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걸그룹 EXID의 멤버인 하니가 이전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난 뒤에 오롯이 혼자서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다. "할게요, 제가 할게요." 사회가 정해준 선로 위에서 일탈을 결심한 청소년들의 어지러운 세상. 그 세상에 대한 분노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이 영화 속에서, 주영(안희연)은 세진(이유미)의 얼굴에 돌을 내리치라고 명령하는 재필(이환)을 붙잡고 울면서 애원한다. 임신한 친구를 더 이상 책임져 줄 수 없다며 모두가 내친 가장 끔찍한 순간, 어른들을 향한 두려움을 마주한 열여덟의 얼굴은 크게 다친 아이의 유약한 그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대부분의 기사에는 EXID 시절의 하니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역주행의 아이콘이었던', '직캠으로 화제가 됐던', '섹시한 매력을 드러낸 곡으로 주목받은'과 같은 표현들은 너무나 흔해 눈에 익을 정도다. 하니에 대해 말할 때 분명 '위아래'라는 곡을 빼놓을 수 없고, '역주행'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몇 가지의 단어들 안에서만 하니를 바라보고 있으면서, 이 영화 또한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하니의 새로운 도전 정도로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온갖 다양한 어른들의 모습이 등장하며 상처받은 아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이 작품은 그가 "소속사 없이" 출연을 결심한 작품이다. 그는 아이돌 가수의 굴레를 벗어나 나를 찾는 과정을 통해 하니라는 이름 뒤에 숨겨져 있던 '안희연'의 모습을 찾아냈고, 하니조차 몰랐던 '안희연'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다만 이 욕망은 인기나 명예 같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행동이 아닌, "나의 바깥 세상이 중요해지는" 순간을 귀하게 여기게 된 그의 입을 통해 구체화된다. 여성 아이돌이었던 그가 '낙태'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뱉은 그 순간은 아마도 그러한 욕망의 핵심을 스스로 나서서 명확하게 찌른 순간이었을 것이다.
"대본을 처음 보고 ‘용감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매경이코노미>)"는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안희연. 예능 프로그램에서 민낯에 가까운 얼굴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안희연. 명상을 하면서 안희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안희연까지. 지금 하니는 하니도 몰랐던 안희연을 발견했고, 그 발견을 통해 당당해진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 앞에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스스로에게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하니도 안희연도 같은 사람이지만, 안희연이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기에 하니가 존재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있다면, 계속 큰소리를 치며 당당하게 세상을 마주하는 그 모습을 한번 더 유심히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아마, 당신이 알던 것보다 더 크고 깊어진 한 여성의 내면이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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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