기 마련이다.”
5 민음사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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