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원의 반딧불 의원] 당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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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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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발신인 이름을 확인한 박인규 씨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문자 내용은 딱 한 줄이었다.

‘다음 주 일요일 오후에 선생님 찾아 뵙기로 했다.’

진구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2학년 여름 방학 때 전학을 왔으니 함께 학교를 다닌 건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수십 명의 처음 보는 아이들 앞에 서면 대개는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진구는 달랐다. 담임 선생님은 말이 지독히도 많은 편이었는데, 담임이 감독을 맡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면 반 학생들에 대한 잔소리부터 시작해 나라 전체에 대한 푸념으로 끝나는 일장 훈시를 늘어놓곤 했다. 그날도 담임의 훈시는 새로 전학 온 아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금융실명제 이야기로 이어졌고,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는 동안 옆에 삐딱하게 선 진구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 벽 녹슨 선풍기만 쳐다보았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옆에 서있는 새 전학생의 존재를 깨달은 선생님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이야기를 끝내고 인사를 시켰지만 진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까딱하는 것이 전부였다. 선생님은 마침 비어있던 박인규 씨의 옆자리를 가리켰고, 병가로 자리를 비웠던 원래 짝이 아예 학교를 자퇴하면서 진구는 그 자리에 쭉 눌러앉게 되었다. 

B 시에서 자란 대부분의 반 아이들과는 달리 진구의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갈색에 가까웠고 체구도 단단해 보였다. 박인규 씨는 처음엔 그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먼저 인사를 하거나 살갑게 안부를 물어도 늘 돌아오는 대답은 무뚝뚝한 단답형이어서 머쓱해지곤 했다. 나중엔 인규 씨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을 붙이지 않게 되었다. 늘 심드렁한 진구의 표정이 활기를 찾는 것은 체육 시간이 유일했고, 다른 수업 시간에는 대부분 엎드려 잠을 잤다. 둘의 사이에 변화가 생긴 것은 서너 달쯤 지난 뒤였다.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가르쳐줄 수 있냐?” 

진구가 내민 건 수학 교과서였다. 수업 시간에 늘 잠만 자던 녀석이었는데 별일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규 씨는 성의껏 풀이 방법을 알려주었고, 그때부터 둘 간의 일대일 교습이 시작되었다. 문제 풀이에 대한 대화는 다른 주제로도 이어졌다. 진구 아버지는 돌아가신지 오래이고 식당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리던 어머니는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하고 있었다. 진구네 가족이 다른 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중학교를 다니는 여동생이 있다는 것도, 일을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진구가 새벽엔 신문 배달을, 주말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규 씨 집에 아침마다 신문을 배달하는 것도 진구였다. 말만 많은 줄 알았던 담임이 진구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에게 지역 단체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애를 써 주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겨울 방학 때였다. 휴일 새벽 운동을 나갔던 박인규 씨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이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병원이었다. 신문 배달을 하던 학생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인규 씨의 아버지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급히 병원에 갔을 때 응급실 구석에 서 있는 진구를 발견했다. 아버지가 당뇨병을 앓고 있었고,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사람이 쓰러질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의사는 진구가 아니었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는 진구의 손을 붙잡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셨고 진구는 엉거주춤 서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진땀을 흘렸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서로 반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진구와의 수학 교습도 뜸해졌다. 가끔 진구와 마주칠 때면 빚을 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기분도 오래 가지 않았다. 그해 여름, 진구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건 장례식장에 다녀온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진구가 새벽 신문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지 오래였다고 했다. 이후로는 진구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걱정이 된 인규 씨가 진구의 집에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집은 늘 비어있었다. 여동생은 친척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아이들 사이에선 진구가 나이가 많은 선배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누군가는 그가 조직폭력배 똘마니가 되었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밤 늦게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진구를 보았다고 했다. 진구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면서 언젠가부턴 아이들 입에 진구의 소식이 오르내리는 것도 뜸해지게 되었다. 대학 시험이 가까워지면서 바빠진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졸업식 때에도 진구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진구에게 연락이 온 건 작년이었다.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는 전화기 건너편 목소리의 주인을 금새 알아볼 수 있었다. 진구는 인규 씨가 출연했던 아홉시 뉴스 인터뷰를 보고 회사 번호를 찾아 연락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듣는 동창의 목소리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잊혀졌던 누군가가 갑자기 연락을 할 때는 대개 원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얼굴도 모르는 이가 다짜고짜 투자 자문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고, 사업에 필요한 돈을 빌려달라는 동창도 있었다. 약속 장소인 단골 일식집으로 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꺼림직했지만, 진구는 돈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늦게 결혼해 초등학생 남매가 있다는 것, B 시 근처에서 캠핑장을 겸한 농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진구에 대해 알게 된 전부였다. 이야깃거리는 주로 고등학교 때의 사소한 기억들이었는데 진구가 이야기를 하면 인규 씨가 맞장구를 치는 식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내년에 퇴임을 한다고 했다. 학교를 자퇴하다시피 했던 진구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기억하고 있는지, 고교 동창들과 연락이 끊긴지 오래인 박인규 씨로선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날 그는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신 탓에 얼큰하게 취해 잠이 들었고, 오랜만에 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에 박인규 씨는 생각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딧불 의원 대기실엔 그 외에도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나이 지긋한 할머니까지 세 명의 환자가 있었다.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있는 이 작은 의원은 오늘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매일 야간 진료가 있어 늦은 시간 퇴근길에 들르기 적당할 것 같았다. 허름한 상가 건물 3층에 위치한 의원의 대기실은 단출했다. 원장의 약력이나 시술을 홍보하는 포스터와 입간판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로서 그는 투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에만 신경을 쓰는 부실 기업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에겐 믿을만한 곳이 필요했다.

직장 건강검진에서 당뇨병이 의심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믿겨지지 않았다. 혈당 수치는 200이 넘었다. 아버지 때문에 당뇨병에 대해선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당뇨병 환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와 달리 담배는 피우지 않았고, 취할 정도로 과음하는 일도 없었다. 국제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따라 아내가 제주도로 내려가면서 끼니를 챙겨먹기 어려웠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배달 간편식에도 익숙해졌다. 주말이면 등산도 꼬박꼬박 했고 사십 대인 동년배들에 비해 체력도 좋다고 자부했다. 아랫배가 좀 나오긴 했어도 이 나이에 그렇지 않은 남자들이 어디 있던가. 검사 결과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른 곳에서 검사를 다시 받아보기 위해 찾은 곳이 저녁에 여는 이 의원이었다. 박인규 씨가 병원에 온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의사는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한 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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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말씀대로 검사를 다시 해보지요.” 

일주일 뒤 다시 확인한 검사 결과는 이전과 비슷했다. 

“당뇨병이 맞습니다.”

의사의 말에 박인규 씨는 치밀어오는 화를 느꼈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 따위 병에 걸린단 말인가. 당뇨병은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나 걸리는 병 아닌가. 

“제게 무슨 문제가 있길래 이런 병에 걸렸을까요?”

붉어진 그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던 의사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박인규 씨가 잘못을 해서 병이 생긴 게 아니에요. 당뇨병이 왜 생기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릅니다.”

“약을 꼭 먹어야 할까요?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데…… 약을 안 먹고 식이요법이랑 운동을 열심히 해서 관리하면 안될까요?”

“지금은 약을 드셔서 혈당을 낮춰야 하는 상태에요. 평생 약을 먹는 경우가 많지만 무조건은 아닙니다.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선 다음 번에 조금 더 상의하지요.”

약 처방을 받기 꺼려하는 박인규 씨에게 의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풀이 죽어 주의 사항과 부작용을 듣고 돌아온 게 이 주일 전이었다. 약을 먹고 메스꺼움이나 소화 불량이 생길 수 있다고 했는데, 밥을 먹고 더부룩한 느낌이 있었지만 심하진 않았다. 혈당을 낮추려면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니 오히려 소화가 안되는게 나을지도 몰랐다.

회사에서 그는 자기 관리의 표본으로 통했다. 평소와 달리 식당에서 밥을 남기는 걸 보고 의아해하는 동료들에겐 체중 관리를 한다고 둘러댔다. 몇 년 전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던 김대리가 생각났다. 같은 부서에선 김대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 생기다니 어지간히 몸 관리를 안한 모양이라며 혀를 찼고, 팀장인 박인규 씨 역시 그를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제 같은 처지가 되었으니 박인규 씨 역시 손가락질을 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회사에선 건강 검진 결과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일은 없다고 하지만, 당뇨 합병증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인사 고과에 좋은 영향은 없을 것이다. 애널리스트가 잘나가던 시절은 지났지만 그는 이 년 전 지금 회사로 스카우트 된 이후 줄곧 능력을 인정을 받아 왔다. 적극 투자를 유도했던 바이오 벤처가 올해 기술 수출로 대박을 낸 것도 남다른 안목과 꼼꼼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같은 연배에 업계에서 아직까지 활동하는 이들은 이제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나 그는 살아남았다. 박인규 씨는 그 사실이 맘에 들었다. 이 정도 인생이면 괜찮은 것 아닌가. 

그 순간 왜 진구의 얼굴이 떠올랐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가진 것도 없는 평범한 삶인데 표정은 왜 그리 편안해 보였을까. 그날의 만남 후 진구는 가끔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물었는데, 지난 달엔 갑자기 퇴임을 앞둔 선생님을 함께 찾아가자고 했다.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물쩍 넘어갔지만 그 이후로도 몇 차례 재촉을 하더니 이젠 날짜까지 정해 통보를 한 것이었다.

박인규 씨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놀라 일어섰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낯익은 의사가 그를 반겨주었다. 마른 체형에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칼을 가진 의사는 까칠한 첫인상과 달리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마음에 들었다. 진료실 안 집기는 오래되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데스크와 의자, 책으로 가득한 책장과 진찰대가 전부였다. 진찰대 옆에 서 있는 사람 크기의 해부 학습용 인형이 이곳이 병원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인형은 매번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섬칫 놀라기도 했지만 몇 번 마주치고 난 지금은 옷걸이 신세가 되어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약 드시면서 불편한 점은 없으셨나요?”

“소화가 좀 안되긴 했는데 밥을 적게 먹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좋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 듣고 약은 꼬박꼬박 먹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의사는 박인규 씨의 대답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잘 하셨네요. 손목에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찍어드리고 싶을 정도에요. 당뇨병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약을 잘 드시는 겁니다.”

아이를 어르는 듯한 말투였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지난 고민과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았다. 내친김에 좀더 투정을 부려 보기로 했다.

“지난 번에 선생님께서 약을 끊을 수도 있다고 하셨지요. 언제쯤 가능할까요?”

“아직은 일러요. 약을 끊을 수 있는 경우는 열 명 중 한 명도 안되지만, 앞으로 경과를 보고 다시 상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전에 꼭 필요한 게 있어요. 약의 효과를 대신할 만한 생활 습관의 변화, 그게 조건입니다.”

의사의 말에 박인규 씨는 풀이 죽었다. 그도 당뇨병 관리에 있어 식이 요법과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게 안되었을 때의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될 것 같아 불안해요. 죽을 때까지 식이 요법을 해야 한다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의사는 기다란 손가락을 책상에 자판을 치듯 두드리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칼이 형광등 빛을 받아 더 희게 보였다.

“오래 사귄 친구 있으시죠?”

“무슨 말씀인가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 박인규 씨에게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나와 딱 맞진 않아도 평생 가는 친구가 살다 보면 한두 명쯤 있잖아요. 당뇨병을 그런 친구처럼 여기시는 것이 좋아요. 언제든 골치 아픈 존재가 될 수 있지만, 이해하고 노력한다면 편한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것도 당뇨병입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편하게 지낸답니까.”

“평생 가는 병일수록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당뇨병을 피하거나 아예 없애야 할 대상으로 삼으시면 안되요. 대신 큰 합병증 없이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박인규 씨도 그렇게 하실 수 있구요.”

병원 문을 나와 어두침침한 복도와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박인규 씨는 의사가 했던 말에 대해 생각했다. 평생 친구 같은 병이라.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건물을 나왔을 때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그는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문득 진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10명 중 1명이 당뇨병 환자이며, 이를 전체 인구로 환산하면 494 만명에 달한다. 국민 전체의 건강에 영향을 줄 만큼 흔한 질환이지만 당뇨병 환자 열 명 중 네 명은 스스로 당뇨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정도로, 관리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당뇨병을 진단받는 순간이 환자에겐 삶의 위기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부정(denial)은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다. 당뇨병은 대개 서서히 진행한다. 대표적인 증상인 3다(多) 증상, 즉 다음(물을 많이 마시는 것), 다식(많이 먹는데 체중이 늘지 않는 것), 다뇨(소변 양이 많아지는 것)는 심한 당뇨병에서 나타나므로 초기 환자는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부정은 정서적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분노, 죄책감과 우울 역시 당뇨병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정서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이러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질병을 인정하는 수용(acceptance)의 단계로 나아가기 힘들다. 수용은 당뇨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질병 관리를 위한 치료와 생활 습관 변화를 실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당뇨병을 친구처럼 받아들이고 조급함 대신 멀리 보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건강하게 당뇨병을 관리하고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부정적 감정은 게으름이나 자기 관리 실패가 당뇨병의 원인이라는 편견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편견은 자신이 당뇨병 환자임을 숨기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환자가 자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꺼려한다. 하지만 당뇨병 관리를 위해선 식이 요법과 운동을 비롯해 생활 습관의 변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신이 당뇨병 환자이고 생활 습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변에 알리는 것은 성공적인 당뇨병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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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