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렇다. 2020년과 2021년의 연말을 이전만큼 활기차며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고, 크리스마스 캐럴에 잠깐 귀를 기울였다가도 갑작스럽게 주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불안해하는 이들의 숫자는 확 늘었다. 이런 시기에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아 듣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남은 에너지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 때의 나는 다르다. 음악을 얘기하는 기자라는 이야기를 하기 민망하게도, 귀만 아픈 시끄러운 일을 벌인 사람처럼 신경질적으로 이어폰과 헤드폰을 빼 던져버리고 싶은 짜증이 솟구칠 때도 있다.
사실 샤이니 다섯 명의 목소리가 모두 담긴 트랙들을 다시 듣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의 솔로 앨범도 마찬가지다. 다른 샤이니 멤버들이 발표한 솔로 앨범과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샤이니 섹션’에 오래도록 꽂혀 있었지만, 나는 앨범을 꺼내려다가도 멈칫하고 손을 치웠다. 그가 쓴 짧은 소설 ‘산하엽’도 마찬가지였다. 종종 음악가들이 만드는 문장을 살필 때 다른 음악가들이 낸 수필집이나 소설을 보면서 그의 글도 꺼내 보던 일이 조금 먼 일이 되어버렸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멤버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그에 대해 웃을 듯 울 듯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용기가 좀 났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터놓는 말들이 아주 큰 위로가 됐다. 검색을 통해 실수로라도 그의 앨범이나 그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곡을 틀면 강박적일 정도로 빠르게 끄고, 스스로를 책망했던 시기가 끝이 났다.
왜 나를 책망할 정도였냐면, 나는 그의 음악을 듣고 그가 하는 얘기들을 들으며 음악가를 이해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체득했다 자부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R&B, 소울과 재즈의 공식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세련되게 자기 방식대로 멜로디와 가사를 해석하고 해설하는 음악가였고, 나는 그런 그를 통해 좋은 음악가를 따질 때 필요한 요건이 무엇인지 정립하는 데에 도움을 얻었다. 샤이니 멤버들은 수많은 음악가 중에서도 각자를 하나하나의 좋은 예시로 들 만큼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지만, 그 안에서 그는 상대에게 마음속의 이야기를 내키는 대로 뱉어내는 능력이 유독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우리 솔직해져 볼까 / 내게 실망한 적 있지? / 맞아 나도 너에게 상처받았던 적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엔 항상 너 / 항상 너 곁에 있으니”라고 속삭이는 ‘따뜻한 겨울’이나, “넌 내게 감탄보다 큰 감동을 주네 / 기도하듯 노랠 하게 해 / Singing 할렐루야 / You got me singing 할렐루야”라며 상대를 신에 빗대 찬양하는 ‘할렐루야’는 전혀 다른 장르의 곡이다. 그러나 수많은 곡들이 그의 이름 아래 하나의 캐릭터로 모아졌다. 태민의 음악이 함축하고 있는 미(美)의 완전성에 관한 메시지나, 키의 음악에서 들리는 청량함과 뜨거운 열정의 공존 같은 역설과는 사뭇 다른, 그가 만들어낸 세계의 결정(結晶). 현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기쁨과 슬픔, 설렘, 우울 같은 단어가 그의 글을 통해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는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음악에 대해 다시 말하는 일을 겁내지 않는다. 게다가 어쭙잖게 음악과 예능 프로그램 속의 모습만으로 그를 비롯한 음악가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은 그와의 안녕 이후에 좀 더 신중하고 겸손해질 수 있는 쪽이 어딘지를 보고 그리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음악이나 연기에서, 글에서 그 사람의 성정이 드러난다는 말을 믿으면서도 그 믿음 자체를 경계한다. 내 믿음이 그 사람이 지닌 본래의 정체성을 해치거나,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어떤 사람이나 콘텐츠가 옳거나 좋은 것, 틀렸거나 나쁜 것이라고 말할 때 혹시라도 대중에, 창작자에게 능력치와 완성도 대한 평가가 아닌 개인에 대한 무분별한 칭찬이나 상처가 되지 않도록 더 많이 고민한다.
그러니 ‘♥’나 ‘feat.’과 같은 표현이 쓰인 SNS 기사로 ‘많이 읽은 기사’란이 채워지는 요즘, 나는 그가 내게 어떤 깨달음을 주고 갔는지 더 많이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가 나이를 먹는 동안, 나도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책임감이라는 가치에 집중하게 되었다. 함부로 쓴 것을 읽고 퍼뜨리는 일은 더 싫어졌고, 함부로 쓰는 일은 더더욱 싫어졌다.
당연하게도, 나는 여전히 완벽하게 이성적이지도 못할뿐더러 최대한의 공감 능력을 발휘해 분석 대상을 포용하거나 배척할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되지 못했다. 앞으로 더 반성하고 익혀나가야 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알려준 것들에 매우 고맙고, 그것들을 아끼면서 차근차근 나이를 먹고 싶다.
“나는 혼자 있는 것만 같아요”, “날 이해해줘”라는 ‘Lonely’의 가사로 사람에게 더 가까워지고, 새침한 여자가 좋다는 이야기를 거의 매 트랙에 넣어둔 채 “넌 자주 뒤를 돌아봐 줘 / 내가 널 따라 잘 도는지 / 이 궤도가 맞는지 꼭 확인해 줘(‘우주가 있어’)”라는 가사로 세련된 마무리를 할 줄 아는 음악가에게 더 가까워지고 기대를 버리지 않으면서. 이제 와 돌아보니, 2022년을 앞둔 지금의 상황에서 그가 쓴 가사에는 여성의 입장에서 비판할 만한 구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날을 마냥 윤색하지 않고 솔직하게 이런 지적까지 할 수 있는 건 분명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옳은 말이다. 내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한 고민에서 나온 결론이다. 그도 내 이야기를 들었다면, 앞으로 더 세련된 말들로 음악을 채워나갈 것이 분명하다.
희한하게도, 지금 이 글을 그와 함께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헤드폰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내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하지만 여러분, 저는 계속 쓰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김종현 씨와 함께 한국의 대중음악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박희아 기자였습니다. 2022년에는 오늘보다 더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옳고 그름,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멋진 한해이기를 바랍니다.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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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
태민하세요
202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