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에 듣기 좋은 음악 특집 (1) 생상 “죽음의 무도” op.40
공포 영화만큼 효과가 좋은 으스스한 음악으로 상쾌하게 여름밤을 식혀 보는 것은 어떨까요?
글ㆍ사진 송은혜
202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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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도”, 뉘른베르크 연대기에 삽입된 판화, 미하엘 볼게무트 (1493)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나 영화를 찾아 더위를 식히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혹시, 음악으로 피서를 떠나 본 적이 있으신가요? 공포 영화만큼 효과가 좋은 으스스한 음악으로 상쾌하게 여름밤을 식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소개할 음악은 19세기 프랑스 작곡가인 까미유 생상(1835-1921)의 “죽음의 무도(1874)”입니다. 

원래, ‘죽음의 무도’는 중세 말에 유행했던 대중 예술 주제였습니다. 성직자, 왕, 농민, 거지와 같은 여러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죽음의 사자(使者), 해골이 한데 어우러져 한밤중 무도회를 여는 내용이죠.  15-16세기 무렵, 교회의 회랑이나 문, 납골당, 무덤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장식되거나 거리 예술가들이 낭송하는 시에 소재로 자주 등장하며 유럽에 널리 퍼졌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섞여 추는 삼 박자 춤곡은 위기의 시대에 만연한 불안을 상상을 통해 예술로 승화해 이겨내는 나름의 방법이었습니다. 전쟁이나 기근, 전염병으로 많은 이가 죽고, 사람들 마음에 슬픔이 새겨질 때 두려움을 마주하며 죽음을 숙고할 기회를 주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바로 ‘죽음의 무도’에 담긴 정신이었죠.

생상은 관현악곡 이전에 바리톤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 “죽음의 무도”(1872)를 먼저 작곡했습니다. 가사로는 앙리 카잘리스의 시를 택했습니다.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당스 마카브르)_앙리 카잘리스 시

지그, 지그, 자그, 죽음이 박자를 맞추어

발 뒤꿈치로 무덤을 두드리며,

밤 열 두 시, 춤곡을 연주하는

지그, 지그, 자그, 바이올린.  

불어오는 겨울 바람, 어두운 밤, 

보리수가 한숨을 내뱉을 때,

그림자를 건너 달리고 재주 넘는

염포*를 쓴 백골들  

지그, 지그, 자그, 흔들거리는

무용수의 뼈가 부딪치는 소리,

욕정에 사로잡힌 연인이 이끼 위에 앉아

지나 버린 달콤함을 맛본다.

지그, 지그, 자그, 죽음은 

날카롭게 악기를 할퀸다.

떨어진 베일 ! 나체의 무용수 !

상대 무용수는 사랑으로 그녀를 품에 안는다 

그 여인은, 후작 부인 혹은 남작 부인,

그 호색한은 가난한 목수 -

끔찍하게도! 그 천한 이가 남작이라도 되는 듯, 

자신을 주어 버리는 그녀 

지그, 지그, 지그, 사라방드* 춤이여 !

손을 맞잡은 사자(死者)의 원무여 !

지그, 지그, 자그, 춤 추는 이들에 섞여

농민을 따라 함께 뛰는 왕 

쉿 ! 갑자기 원이 흩어지고,

서로 밀치고, 도망친다. 닭이 울었다.

오 ! 가련한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밤 !

죽음과 평등, 만세 !

*염포 : 시신을 감싸 묶는 천

*사라방드 : 삼 박자 느린 춤곡


‘죽음의 무도’ 가곡 버전 : 바리톤 크리스티앙 폴, 피아노 장-프랑소와 지젤 


생상은 삼 년 뒤, 가곡을 ‘교향시’로 편곡해 1875년에 초연합니다. ‘교향시’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관현악으로 쓰는 시’가 됩니다. 프란츠 리스트가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 명칭은 여러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악’과는 달리, 한 악장만으로 음악 외적인 요소, 즉 어떤 상황이나 이야기를 악기로 묘사하는 관현악곡을 뜻합니다. 리스트의 친구였던 생상은 ‘죽음의 무도’를 교향시로 작곡했고, 이 작품은 프랑스 최초의 교향시가 됩니다. 


‘죽음의 무도’,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지휘-100 classical favorites 


(아래 해설을 읽으며 시간대에 따라 음악을 확인해 보세요)

이제, ‘죽음의 무도’라는 주제에서 어떤 부분을 관현악으로 묘사할 수 있을지 가곡의 가사를 읽으며 상상해 봅시다. 등장인물로는 죽음의 사자, 사람들, 해골들, 무용수 연인, 닭이 있군요. 하프와 호른은 밤 열두 시를 알리는 열두 번의 종소리를 내며 작품을 시작됩니다. 뒤이어 죽음의 사자를 상징하는 바이올린 독주가 등장(00’19’’-00’27’’)합니다. 날카롭게 현을 긁는 바이올린은 ‘악마의 음정’이라 불리는 증4도(음정 중에서 귀에 가장 거슬리는 불협화음정)를 더욱 강력하게 연주하기 위해 바이올린을 평소와 다른 음정으로 조율합니다. 이처럼, 현의 간격을 완전 5도가 아닌 다른 음정으로 조율하는 기법을 ‘스코르다투라’라고 합니다. 왼손으로 지판을 짚어서 증4도 음정을 만들 수도 있지만 개방현이 내는 거침없는 소리 음향은 훨씬 원색적이고 강력합니다. 생상은 작품의 도입부에서 악마를 닮은 날카로운 소리로 청중을 사로잡기 위해 특별히 ‘스코르다투라’ 기법을 사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작품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두 주제는 산 자(사람)와 죽은 자(해골)입니다. 산 자의 주제(00’40’’-00’56’’)는 부드러우면서도 비극적인 우울한 분위기입니다. 반면 죽은 자의 주제는 뼈가 부딪히듯, 빠르고 경쾌한 리듬(00’27’’-00’40’’)이 특징입니다. 특히, 실로폰은 해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독특한 음향으로 죽은 자의 주제를 연주합니다(01’44’’-01’55’’). 생상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실로폰을 관현악에 사용한 작곡가이기도 하죠. 이 두 주제는 전체 작품을 관통하며 다양한 악기와 기법을 사용해 죽음의 무도, 삼 박자 왈츠를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점차 고조되는 춤곡에 진혼 미사(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에서 불리는 그레고리안 성가, ‘진노의 날Dies Irae’ 첫 소절이 즐거운 왈츠처럼 장조로 바뀌어 삽입됩니다(02’29’’-02’55’’). 모순적이죠.  


‘진노의 날’ 그레고리안 성가, 알프레드 델러 콘소트 노래


다시 카잘리스의 시로 돌아가 봅시다. 세 번째 연 중반부터 다섯 번째 연에는 가난한 목수와 귀족 부인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습니다. 사랑 이야기가 갑자기 죽음의 무도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죽음의 무도”에서는 이 부분이 하프 반주 위로 미끄러지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 노래로 표현됩니다(02’56’’-03’30’’). 생상이 이 작품을 쓰던 당시 프랑스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1871)을 갓 끝낸 후였습니다. 수많은 희생을 불러온 전쟁이 끝나면서, 사회구조는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게 사회적 권위나 계층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죠. 현실 불가능한 가난한 목수와 귀족 부인의 사랑도 이루어질 수 있는, 왕도 농민과 함께 뛰며 춤추는 평등한 세상이 오고 있음을 예견한 작곡가와 시인은 자신의 예술로 넌지시 비밀을 전했을 겁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추는 무도회는 절정을 향해 속도를 높여가다가 아침을 알리는 닭 울음 소리(06’18’’-06’22’’)에 멈춥니다. 춤추던 해골들은 두려움에 떨며 사라지고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죽음의 사자’만이 홀로 남아 밝아 오는 아침을 외롭게 맞으며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죽음 앞에서 해골과 함께 춤을 추는 상상으로 더위를 식혀도 좋고, 음악과 시의 이면에 감춘 예술적 사회 풍자를 짚으며 여전히 불평등한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죽음의 무도”, 여름밤에 듣기 좋은 음악 특집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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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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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n

2021.07.09

트윗에서 보고 들어왔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성악과 관현악을 비교해서 들을 수 있고 중간 중간 이 부분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했는지까지 설명해주셔서 느므느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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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