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키비움J 핑크』의 반응이 뜨겁다. 『라키비움J 핑크』는 그림책 작가 인터뷰에서부터 신간 소개까지 그림책의 세계를 깊고, 넓게, 다양한 시선으로 살펴보는 그림책 전문 매거진이다. 문화, 예술, 역사를 경쾌하게 가로질러가며, 그림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림책의 독자는 어린이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어른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라키비움J 핑크』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좀더 깊은 세상을 탐험하고픈 부모를 위한 책이자, ‘나를 위한 그림책’을 찾는 어른을 위한 책이다. 왜 그림책일까. 지금 이 시대에 그림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키비움J 핑크』의 발행인 전은주 제이포럼 대표로부터 화제의 책 『라키비움J 핑크』에 대해 들어보았다.
『라키비움J 핑크』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분들도 많고,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그림책 매거진 『라키비움J』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라키비움’의 뜻은 도서관 라이브러리(labrary) 기록관 아카이브(Archive) 박물관 뮤지움(Museum)의 합성어입니다. 그런데 라비키움인지, 라키비움인지, 라퀴비움인지 확인하시면 다음번에 꼭 틀린다는 징크스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J는 저널(Journal)이기도 하고 여행(Journey), 폴짝 뛰어오르는 것(Jump), 기쁨이 넘치는 것(Joyful)이기도 해요. 좋아하는 단어 다 J더라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질투 (Jealousy)도 넣고 싶어요. 건강한 질투는 순간적인 감탄보다 더 그 대상과 나를 동시에 사랑하는 방법 같아요. 그리고 첫 번째보다 더 설레는 ‘제2’라는 뜻도 있습니다.
『라키비움J』의 성격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독자들이 모여 만드는 그림책 매거진입니다. 그림책을 보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실험하고 나누고 즐기는 모습을 기록한 잡지예요. 그림책으로 이렇게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가는구나, 그림책이 이토록 깊게 인간을 들여다보는 렌즈가 될 수 있구나, 또 이렇게 다양한 그림책이 있구나, 하고 놀라실 거예요.
그런데 그림책 잡지인데 이른바 ‘교육기사’가 별로 없어서 좋다는 독자후기가 있었어요. 사실은 모든 기사가 교육기사랍니다. 양육자, 교육자가 『라키비움J』를 읽으면서 생기는 그림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흘러가거든요. 『라키비움J』를 보면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 리스트가 얼마나 빵빵해지는데요. 저희 잡지에 싣는 그림책을 고르는 1원칙은 ‘아이들이 봐서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놓고 교육기사’도 많이 실을 생각이예요.)
그림책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잡지까지 만들게 됐는지,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라키비움J』 매거진의 발행인이자 필진으로서, 어떤 계기로 그림책의 매력에 빠지게 됐는지, 어떤 그림책을 좋은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얘기해주세요.
많은 분들처럼 저도 처음엔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하는 ‘숙제’로 그림책을 만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몇 장 되지도 않고 맨날 동물들이 말하고 그러는 아이들 책이 제 마음에 훅 치고 들어오더라구요. “너, 잘 살고 있니?”, “너 마음 괜찮아?” 하고 막 물어요. 다정하게 위로해주는가 하면 스님의 죽비처럼 정신이 번쩍 나게 나를 내려치기도 했어요.
좋은 그림책은 독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아요. 답을 주지는 않는데, 힌트를 준달까, 답을 찾으러 갈 힘을 준달까…. 짧아서 몇 분 만에 후루룩 읽었는데 다음에 다시 읽을 때까지 계속 마음속으로 그 책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해요. 오죽하면 제가 “와. 예수님이 맨날 비유로 설교를 하는 이유를 알겠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쉬운 이야기인데 해석은 끝없이 깊게 할 수 있는 것. 그림책이 딱 그렇거든요.
똑같은 책이 사람마다 다르게 읽힌다는 것도 큰 매력 같아요. 요즘 성인 그림책이라는 말도 하지만 사실 어른 책 아이 책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아이와 어른의 재미 포인트가 다르고, 같은 어른이라도 사람마다 찡한 부분이 달라요. 같은 사람이 읽어도 내 마음, 내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읽히는걸요. 전 나이가 들수록 그림책이 좋아요. 일단 글자가 큼직큼직해서 노안이 온 중년 독자에게 딱 좋습니다. (웃음) 제 생각에 그림책은 점점 더 보편적인 예술 장르가 될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에게 딱 맞거든요. 아름답고 짧고 내 맘대로이고, 내 스타일의 작가가 꼭 있고요. 덕질하기 너무 좋아요.
『라키비움J』는 1호부터 4호까지는 오픈마켓에서, 5호부터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1호부터 4호까지(레드, 옐로, 민트, 보라), 매호 완판 기록을 세웠고요. 이렇게 방향을 바꾸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처음 매거진을 만들 때, ‘깃발’이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했어요. 패키지 해외여행에서 가이드가 들고 있는 노랑 깃발 같은 책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낯선 곳에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걸 찾아 헤매다가도 문득 “여기가 어디지?” 싶을 때 고개를 돌리면 저기 딱 내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노랑 깃발이 보이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어요?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멀리서 봐도 내 친구가 저기 있구나, 알아볼 수 있게 깃발을 들고 싶었죠. “여기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더 행복해지고 싶고,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오~ 모여서 같이 놀아요오~~.” 그런데 당시 대다수 친구들이 제가 생각하는 다정한 깃발 말고 혁명군이 들 것 같은, 비장미 철철 넘치는 깃발이 생각난다고 해서 접었어요.
대신 네이버 카페 이름을 ‘제이그림책포럼’이라고 지었어요. 포럼!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쭉 둘러앉아 있잖아요. 독자도 아이와 어른 둘이고, 작가도 글작가 그림작가 따로 있고…. 유난히 관계자가 많은 그림책계이니까 ‘포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제이그림책포럼’에서 만 명이 와글와글 복닥복닥 잘 놀고 있어요. 그런데 이젠 제이포럼 카페 분들이나 기자들 인스타그램에서 알음알음 아는 분들은 물론, SNS를 하지 않는 분들에게도 ‘그림책 잡지’가 있다고 알리고 싶어졌어요. 많은 독자들이 오시는 인터넷 서점에 깃발을 딱 들고 있으면, 누구라도 저희를 발견해주실 거라고 믿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그림책 얘기를 하고 싶으셨나 봐요. 판매 시작하고 며칠 안 돼 중쇄를 했는데, 2쇄가 출판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3쇄를 발주해야했거든요. 지금까지는 1쇄가 다 팔리면 그냥 매진으로 처리했어요. 어떤 사람은 우리 잡지의 매력은 ‘한정본’, ‘희귀템’이라고 했는데, 실상은 더 책을 만들어서 팔 여력이 없었어요. 온라인 서점에 오면서 중쇄를 하기로 한 게 나름대로 저희로는 큰 결단입니다. 우리가 짐작한 독자 규모에 맞춰서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분들께 용기 있게 날아가겠다고, 찾아 나서겠다고 결심한 거죠. 어디에 우리의 새로운 친구들이 있을지 막막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중쇄를 하면서 그림책의 확장 가능성과 독자들이 평생 그림책을 읽는 지속 가능성 모두 확인받은 기분이에요.
지금은 그림책을 한 번도 내 책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분들이 아무리 표지를 봐도 이게 뭐 하는 책인지 모르겠는 『라키비움J』를 보고 호기심으로 한 번 열어보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딱 표지만 열어봐, 확 낚아챌 테야! 이런 각오죠 네.
『라키비움J』를 보면, 한 권의 그림책을 100가지 눈으로 들여다본다는 콘셉트의 ‘아르고스’ 특집이 눈에 띕니다. 이번 『라키비움J 핑크』에서는 아네테 멜레세의 『키오스크』를 다뤘고요. 아르고스 도서를 선정할 때 기준도 까다롭고 무척 공을 들일 것 같은데요,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책을 뽑게 되었는지, 이 책의 어떤 점이 편집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등이 궁금합니다.
아르고스는 눈이 100개인 그리스 신화의 괴물 이름이에요. 눈이 100개나 되니까 한꺼번에 잠드는 법이 없죠. 이쪽저쪽 여러 방향을 바라볼 수도 있고요. 한 권의 그림책을 아르고스처럼 여러 방향 시선으로 들여다보자, 하는 코너예요. 제일 분량이 많은 대표 코너인 만큼 아르고스 책을 정하면 기획회의 반은 한 셈이에요. 기자들이 각자 자기 추천책을 갖고 옵니다.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다른 필진들을 설득하죠. 어마어마하게 서로 까고 깝니다. 주로 “그 책으로 이런 얘기까지 가능해?” 다양하게 가지 뻗기를 할 수 있는 책이 인기입니다.
그런데 이번 『키오스크』는 추천자가 읽어주자마자 모두 찬성했어요. 올가는 잡지며 과자, 복권 같은 걸 파는 키오스크에서 사는데요, 키오스크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벗어나고 싶지 않기도 해요. 좁고 답답하지만 아늑하거든요. 안전하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올가는 여차저차 강물에 떨어집니다. 그 순간 올가가 깨닫는 거예요. 키오스크를 구태여 벗어나지 않아도, 나는 자유로울 수 있구나. 내 인생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는 몰라도 그 사건에 대한 태도는 내가 정할 수 있구나. 기자들 모두 감정이입이 확 된 거에요. 전원 만장일치 아르고스 찬성! 그간 아르고스 책들에 비해서 가지치기가 끝없이 되는 책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죠. 우리 모두 한 가지에 꽂혔으니까요. 성장하기 위해서 새로 태어날 필요 없구나. 그냥 한 발짝만 움직이면 되는구나. 현실과 꿈, 둘 다 버릴 수 없는 분이라면 아마 다 『키오스크』를 좋아하실 거예요.
매번 매거진을 만들 때마다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잔뜩 쏟아졌을 것 같습니다. 이번 『라키비움J 핑크』를 만들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림책을 더 재미있게 보는 비결 하나! ‘헌사’를 본다! 작가들이 쓴 헌사에는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라키비움J 민트』에서는 ‘헌사열전’ 특집 기사를 쓸 정도였어요. 『키오스크』를 쓴 아네테 멜레세 작가와 인터뷰를 할 때도 으레 헌사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아네테 작가님이 그림책을 낼 때는 딸을 낳기 전이라 딸에게 헌사를 못 써서 아쉽다는 거예요. 그때 한국판은 인쇄되기 전이었거든요. 미래아이 출판사 대표님(제이그림책포럼 회원이세요)에게 부랴부랴 한국판에 특별 헌사를 넣을 수 있냐고 물었죠. 이게 쉬운 일 같지만, 번역하면서 어떤 것도 임의로 변형을 시키면 안 되기 때문에 저작권 에이전시와 모든 것을 논의 해야 합니다. 의견이 오고가는 게 몇 주일씩 걸리더라구요. 결국 한국판에는 딸 스텔라에게 사랑을 전하는 헌사가 들어가는 데 성공했어요! 라트비아의 아네테 멜레세 작가는 인스타에서 #라키비움J핑크 해시태그를 팔로우하면서 ‘좋아요’ 하트도 열심히 누른답니다. 우리끼리 통하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매번 작가님들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생깁니다.
『라키비움J 민트』를 만들 때인데요. 코로나 때문에 다들 재택근무를 시작하던 때라 에이전시 통해서 출판사에서 자료를 받는 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제시카 러브 작가가 직접 그림을 보내줬어요. 행여나 출판사와 저작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독자들은 알아채지 못할 만큼 미묘하게 다른 B컷으로요! 『라키비움J 민트』를 갖고 계신 분들은 『인어를 믿나요』 기사 중에 그림책과 다른 그림이 있답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어떤 분들과 함께 『라키비움J』를 만들고 있는지 더 궁금해졌습니다. 함께하시는 분들 이야기, 좀 더 들려주세요.
이번 핑크를 만드는 동안 기자들이 한데 모여 회의를 한 횟수는 몇 번일까요? 제로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못 만났어요. 화상회의만 했죠. 대신 카톡 단톡방은 매일 불이 납니다. 잠깐 한눈팔면 빨간 숫자가 떠요. 300. 400. 하하하. 거의 생활공동체예요. 그런데요,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아마 자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저희는 상근자가 한 명도 없는 잡지잖아요. 각자 자기 터전을 지키면서 기사를 쓰니까, 한밤중에 사부작사부작 회의하고 새벽까지 글을 씁니다. 그림책에 대한 진심 하나는 진짜인 사람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라키비움J』의 행보가 무척 기대됩니다. 『라키비움J』 매거진뿐 아니라 전방위적 그림책 전도사로서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으실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을 계획하고 있으신지 등을 듣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그림책 판’을 더 커지는데 『라키비움J』가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라키비움J』가 그림책 월드로 들어오는 입장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그림책을 보는 사회! 생각만 해도 설렙니다.
그리고 이왕 『라키비움J』 덕분에 출판사까지 만들었으니, 다른 출판사에서 만들어주지 않던 그림책 관련 책들도 만들려구요. “이런 책 내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을 몇 출판사에 했는데 “덕후들은 좋아하겠지만….”이라는 대답을 들은 주제가 몇 개 있거든요. 그림책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는 달달한 사랑고백에서 한 발자국 더 들어가서, 그림책이 품고 있는 다양한 키워드로 만든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려울 것 같다고요? 노노. (웃음) 저희는 재미없으면 안 해요.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전은주 늘 가장 힘든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디딤돌이 되곤 했다. 둘째 아이 때문에 14년 방송작가 생활을 접었더니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자라는 육아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었고, 쓰는 책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이 덕분에 알게 된 그림책의 세계에서 나의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 오지라퍼 그림책 덕후가 된 지 어언 20년! 네이버 그림책 카페 [제이그림책포럼] 운영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기반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를 만들고 있다. 육아잡지에 그림책 칼럼을 연재하며, 전국에서 그림책 강연을 하고 있다. 인생에 대한 다정하고 강력한 질문을 품고 있는 그림책의 감동과 기쁨을 좀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꿈꾼다. 더불어 우리 모두 ‘환장할 순간들’을 ‘환상의 추억’으로 바꿀 수 있기를! 지은 책으로 『초간단 생활놀이』,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웰컴 투 그림책 육아』, 『영어 그림책의 기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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