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역사라는 거대한 이야기 창고로 끌어들이는 인물들이 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 같은 이들이다. 국내 인물로는 장희빈, 사도세자, 소현세자를 들 수 있겠다.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소재가 되는 이들의 공통점은 ‘변신’이다. 이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커다란 변화를 맞았고, 그 변화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고귀했던 신분에서 죄인 혹은 천민으로 추락하는 운명을 맞았던 이들은 역사에 뚜렷한 족적과 영원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를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통해 죽은 자들과 교감하고, 사고의 시공간을 넓히며, 축적된 지혜의 보고를 받아 안는다.
내게 역사라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우주로 들어가도록 관문 역할을 해준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이 인물과 처음 마주친 것은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읽어도 되는’ 책의 종류가 갑자기 확 늘어났던 시기, 홍수처럼 읽을 거리들이 밀려들었고, 나는 그 중 ‘파름문고’라는 시리즈에 빠져들었다.
그 시리즈에는 그 전에 접했던 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온갖 러브 스토리들이 다 들어 있었다. 그 덕에 나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어렴풋이 알지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던, 그렇기에 너무나 궁금했던 ‘성’의 세계를 구석구석 탐험할 수 있었다. 그 시리즈는 낭만적이고 은근한 방식으로 연애사를 풀어가서, 노골적인 묘사가 나오는 ‘하이틴 로맨스’를 읽을 때처럼 죄책감을 품을 필요 없이 마음 편히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80권이 넘어가던 그 시리즈물 중 세 권을 차지하는 장편소설 『베르사유의 장미』의 등장 인물이었다.
그 소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을 때 마음에 일어났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밤이었고, 부모님 몰래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덮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인류사의 어마어마한 사건과의 첫 조우였다. 그 전에도 교과서에서 배웠을 테지만, 내 뇌리에 프랑스 혁명이 의미를 갖고 특정한 색깔이 되어 새겨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파름 문고> 시리즈가 다 그랬듯 『베르사유의 장미』도 역사적 사건을 심도 있게 기술하기보다는 남녀의 연애사에 중점을 두고 비약적이고 극단적으로 스토리를 이어갔다. 고전이나 따분한 교과서들에 신물이 나 있던 십대 소녀에게, ‘성’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중요한 분야에서 (어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차단되어 있던 사춘기 소녀에게, 그 책은 불꽃과 같았다. 채워지지 않은 호기심으로 이미 벌겋게 되어 있던 눈은 적당히 수위를 낮춘 성적 묘사가 빈번히 출현하는 그 책과 맞닿아 가열차게 불타올랐고, 나는 그날 밤을 새고 세 권을 전부 읽어치웠다. 부모님 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불벼락을 내릴 거란 염려까지 곁들여져, 프랑스 혁명이라는 제단에 바쳐진 왕비 이야기는 엄청난 극성을 가지고 십대 소녀의 영혼을 저격해 들어왔다. 그 후로도 교과서를 통해, 이런저런 역사 참고서를 통해, 혹은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 편』 같은 학습만화를 통해, 이 가엾은 왕비를 자주 마주쳤고, 그 때마다 내 영혼은 관심과 흥미로 들썩거렸다.
20대에 접어들어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손에 들었을 때, 그동안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인물을 단편적이거나 흥미 위주로 그려진 저작들을 통해서만 접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까지 내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예쁘고 사치스러웠던, 정략 결혼으로 만난 남편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외국의 귀족남성과 비밀리에 사랑에 빠졌던, 그러다가 ‘운 나쁘게’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져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비운의 여성이었다. 츠바이크의 저작과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혁명과 마리 앙트와네트를 하나의 커다란 그림에 놓고 인과 관계를 짚어가며 읽어낼 수 있었다. 츠바이크는 ‘선량하지만 깊게 사고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왕비’ 자리에 앉았을 때, 특히나 새로운 시대가 밀려오는 역동적인 시기에 비중이 큰 자리에 앉았을 때 일어나는 비극을 내재적인 관점에서 생생하게 그려낸다.
츠바이크가 보기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은 그녀가 너무나 ‘평범한’ 인물이고,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 이상을 원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천성적으로 경쾌하고, 따뜻하고, 솔직했던 그녀는 열다섯 살의 나이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 낯선 나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성실하지만 소심하고 무뚝뚝한 왕위 계승자 루이 16세를 남편으로 맞게 된다.
생명력 넘치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달리 루이 16세는 웬만한 일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무신경하고 둔감한 인물이었다. 츠바이크는 루이 16세의 그런 성격이 성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한다. 처음부터 국가 간 정략에 의해 결혼했기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위 계승자를 낳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고, 부부 간의 내밀한 관계에 대한 소식은 전유럽의 화젯거리로 떠오른다.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힌 궁정 내 왕족들과 경쟁국들의 지배층에게, 루이 16세가 성적인 문제로 후손을 남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다양한 야심과 음모를 유발한다. 그렇게 남편과 자신의 성생활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상황 속에서, 열다섯의 소녀는 꾸준히 성장해 성숙한 여인이 된다.
지금 시대에 비추어보면 아이돌을 좋아하거나 현실에서 남자친구를 만들어 설렘을 맛보았을 나이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일국의 왕세자비가 되어, 조금도 설렘을 느낄 수 없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나 그 노력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그 와중에 차츰 성인으로서의 자신을 감각하게 된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기적적으로’ 정상적인 부부 생활에 접어든 것은 결혼한 지 7년이 지났을 때였는데, 츠바이크는 그 7년이라는 ‘괴기스럽고 절망적인’ 기간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채울 수 없었기에, 아는 이 한 명 없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앙투아네트는 도박, 보석, 가장무도회, 호화 파티 등 이후 ‘왕비의 악덕’이라 불리게 되는 경박한 취미들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트리아농 궁으로 상징되는 왕비의 사치스럽고 소수만을 측근으로 인정하는 배타적인 생활은 1785년, 향후 루이 17세로 불리게 되는 둘째 왕자를 낳을 무렵부터 빠르게 내리막길을 탄다. 연달아 아이들을 낳고 엄마가 된 앙투아네트의 내면에 변화가 일었던 것이다. 엄마가 되면서 내면의 허함이 채워지기도 했지만, 그즈음 있었던 ‘목걸이 사건’으로 그녀는 자신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비로소 체감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프랑스 혁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무력의 발발은 4년 뒤로 바짝 다가와 있었고, 궁핍한 생활 가운데 계몽 사상의 영향을 받은 대중은 이전까지 당연시 해왔던 왕권신수설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상징적인 희생양이 필요한 변화의 시기에, 앙투아네트는 희생양이 될 만한 조건을 속속들이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 발발 이후 앙투아네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왕관과 아이들과 제 목숨을 지켜내야 하는 때가 되어서야, 제 내면에서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지성과 행동력을 끌어낸다. 불행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 명의 인간으로 성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내면의 성숙과 역사의 흐름이 꼭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어서, 혁명은 급격하게 성숙해지기 시작한 이 여인을 가차 없이 난도질한다. 무서운 속도로 혁명의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한때 철없고 경박했던 여인은 끝없이 강인하고 현명해지며, 츠바이크는 이 강렬한 두 힘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파동을 유려하고 리듬감 있는 필치로 탁월하게 그려낸다.
살아오는 동안 프랑스 혁명과 관련한 신서를 접한 뒤엔 습관처럼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는데, 그때마다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처음엔 연애 소설로 읽혔다가, 다음번엔 혁명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는 책으로 읽혔고, 그 다음번엔 개인의 특별한 성격이 빚어내는 비극이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운명론으로 읽혔다. 이번 독서에서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단일한 문제가 또렷하게 의식에 잡혀왔는데, 그것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인간의 성별이었다. 한 사람을 태어날 때부터 사용했던 언어와 가깝게 지냈던 가족들에게서 완전히 도려내어 이국의 낯선 가족에게 붙여넣은 뒤 그 사람이 그쪽 가족에서 정해진 역할을 말끔하게 해내리라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폭력인가.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방종한 습성은 상당부분 그런 억압적인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제2의 조국인 프랑스에서 사사건건 악덕의 배후로 지목되고 ‘오스트리아 암캐’라고 배척당했던 앙투아네트는 정점에 이른 혁명이 마침내 루이 16세를 참수하고 그녀를 탕플에 유폐시켰을 때, 오스트리아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러니까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비극의 출발점은 여성을 가축이나 물건처럼 타국으로 ‘보내고’, ‘넘겨받았던’ 관습의 야만성이었던 것이다. 씁쓸한 것은 이 관습이 크게 바뀌지 않고 지구상 곳곳에서 그 뼈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도 해방 후 오랜 기간 호주제를 유지하며 여성을 여자 쪽 집에서 남자 쪽 집으로 시집 ‘보낸다’, 결혼한 뒤부터는 ‘시집의 사람이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호주제가 폐지된 지금도 여전히 그 개념이 강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여성이 ‘주고 받는’ 대상이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이기도 했던 츠바이크는 메리 스튜어트, 프로이트, 니체 등 역사적 인물들의 전기 작가로 유명하다.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 본인이 쓴 것처럼 그려내기에 그가 쓰는 평전들은 ‘전기소설’이라 불릴 정도로 문학적 특성이 강하다. 최상급 표현과 현란한 비유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시종일관 감성적인 톤을 유지하기에, 건조한 문체를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그의 작품들이 다소 ‘호들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독자에게도,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가독성이 높은 그의 책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는 알렉시 드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 귀스타브 르 봉의 『프랑스 혁명과 혁명의 심리학』,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같은 깊이 있는 사회학서들로 연결되는 잘 닦인 통로로 기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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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소설가)
장편 소설『잠실동 사람들』등과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