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운은 말수가 적고, 단정하고, 단호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능청스럽게 팬들의 장난에 응수할 줄도 알고, 자기의 노래를 만들어서 내놓을 줄도 안다. 이 정도로 정세운이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려고 들면 조금 어렵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 극한의 압박이 느껴지는 상황에 놓인 그는 다른 어떤 연습생들보다 의연했고,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기분에 관해 얘기할 때도 그다지 망설임 없이 툭툭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12위로 워너원의 멤버가 되지 못했던 그에게 “되지 못했던”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무안할 정도로, 연습생들과 서로 껴안으며 축하하고, 반대로 안타까워하는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차분하게 다음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쉬운 것보다는 이게 내 자리라면 그대로 두 발을 딛고 서 있겠다는 듯이. 이 특유의 분위기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를 보며 승부욕이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 놓여도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보이는 대신에 그저 농담 몇 마디를 툭툭 던져가며 상황을 관조하는 듯하다 종종 승기를 잡는다. 이기고 싶을 때 지더라도 크게 아쉬워하는 순간은 잠깐이다. 그의 감정 변화를 눈에 띄게 감지할 수 있는 콘텐츠는 영 이상하게 흘러가는 연애의 순간을 고발하는 사연을 듣고 “당장 헤어져야 되는 것 아니냐”고 흥분하며 얼굴을 붉히던 ‘고막메이트’ 정도가 전부다. 요리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먹여주는 ‘정세운의 요리해서 먹힐까’라는 소속사 자체 콘텐츠에서도 그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차분하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기뻐하지만, 소리 내서 크게 웃는 순간보다 웃는 듯 아닌 듯 미묘한 표정으로 다른 반찬을 밀어주며 “보는 사람이 기분 좋게 먹을 줄 아는구만”이라고 뿌듯해하고 있을 뿐이다.
정세운의 음악이, 그의 앨범이 갖는 특별한 분위기는 여기서 나온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 자연스레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꾸준히 가사로 담으면서 완성되어가는 그의 20대는 소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또래의 이야기다. 동시에 맑은 날과 흐린 날,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의 모습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앨범의 스토리를 이어갈 줄 아는 그의 목소리는 화려한 소리들로 가득한 K팝 신의 온도를 낮추며 또 다른 음악의 가치를 얘기하고 있기에 한번 더 주목하게 된다. 흐트러짐 없이 늘 단정하게 완성된 그의 앨범들은 대단히 눈에 띄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도 않아서, 그냥 정세운이라는 청년이 가진 분위기를 고스란히 내비치기만 한다.
더 강한 소리를 내라고, 더 트렌디해지라고, 더 직설적이어지라고. 그러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정말로 지금의 K팝 신에서 원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범을 여러 장 내고, 쇼케이스를 하고, 팬미팅을 열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도 늘 신기하리만치 비슷한 에너지의 파동 안에서 움직이는 이 음악가는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예쁜 오르골의 소리처럼 늘 같은 안정감을 주기에 소중하다. 그가 어떠한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선언하더라도, 이미 단단한 중심이 있어서 자신의 핵심적인 매력 포인트를 억지로 도려내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조금 뻔뻔스러운 얼굴로 아이돌 그룹의 춤을 어설프게 따라 추지만, 그 뻔뻔스러움 안에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하고 싶다는 단호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왜 뜬금없이 저런 춤을 추고 있지?’, ‘왜 뜬금없이 요리를 하고 있지?’ 같은 물음표를 띄웠다가도 결코 단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 때문에 엉뚱한 부분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모두가 정세운이란 사람의 정체에 더 가까워진다. 저렇게 평온한 얼굴을 하고 선배 아이돌 그룹의, 혹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온 춤을 추고 있다고?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뜬금없이 마주한 정세운에게서 웬 엉뚱한 소년을 만나는 일은 상당히 즐거운 경험임에 분명하다.
얼마 전에 딘딘이 내놓은 신곡 ‘너에게’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정세운은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에서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른다. 여전히 과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림처럼 예쁘게 펼쳐진 하늘 아래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듣던 그는 딘딘에게서 파트를 넘겨받고 그제서야 말을 한다. 기타를 치는 손의 움직임과 비트에 맞춰서 몸을 가볍게 흔들고, 오버스러운 액션 하나 없이.
그날처럼 영원할 줄만 알았던
그 눈빛도 그 미소도
원하는 말 해주지 못했어
다시 한번 우리 추억을 바라본다 _<소음집(小音集)> '너에게' 딘딘(Feat. 정세운) 중
지금 불안한 미래 때문에 겁에 질려있다면, 혹은 사랑의 불안정성 때문에 심장이 너무 급하게 뛴다면 잠깐만 멈춰서 유튜브에 정세운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좋겠다. 아니면 음원 사이트에서 그의 앨범 하나를 플레이해 보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느긋한 안정이 찾아올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정체를 알지만, 굳이 말로 풀어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위에서 다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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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
유야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