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출연한다면? 여기 허무맹랑하지만 흥미진진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책이 있다. 『역사 인터뷰, 그분이 알고 싶다』는 가상의 유튜버 ‘역사 충고(역사 충격 고백)’가 조선 시대의 인물 7명을 심층 인터뷰하는 내용을 담은 아주 특별한 청소년 역사 교양서다.
인터뷰 대상이 된 인물은 세종, 김만덕, 이순신, 정조, 김정희, 신사임당, 김금원이다. 모두 위인전 단골손님이다. 이 책에서 이들은 활자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존재로서 위대한 업적 뒤에 가려진 진짜 역사를 고백한다.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세종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적장자인 양녕대군의 일탈 행각을 아버지에게 고발했고, 신사임당은 알려진 바와 달리 현모양처가 아니었으며, 김정희는 젊었을 때 오만한 금수저 천재였다. 이처럼 이 책은 개인의 성격과 고난, 성장 배경 등 지금의 역사를 있게 한 인물의 진면모를 조명한다. 사건이 아닌 인물에 집중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역사를 기록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조선 시대의 인물들이 가상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출연한다는 책의 콘셉트가 정말 독특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떠올리셨나요?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요즘 인기 많은 유튜브 방송을 콘셉트로 잡았습니다. 진행자가 역사를 설명하면 교과 수업처럼 딱딱할 수 있어서, 역사 인물이 직접 출연하는 방식으로 정했습니다. 인물들이 자신의 삶과 고민을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고, 독자들은 인물들과 더 친숙하게 소통할 수 있을 테니까요.
특히 우리나라 역사 교육은 정치사 중심이라 사건의 맥락을 암기하다 보니 역사는 지루하다는 오해를 받는데요. 역사 인물과 직접 소통하면 그 삶을 이해하고, 당시 사회 현상도 살펴보면 역사를 더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위대함에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던 교과서 속 위인들이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공감대가 생기면서 용기도 생기죠.
본업이 소설가인데 역사책을 쓰셨어요. 소설가에게 역사는 어떤 존재일지, 그리고 어떻게 역사책을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이 책을 쓰면서 역사, 정치, 심리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다시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소설보다 역사책을 더 많이 읽습니다. 시간을 내서 신문도 꼼꼼하게 읽으려고 노력하고요. 문학 특강을 할 때도 문학보다 역사, 사회 이야기를 더 많이 합니다. 사회의 흐름을 잘 알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고, 역사를 알아야 지금 우리 사회를 잘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많겠지만요). 더하여 역사 인물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을 발견합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처음 읽었을 때, 우리나라 위인 묘사 방식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습니다. 신선한 충격!
역사 인물들의 진짜 고민과 아픔을 살펴보면 인간의 내면을 조금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끝없는 이야기, 캐릭터 창고입니다. 그렇기에 나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역사 인물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시대 중에서도 조선 시대의 인물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뽑은 이유가 있을까요?
조선 시대 자료가 가장 많이 남아 있어서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좋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의 의식 구조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조선 사회를 살펴봐야 했습니다. 제사와 장례 문화, 그 이면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조선 시대 과거제는 오늘날 명문대를 지망, 공무원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남아선호사상도 심했죠. 개인보다 집안의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기던 사회가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서도 조선 후기는 근대화로 진입하는 길목이라 더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폐쇄적인 신분제 사회가 조금씩 흔들리면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은 김만덕, 김금원 등 새로운 인물이 출연하는 역동적인 흐름을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서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혹은 닮고 싶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거상 김만덕, 문인 김금원 선생입니다. 조선 후기, 양반 남성 중심의 단단한 사회적 벽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연 선구자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 더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요즘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탓에 어린 나이에 좌절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의 삶이 청소년과 청년층에게 전하는 의미는 강력하리라 생각합니다.
김금원 선생은 남자도 선뜻 자신이 사는 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그 시절, 열네 살에 남장을 하고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고 정말 충격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청소년일 때 김금원의 이야기를 만났다면 제 삶은 지금과 달라졌을까요?
또한 김금원 선생의 삶을 보면서 청소년기 독서의 중요성, 여행의 의미, 글쓰기의 힘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때 김금원 선생보다 더 어린 나이에 금강산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기록이 없으니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글을 써야 하는 까닭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모두 김금원 선생이 전하는 가르침입니다.
조선 시대 인물 중에서 더 주목하고 싶은 사람은 없나요?
신분제의 한계 때문에 능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스러져간 이들에게 마음이 끌려요. 그중 양반 중심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그림자 같았던 서얼들을 조명하고 싶습니다. 조선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얼들의 상상력을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였다면 조선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합니다. 또 무당, 기생, 백정, 재인 등 가장 천시받았던 천민의 삶도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보다는 변두리로 밀려난 소외된 이들을 더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게 소설의 역할이기도 하겠죠. 주류, 지배층과 달리 약자들은 그 사회의 민낯, ‘쌩얼’을 보여줍니다. 그 ‘찐’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시대, 그 사회와 냉정하게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조선 시대 말고 다른 시대의 인물들을 인터뷰한다면 어느 시대를 고르고 싶으신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제 강점기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삶이 어땠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사람들, 널리 알려지지 못한 분들을 더 찾고 싶습니다.
책에서 역사 인물들이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는데요. 그중 작가님께서 가장 강조해서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요?
지금 우리 사회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10년 뒤에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조언이요. 많은 청소년이 수능, 대학 입시만을 바라보며 사는데요. 그 이후 서른, 마흔 살의 삶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넓고 깊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여유가 생기겠죠?
사회가 정한 길을 따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 길을 빨리 가려고 애쓰다 보니 전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는 우울한 사회가 되어버렸어요. 사회가 청소년들의 마음은 조급하게, 시선은 좁게 만들고 있어요.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발걸음에 맞게 나아가길 바랍니다.
*문부일 1983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대산창작기금,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다.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이후 가끔 소설도 쓰며, 더 잘 쓰려고 고민하고 있다. 청소년문학 『찢어, Jean』, 『우리는 고시촌에 산다』, 『불량과 모범 사이』, 『알바 염탐러』, 『welcome, 나의 불량파출소』, 『굿바이 내비』, 『안녕콜』, 『턴(turn)』, 동화 『사투리 회화의 달인』을 출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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