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지가 사랑에 빠진 그림책] 걱정이랑 불안이랑 뒹굴뒹굴 같이 살자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 정말 재미있는, 영화로 드라마로도 제작될 법한, 넷플릭스에서도 왓챠에서도 탐을 내는, 이 사람 천재 아니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그런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글ㆍ사진 수신지(만화가)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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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조미자 

‘벌써 일 년의 절반이 지났네’라고 생각한 것도 두 달 전 일이 되었다. 글을 쓰는 오늘은 입추다. 벌써 창문 밖 온도가 달라졌다. 시간을 24절기나 달, 년 단위로 세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맞이하는 입추 소식은 영 반갑지 않다. 작년 말까지 연재와 출판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 터라 올해는 조금 쉬엄쉬엄 가자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가을이 오도록 새 연재를 시작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몸과 아이디어를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풋 없이 아웃풋만 만드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미뤄뒀던 영화도 드라마도 책도 많이 보며 충전하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웹툰에 빠져 몇 시간을 훌쩍 보내기도 했고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하루를 다 쓰기도 했다. 세상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탐닉하다 보니 나도 끝내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아올랐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 정말 재미있는, 영화로 드라마로도 제작될 법한, 넷플릭스에서도 왓챠에서도 탐을 내는, 이 사람 천재 아니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그런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작법서를 주문했다. 작법서의 고전이라는 익숙한 제목의 책부터 잘 팔리는 웹소설 쓰는 법까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 여러 권의 작법서를 열심히 뒤적이다 보니 막연한 공포심이 생겼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등장 인물의 성격을 꿰뚫고 있어야 하고, 자료조사를 위해서는 시골의 어느 후미진 마을도 찾아가야 하고, 무엇보다 매일매일 써야 하고.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나는 그런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지? 이러다 영영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건 아닐까?

막연한 불안감을 달래려 그림책 서가를 찾았다. 막막하고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당장 해결하기도 애매한 고민이 생길 때 그림책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고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누구의 추천도 유명한 작가를 알 필요도 없다. 서점이나 도서관의 그림책 서가에 가서 내 고민이 담긴 제목의 그림책을 찾으면 된다. 고민의 키워드를 읊으며 빽빽하게 꽂힌 책등을 빠르게 훑어본다. 

지금 내 고민이 뭐지? 걱정... 불안... 조급함... 어디 보자...... 빙고!  

발견했다. 



제목은 『걱정 상자』, 지은이는 조미자. 책을 꺼내 후루룩 넘겨보는데 “그래, 이 책이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바로 구매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과 작법서를 잠시 치우고 『걱정 상자』 를 꺼냈다.

『걱정 상자』는 걱정이 많은 도마뱀 주주와 그런 주주를 돕고 싶은 호랑이 호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주주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호가 아이디어를 냈다. 주주의 걱정을 상자에 담은 후에 하나씩 처리해 버리자는 것이다. 모든 걱정을 꺼내 담아 보니 걱정을 담은 상자가 산 만큼 쌓였다. 둘은 상자를 새총으로 날려 버리기도 하고 알록달록 예쁘게 꾸미기도 했다. 작은 바람에 어이없이 날아가 버린 상자도 있고 마술을 부려도 사라지지 않는 상자도 있다. 『걱정 상자』는 이렇게 두 친구가 걱정을 다른 모습으로 혹은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이야기이다.

머릿속으로 주주와 호를 따라 해 보기로 한다. 우체국 택배 1번 상자 크기의 작은 상자가 있다. 상자를 열고 걱정을 담는다. 다행히 모든 걱정이 담긴다. 아직 그리 크지 않은가 보다. 상자를 덮는다. 그리고  바람 부는 들판으로 가지고 나간다. 새총으로 날려볼까?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볼까? 운이 좋으면 작은 바람에 날라 갈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주주와 호가 마지막에 한 것처럼 그렇게 해볼까? (이건 책으로 확인해보세요.) 걱정을 멀리 보내지 못해도 괜찮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 있어도 괜찮다. 걱정은 작은 상자에 담겨있고 스스로 상자를 열지는 못할 것이다. 이 생각을 반복하다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걱정 상자』가 너무 좋고 유용해서 조미자 작가의 다른 그림책 『불안』도 구매했다. 『불안』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 행복, 기쁨... 과 함께, 불안도 내 안의 감정. 벌써 느낌이 온다. 이 책도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내 안의 불안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부터 조미자 작가는 나의 카운셀러, 나의 오은영 박사님이다.


걱정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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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만화가)

서양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많다. 만화책 <3그램>, <며느라기> 등을 펴냈으며, 여러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