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김현영 "대중문화 속 여성의 목소리를 듣다"
권김현영은 『여자들의 사회』에서 대중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사회를 이야기한다. 지금 이곳의 여자들이 만들어내고 경험하고 있는 진짜 사회 말이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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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 저자

“여자의 적은 여자다”, “여자들은 의리가 없다”, “여초 회사는 뒷말이 많다” 등 여자들의 관계를 단언하는 말이 많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여자를 함부로 규정하는 뻔한 얘기에 신물이 난 저자 권김현영은 이 책에서 대중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사회를 이야기한다. 지금 이곳의 여자들이 만들어내고 경험하고 있는 진짜 사회 말이다. 

만약 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여자들의 사회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이 책 『여자들의 사회』는 바로 그동안 말해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관계를 탐색한다. 



『여자들의 사회』는 <채널예스>에서 연재하신 〈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칼럼이라는 점에서 더욱 반갑습니다. 제목도 그대로인데, 어떤 의미인가요?

‘여자들의 사회’라는 제목을 정했을 때 어떤 반응일까 궁금했는데 주변 반응이 괜찮았어요. 엄마도 “이번 책 제목 좋네~”라고 하셔서 안심이 되었고, 같이 여성학을 연구하는 동료도 “무슨 얘기가 담겨있을지 기대된다”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사회’라는 말이 꼭 들어갔으면 했어요. 남자의 우정은 형제애라는 이름으로 인류 보편의 가치를 대표하는 말이지만 자매애는 여자들만의 것이고 예외적인 것으로 분류되었는데, 저는 여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역시 곧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자의 적은 여자’ 라거나 ‘여초 회사는 뒷말이 많다’는 등 여자들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사람이 모여있으면 당연히 싸움이나 갈등도 있게 마련이고, 뒷말도 서로 하기도 하죠. 남자들도 싸우고 뒷말하고 그러잖아요. 남초 집단의 뒷담화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대단하더라구요. 하지만 남자의 적은 남자라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죠. ‘여적여’라는 말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고 ‘약자끼리 싸우네?’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조롱의 말이에요. 애초에 프레임이 잘못된 거죠. 저는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 여자들 사이에도 이해관계와 입장이 다르면 싸우는 게 당연한데, 그걸 가지고 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식으로 프레임에 씌우는 걸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셨는지, 쓰고 싶었는데 쓰지 못한 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에서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건 여자들, 그러니까 여러 명의 여성이 한꺼번에 나오는 상황 그 자체였어요. 저는 여자들이 집단으로 등장할 때 개인으로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작품 선정의 기준은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 게 최우선이었고, 그중에서도 여자 독자들의 사랑을 오래 받아왔던 작품인 <빨강머리 앤>이나 <작은 아씨들>은 빼놓을 수 없었어요. 

백지영 씨가 여자 아이돌들에게 인생곡을 주는 프로그램 <미쓰백>이나 스트릿 댄서들이 크루를 결성해서 집단적으로 나오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같은 프로그램이 나와서 너무 반가웠고요. <위대한 방옥숙>이나 <여탕보고서>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동성사회의 인류학적 풍경을 볼 수 있는 작품들도 아주 소중했습니다. 쓰고 싶었는데 못 쓴 건 개그우먼들 얘기요. 이영자씨가 박나래씨의 대상 시상자로 나왔을 때의 장면이 너무 감동이었거든요. 최근 몇 년 동안 개그우먼들이 나서서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게 다 실존 인물들의 실제 관계라서 막상 쓰려니까 어디까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망설이다가 쓰지 못했어요. 그리고 운동하는 여자들 얘기를 쓰고 싶어서 <달리는 사이>도 보고 <골 때리는 그녀들>도 봤는데, 콘텐츠만 신나게 보고 글로 남기지는 못했네요.

<채널예스>에서 연재하셨을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미쓰백>에 대한 글을 썼을 때, 출연진이었던 나인뮤지스 출신의 세라 씨가 글을 본인 SNS에서 공유해주신 적이 있어요. 마음이 닿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동적이었어요. <미쓰백>의 마지막 방송에 인터뷰를 해줄 수 있냐고 작가진에게 연락을 받기도 했었어요. 마지막 방송 컨셉이 바뀌어서 불발되었지만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20년 전에 개봉한 영화여서 독자들이 찾아볼 수 없을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마침 올해 20주년을 기념해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특별전이 상영되어서 기분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했었죠.

여성 서사의 시대라고 할 만큼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가 늘어났는데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혹시 최근 여성 서사 콘텐츠에서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성이 나온다고 해서 여성 서사인 것은 아니잖아요.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루어지느냐가 중요하죠. 저는 여성 서사라는 말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기존의 서사가 규범화된 방식에 어떻게 저항하고 효과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여성 서사는 지금 나온 당대의 역사 속에서 계속 찾아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문학박사인 류진희 선생님은 해방기 여성작가들이 식민지기 언론장에서 주형되었던 ‘교육받은 경성의 신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나선 장면을 해방기 여성서사의 부흥이라고 분석한 바 있는데요. 이처럼 여성이 그동안 허용되었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 때 여성 서사가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서사가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중심적으로 규범화되어있다고 비판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서사 장치를 다르게 사용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는거죠. 

그런 점에서 로맨스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같은 작품이 클리셰를 가지고 노는 방식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전복적인가가 핵심이 아니라, 장르의 문법을 즐기는 독자들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익숙한 이야기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하는 걸 어떻게 설득해내느냐가 잘 만든 여성 서사의 기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동백꽃 필 무렵>도 처음에 방영되었을 때 시청자들은 전형적인 여적여 구도라고 생각하고 비판했어요. 그런데 작가는 바로 거기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서 이야기의 마지막을 다르게 만들어갔습니다. 처음부터 여자들이 서로를 돕는 이야기만큼이나 이런 식으로 기존에 익숙했던 여성들이 서로 적대하게 하는 서사를 바꾸는 작품들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어요. 그런 점에서 아쉽다기보다는 아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었구나 하고 발견하면서 놀라워한 편이었어요.



페미니즘 이론을 만들고, 페미니즘 이론으로 사회를 분석하는 사회과학책을 주로 집필하셨는데요, 이 책은 성격이 조금 다른 듯합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즐거움이 있었나요? 아니면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컸나요?

작년에 출간한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를 읽은 독자분이 서평에 제 글이 점점 담백해지고 있다는 평을 남겨주셨더라구요. 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에 제가 쓰는 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높을 수밖에 없어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고 받아들이죠. 때로 영화나 소설보다도 참혹한 게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의 현실이거든요.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함께 이 문제에 응답해주기를 바라서 감정을 꾹꾹 누르면서 글을 쓰는 편인데, 이번 책인 『여자들의 사회』에서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 그런 부담은 확실히 덜었어요. 작품을 경유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실제 사람이나 사건이 다루지 않으니까 좀 더 글쓰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상대적으로 마음이 가벼웠어요. 문제는 쓰면서는 무척 즐거웠는데, 막상 저 자신이 너무 많이 드러나버려서 단행본으로 낼 생각을 하니까 엄청 부끄러워지더라구요.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 중 딱 하나를 추천하신다면?

<채널예스>에 연재할 때 가장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던 글이 <윤희에게>에 대해 쓴 글이었어요. 이번에 단행본이 나오곤 난 다음에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바로 <윤희에게>를 봤다고 하더라구요. <윤희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영화예요. 다정한 용기가 필요한 계절인 겨울에 특히 어울리기도 하고요.





*권김현영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PC통신과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에 나우누리 여성 모임 ‘미즈’의 운영진을 맡았던 영페미니스트이다. 같은 시기에 게릴라 여성운동 모임을 표방한 돌꽃모임 멤버로 활동하며 ‘편협한 페미니스트들의 저열한 잡지’를 만들고 지하철 성추행 방지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여성주의 네트워크 <언니네>에서 편집팀장이자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하며 이화여대, 국민대, 성공회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한겨레>, <씨네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여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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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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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PC통신과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에 나우누리 여성 모임 ‘미즈’의 운영진을 맡았던 영페미니스트이다. 같은 시기에 게릴라 여성운동 모임을 표방한 돌꽃모임 멤버로 활동하며 ‘편협한 페미니스트들의 저열한 잡지’를 만들고 지하철 성추행 방지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여성주의 네트워크 [언니네]에서 편집팀장이자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하며 이화여대, 국민대, 성공회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한겨레], [씨네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여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다시 본 세계는 이전과 전혀 다르지만, 그 눈은 그에게 고유한 자신으로 삶을 사는 굳건함, 아무도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는 단단함,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 당당함을 가져다주었다. 여전히 무엇이 더 나은 길인지 고민하지만 분명한 점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온 시간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오늘도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는 삶을 계속하자고 다짐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이다. 『언니네 방 1~2』,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등의 편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성폭력에 맞서다』, 『대한민국 넷페미사』, 『미투의 정치학』 등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