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들의 왕』과 『바람을 만드는 사람』으로 탄탄한 필력과 치밀한 구성,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인정받은 마윤제 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집필한 장편소설 『8월의 태양』을 출간했다.
『8월의 태양』은 80년대 고래잡이를 업業으로 삼은 동해 항구도시 ‘강주’를 배경으로 한 청춘들의 이야기다. 방황을 이기고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성장기의 청춘과 몇 대에 걸친 비밀스런 가족사가 운명과 맞물려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마윤제 작가는 소설의 도입부터 그만의 독특한 서사로 독자들을 압도해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을 보여주고 있다.
청춘은 처음으로 낯선 세상에 홀로서야 하는 시기이기에 불안정하고 자주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마윤제 작가는 한 편의 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찬란한 청춘을 그려낸 마윤제 작가와 나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8월의 태양』은 긴 호흡의 작품인 만큼 집필할 때도 많은 정신력을 쏟으셨을 것 같아요. 덕분에 읽는 내내 작품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집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또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집필하셨는지 궁금해요.
자료조사가 힘들었습니다. 포경선 취재를 하기 위해 장생포 고래박물관을 찾아갔다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라고 밝히고 소설에 필요한 포경선의 조타실과 선실을 돌아보고 싶다고 박물관에 요청했는데 보기 좋게 거부당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그 장면을 디테일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낸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포경선 도면을 보고 유추하여 묘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책을 출간한 지금도 장생포 고래박물관의 취재 거부를 아쉽게 생각합니다.
지명(地名) 문제도 오랫동안 고심했습니다. 소설에서 중요한 제재가 되는 ‘뱃고놀이’ 축제를 열기 위해선 500명이 탄 목선 22척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넓은 내항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장생포항을 가보니 내항 자체가 없었어요.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항구와 너무나 확연하게 달랐던 거지요. 그때부터 소설 속 배경이 될 만한 항구를 찾아 동해안에서 남해까지 뒤지고 다녔어요. 그때 내 상상에 부합하는 항구를 발견했는데 통영항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영항이란 지명을 사용할 순 없었습니다. 고래잡이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결국, 오랜 생각 끝에 소설을 쓰는 작가와 읽는 독자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강주’라는 새로운 지명을 만들었습니다.
<뿔의 아이들>이라는, 소설 속의 소설도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청금색 뿔이 난 재이의 이야기가 소설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서정적으로 느껴진 것 같아요. <뿔의 아이들>은 어떻게 탄생한 이야기인지요? 또 소설 속, 청금색 뿔이 난 재이는 행복해졌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뿔의 아이들>은 작가가 꿈인 윤주의 첫 동화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 하고 싶은 일의 출발점입니다. 이 신비로운 이야기는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합니다. 소설의 화자인 동찬을 만나는 계기가 되며 윤주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뿔의 아이들>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불행한 일을 겪은 윤주가 아픔을 딛고 일어나서 수많은 작품을 쓰게 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뿔의 아이들>은 소설에서 중요한 맥거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뿔의 아이들>의 주인공인 재이는 어느 날 갑자기 정수리에 청금색 뿔이 돋아났습니다. 재이를 비롯해 머리에 뿔이 난 아이들과 동물들은 동해안의 한 해안절벽을 찾아갑니다. 느닷없이 생긴 뿔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뿔이 난 아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경찰이 아이들을 잡아서 강원도 깊은 산속에 있는 수용소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노리는 건 경찰만이 아닙니다. 마을마다 자경단이 조직되어 뿔이 난 동물은 죽이고 아이들을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머리에 뿔이 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 눈을 피해 걸어서 동해안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험난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과 동물들은 왜 자신의 머리에 뿔이 생겼는지 점차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윤주가 만든 첫 동화는 자각과 성찰을 통해 성장해가는 아이들과 동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재이가 행복해졌느냐고요? 그건 윤주의 첫 동화를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강주시의 해상 축제인 뱃고놀이 장면을 읽을 때,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 생생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뱃고놀이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위해 만든 놀이라는 것이 놀라웠는데요. 이 뱃고놀이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는지요?
전국 지자체에서 여는 축제가 연간 수백 개가 넘습니다. 그런데 그 형식을 보면 거의 비슷합니다. 가수들을 초대하여 노래를 듣는 게 전부입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데도 해상 축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 필요한 축제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래잡이를 해 온 뱃사람들 특유의 기질과 끈끈한 연대감을 보여주는 ‘뱃고놀이’는 단순한 이종교배의 축제만이 아닙니다. 소설에서 이 ‘뱃고놀이’는 굉장히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강태호가 폭력 세계를 벗어나서 사업가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고 동찬도 윤주를 범한 류재열 패거리와 싸우게 되는 공간이 됩니다. 동시에 바다 위의 목선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세상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작품에 고래가 자주 등장하지요. 거대한 벽과 같은 남자 강태호가 동찬의 꿈에서 고래를 맨손으로 죽이기도 하고, 기관장이 고래의 입으로 들어가 사라지기도 하는 등 고래의 존재가 경이롭고 환상적이었습니다. 『8월의 태양』에서 고래가 상징하는 것이 있나요?
우린 누구나 예외 없이 청춘의 시기를 경험합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아와 세계관이 이때 모두 결정됩니다. 이런 이유로 내면의 흔들림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당면한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성과의 불협화음, 친구와의 관계, 나를 둘러싸고 압박해오는 집단의 대응, 점차 멀어지는 부모와의 관계,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아무리 영어와 수학과 국어를 공부해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매일 해일처럼 밀려오는 삶의 냉혹함에 두려움을 느낄 뿐입니다. 이 극심한 혼란을 우린 청춘의 통과의례라고 합니다. 이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고래는 혼돈에 빠진 동찬의 성장통을 의미합니다. 다섯 아이가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가는 일종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 중, “어쩌면 이 무한의 가능성이야말로 청춘들의 특권이며 권리일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작가님이 가진 청춘에 대한 애틋함이 엿보였습니다. 작가님의 청춘은 어떠셨나요? 동찬과 윤주처럼 자신의 아픔을 뛰어넘고자 방황도 하셨을까요?
앞에서 말했듯 청춘의 통과의례는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혹독한 통과의례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날의 방황은 고통스럽습니다. 타자의 고통을 인식할 수 없기에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고 아픈 거지요. 사랑과 이별, 세상의 불공평, 세대 간의 갈등, 진실한 우정을 몸으로 체득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반드시 통과의례가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이 소설도 그때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혹독한 통과의례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든든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검은 개들의 왕』 『바람을 만드는 사람』 이후 세 번째 작품인데요.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또 앞으로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있는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등의 목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4년 전에 『바람을 만드는 사람』을 출간할 때 채널예스와 인터뷰했는데 그때 같은 질문을 받고 언급한 게 바로 이 소설입니다. 새로 집필하는 소설은 건축가와 큐레이터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서주’라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천착해보려고 합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꾸준하게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8월의 태양』을 읽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요즘은 활자보다 영상이 앞서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종말이 오는 순간까지 이야기의 근원인 소설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것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를 만드는 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놀랍습니다. 오래전 동굴에 살면서 밤하늘을 환하게 밝힌 달을 쳐다보며 신화와 전설을 만들던 인류는 마침내 달에 발을 디뎠고 인류가 만든 우주선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서 성간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모든 일은 상상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력의 총합이 바로 소설입니다. 소설은 단순히 스토리텔링을 즐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화자의 심리를 좇아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장할 동력을 얻기도 합니다. 또 자극을 받아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결국, 소설은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소설을 많이 읽기를 권유합니다.
*마윤제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났다. ‘Heaven, Mackenzie’라는 재즈바와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다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2012년 ‘마윤제’란 필명으로 세 소년의 모험을 그린 장편소설 『검은 개들의 왕』을 발표했다. 제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아르코 문학상을 수상했다. 뒤이어 우연히 잡지 [GIO]에서 읽은 기사에 이끌려 3년 동안의 긴 작업 끝에 남미 최남단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전설로 전해져오는 바람의 남자 웨나를 찾아가는 한 목동의 장대한 이야기를 담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을 출간했다. 이후 특별한 서재 출판사와 교보문고가 공동으로 주최한 특별 강연을 기반으로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를 펴냈다. 『8월의 태양』은 동해안의 한 항구도시에서 열리는 ‘뱃고놀이’ 축제를 배경으로 젊은 다섯 남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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