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비건 특집]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이 있을 뿐이다 - 작가, 뮤지션 전범선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전범선은 ‘인간’이라는 특권의 시선으로는 살피지 못하는 ‘차별’을 말하고 실천하는 ‘인간동물’이다.
글ㆍ사진 문일완
20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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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전범선은 ‘인간’이라는 특권의 시선으로는 살피지 못하는 ‘차별’을 말하고 실천하는 ‘인간동물’이다. 


 

2012년 ‘동물해방운동의 바이블’이라는 『동물 해방』을 읽고 동물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했어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는데, 사상사, 철학사, 지성사 등을 공부하면서 나름의 신념 체계를 갖고 싶었어요. 영미권 대학에서 공부 중이던 터라 영미 철학에 일찍 노출된 셈인데, 영국 철학을 공부하다가 공리주의 연장선에서 피터 싱어를 알게 됐어요. 딱히 동물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닌데, 『동물 해방』을 읽고 완전히 설득당했죠. 이 책을 읽은 누구라도 반박하기 힘들 테지만요.

지난해 겨울 비거니즘 잡지 『물결』 창간호를 내고, 얼마 전 봄호를 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선언적 팸플릿 성격의 잡지를 직접 만든 이유가 있나요? 

비건은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이기 이전에 엄연한 윤리적 철학, 정치사상이에요. 최근 1, 2년 사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시장에서 비건에 대한 반응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국내 상황은 비거니즘의 불모지라고 봐야 해요. 동물해방물결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자리 잡고 있지만, 동물의 권리와 해방에 대해 진지하게 옹호하는 단체도 없었고요. 언론과 정치, 특히 상징으로서의 여의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동물권적인 언어가 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실현하려면 어떤 문화적 변화, 법의 변화가 필요할까 생각했고, 그러러면 담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밴드 ‘양반들’ 리더, 책방 풀무질 대표, 출판사 두루미 대표, 『물결』 발행인, 작가 등 지난 수년간의 커리어 횡단이 놀라워요. 그 선택들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전범선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딱히 없어요.(웃음) 단, 재미와 의미가 있는 것만 하려고 해요.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안 돼요. 추상적 가치로는 자유와 사랑과 평화가 있다면 선택하고요. 칼럼을 쓰든, 노래를 하든, 비거니즘이든 자유롭고, 사랑하고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모두 하려고 해요. 

얼마 전 펴낸 『해방촌의 채식주의자』에도 ‘꼴린 대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산다’고 적었어요. 사상이든, 철학이든 삶의 태도든 영향받은 멘토가 궁금하네요. 

딱 한 명을 꼽긴 힘든데?. 제가 영국 자유주의 철학 전통에 굉장히 경도된 것 같기는 해요. 요새는 올더스 헉슬리의 글을 다시 보는 중이에요.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라는 SF도 썼지만, 동서양의 종교를 망라해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정리한 『영원의 철학』도 썼거든요. 헉슬리라는 인물이 가진 세계관, 관용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야말로 자유주의 전통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소중한 가치이고요. 

올해 초 <한겨레>에 실린 칼럼 ‘두루미와 나’를 읽었어요. 눈에 띄는 단어가 있는데, 두루미를 ‘마리’로 세지 않고 ‘명’으로 세더군요. 

종차별적인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에요. 사전적 의미로 마리는 ‘짐승, 물고기, 벌레 따위를 세는 단위’예요. 이름 있는 동물도 많은데 사람만 ‘명’이라고 부르는 건 종차별인 거죠. 비인간동물을 각각의 개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무지막지한 폭력이 발생하는 건데, ‘이름 명’자로 그들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지하면 폭력을 휘두르기 어려울 거라고 봐요. 요즘 많이 하는 작업 중 예를 하나 들면, 물고기는 ‘물살이’라고 불러요. 동물권 입장에서 보면 ‘고기’라고 통칭하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물살이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일이니까요.  



‘살처분은 대학살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에 달린 댓글을 봤어요. 적어도 진보적인 색채의 신문을 보는 독자라면 쉽게 이해하고 합의할 내용 같은데도, 반응이 부정적이고 사나워서 놀랐어요. 

일상적인 일이에요. 욕을 안 먹으면 일을 안 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죠.(웃음) 채식 이야기는 우리가 먹는 방식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거잖아요. 듣는 입장에선 기분 나쁠 수밖에 없어요. 저 역시 『동물 해방』을 처음 읽었을 때 기분 나빴거든요. 내가 사는 방식을 범죄라고 하는 거니까. 

두루미에서 펴낸 『정면돌파』의 구매자 분포를 봤더니 압도적으로 여성 독자가 많더군요. 해석의 여지가 있는 대목일까요?  

비건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이 작용한 게 아닐까요. 남성은 유전적, 환경적 이유로 특권이 많아요. 반면 여성은 평생 차별에 노출되어 있어요. 당사자성을 가지고 차별과 폭력에 고민하게 되면 사회적 약자, 비인간동물의 문제로 고민이 연장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죠. 해외도 마찬가지인데, 이게 사실 난관 중 하나예요. 비건이 여성의 전유물은 아니잖아요. 육식주의가 남성성과 긴밀하게 얽혔을 때, 남성성에 대한 신화를 재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에요. 해외에선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고요.

‘취향이기 이전에 엄연한 정치사상’인 비거니즘이 평범한 사람들에겐 강력하고 높은 윤리적 태도와 이념적 단단함을 요구하는 것으로 느껴져요. 그런 점에서 설득이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요. 

설득은 조금 다른 차원이에요. 비거니즘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이성과 실천을 통한 불매인데, 지금의 현실에선 채식을 유도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건강을 이야기하고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연계하면 설득이 쉽죠. 립서비스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기후생태를 언급하면 정치와 언론이 더 잘 움직여요. 그런 차원을 활용해서라도 동물권에 부합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물론 본질적으로는 철학적, 정치적 언어로 견고한 동물권 중심 담론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고요.

팬데믹 이후의 상황을 동물은 어떤 목소리로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항상 동물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고 말해왔어요. 지난 50년 동안 인수공통 감염병이 창궐하는 빈도가 급속도로 늘고 있어요.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도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인간은 역사에서 어떤 교훈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거죠.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의 관계를 철저하게 재설정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끝나지 않을 거라고 봐요.




*전범선

1991년 강원도 춘천 출생.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상을 받았다. 이후 예술가 겸 사업가, 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12년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고 채식을 시작하였으며,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사찰 음식점 '소식' 대표를 맡았다. 현재 책방 ‘풀무질’ 대표, 출판사 ‘두루미’ 발행인, 비거니즘 잡지 [물결]을 펴낸다. 현재 해방촌에 산다.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전범선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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