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곤 작가의 신작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이 출간됐다. 2006년 『B컷』으로 첫 장편소설이라고는 믿기 힘든 블록버스터급 추적 스릴러를 선보이며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최혁곤 작가는 빈틈없이 설계된 스릴러 『B파일』로 ‘두 개의 서사를 하나로 연결하는 전개가 뛰어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 후 작품의 분위기를 180도 전환하여 재기 발랄한 심야 추리극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야구 전문 기자 이용균과 공저한 본격 야구 미스터리 『수상한 에이스는 유니폼이 없다』를 출간, 다양한 소재를 색다른 분위기와 재미로 소화해내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견고하게 쌓아왔다.
『수상한 에이스는 유니폼이 없다』 이후 4년 만에 돌아오셨습니다. 독자분들이 많이 반가워할 것 같은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일상은 늘 똑같습니다. 주중에는 회사 일 하고 휴일 중 하루는 가족과, 또 하루는 집중해서 이야기를 만듭니다. 반복적인 생활이 질릴 법한데 아직은 버틸 만해요. 성취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지치지는 않잖아요. 제가 추리소설을 많이 사랑한다는 방증이겠죠. 작업 속도가 더뎌 아쉽지만 감질나게 쌓이던 원고가 한 권의 책으로 묶이면 적금을 탄 기분입니다. 독자님들 덕에 꾸준히 책을 낼 수가 있다는 그 자체에 감사드립니다. 매년 장편을 출간할 수 있는 날을 꿈꿔봅니다.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은 시공사에서 2015년 출간한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의 스핀오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희윤은 여전히 뛰어난 추리력을 선보이고요. 반면 6년 전 작품이다 보니 달라진 점이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두 작품 주인공은 바뀌었지만 이야기는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같은 설정의 연작보다 변화를 주고 싶었거든요.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분위기가 살짝 어둡고 키치적이라면,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은 명랑하면서 의젓하다고 할까나.(웃음) IT 기술 발달로 현대를 배경으로 추리물을 쓰는 게 갈수록 어렵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관계와 범죄 동기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철칙을 되뇌게 됩니다. 기술적인 트릭이야 반복적으로 재활용되지만, 사람들 관계가 만들어내는 반전은 무궁무진하니까요. 쾌감도 훨씬 크고요.
제목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은퇴 형사’의 ‘영광’이라니, 왜 형사가 아닌 은퇴 형사인지, 은퇴 형사가 어떻게 활약을 한다는 건지 절로 궁금해지는데요.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이 소설에서 ‘은퇴’는 중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은퇴했던 동철수 반장이 하찮고 사적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복직을 하죠. ‘영광’은 그 하찮은 고민을 결국 해결했다는 뜻이겠고. 그 고민이 무엇인지는 마지막 장에서 밝혀집니다. ‘은퇴’라는 단어에 나이듦에 대한 묘한 쓸쓸함이 있어서 ‘영광’이란 단어로 희망의 메시지를 심고 싶었습니다.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에서 동철수 반장은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뿜어냅니다. 매사 허술하고, 중요한 얘기 중에도 샛길로 빠지는 게 특기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동철수라는 캐릭터를 설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얄밉지만 잔정 많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상사의 모습이죠. 또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늘 정의롭고 쌈박질 잘하는 ‘히어로’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동철수 반장이 업무 처리는 좌충우돌하지만 자신의 삶을 구속하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로운 영혼이랄까. 가족 생계 때문에 일에 매여 사는 가장들에게 약간 대리만족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발음이 쉽고 잘 기억될 만한 이름이 필요했는데 좀 드문 성씨인 동 씨—다재다능한 빅뱅의 태양(동영배)을 좋아해서 빌려 왔다—에 가장 흔한 한국 이름 철수를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미수반’이라는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미수반이 ‘미제사건 수사반’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고 보니 ‘미심쩍은 사건 조사반’이어서 희윤이 우울해했다는 부분도 있죠. 서울경찰청 옥탑에 위치한 변방 부서라는 설정은 원래 작가님 머릿속에 있던 것인지요? 아니면 집필을 시작하면서 모티프가 된 것이 있을까요?
사실 경찰청마다 미제사건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고 이것을 다룬 이야기는 꽤 많습니다. 다만 미제사건 다수가 묵직한 강력 사건이어서 소재 활용에 한계를 느꼈어요. 사건 경중과 상관없이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위해서 ‘미심쩍은 사건 조사반’을 만들었습니다. ‘변방 부서 옥탑 허술한 동철수’가 한 조합을 이루니 괜찮은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서울경찰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동창 친구에게 이런저런 자문을 많이 구했는데, 현실적인 부분과 소설적인 부분을 적절히 녹여서 썼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등장하는 이들 중 중노년층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의 말에서도 최근 관심이 가던 소재를 녹여냈다고 언급하셨죠. 정확히는 중노년층의 ‘갈망’과 ‘집착’이라고 하셨는데, 특별히 관심이 생긴 이유가 있으실까요? 이를 염두에 두고 집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실버 세대를 다룬 콘텐츠가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드라마나 영화 대부분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죠. ‘팔리는 콘텐츠’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던데,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그 또한 일종의 편견일 테고, 중노년들에게도 색다른 얘깃거리가 있을 텐데. 저 또한 한 살 한 살 먹다보니 젊은 시절 못 봤던 정서들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노욕, 황혼 이혼, 고독, 자식, 가업 같은 소재들로 에피소드를 꾸미고 싶었습니다. 외국처럼 실버 세대를 다루는 콘텐츠가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찾아오실지 기대됩니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으신지도 궁금하고요,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을 기대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야구 미스터리 속편을 작업 중인데 여름께 완성될 듯해요. 그리고 동철수 반장 이야기를 한 권 더 낼 예정인데 미수반에서의 활약이 이어질지, 개업한 탐정으로 짠~하고 등장할지 고민 중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피 냄새 풍기는 스릴러물을 많이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밝고 경쾌한 미스터리가 좋아졌습니다. 연작물 쓰는 데 재미가 붙어서 당분간 집중하고 싶습니다. 이번 신작 역시 주제와 상관없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추리물입니다. 이 길고도 답답한 시절에 독자님들께 잠시나마 즐거움을 드리길 기대해봅니다. 요즘 한국 장르소설이 많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몸소 느낍니다. 다른 작품들도 많이 사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최혁곤 추리소설과 야구의 ‘규칙’을 사랑한다. 주중에는 흔한 직장인으로 살고 주말에는 쓸쓸히 추리소설을 쓴다. 장편 『B컷』, 『B파일』,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수상한 에이스는 유니폼이 없다』(공저),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외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다. 『조선의 명탐정들』(공저)같은 역사교양서도 썼다. 2013년 『B파일』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받았다.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은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현재 경향신문 편집부 차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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