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춤을 보고 즐겼던 『춤추는 세계』의 저자 허유미 안무가가 교양서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으로 돌아왔다. 『춤추는 세계』가 2020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되며 필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허유미 안무가. 그는 신작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을 통해 독자들에게 춤의 세계를 좀 더 깊이 알려주고 싶다고 한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같은 댄스 예능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SNS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 춤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럴 때, 막연히 춤은 멋있지만 어렵다고 느꼈던 일반인들이 어떻게 춤을 만나면 좋을지, 허유미 안무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은 춤 전반을 다루는 입문서인데, 전공자를 위한 전문서적인가요, 아니면 일반 교양서까지 염두에 두신 건가요?
일반인들을 위한 춤 입문서로 기획한 책입니다. 대중적인 춤 강의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책을 쓰다 보니 전공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들도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전공자, 비전공자 모두에게 두루 읽혔으면 합니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 전통무용, 케이팝 댄스까지 다양한 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게 보통 춤을 다루는 책들이 취하는 구성인가요, 아니면 특별한 의도를 갖고 춤을 선택하신 건가요?
보통 무용이론서들은 발레, 현대 무용, 한국 전통 무용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하거나, 특정 연구 분야를 심도 있게 다룹니다. 춤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춤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거나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지요. 춤에 이제 막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을 만한 내용을 다루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러 춤 장르와 춤의 문제들을 아우르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일반적인 무용개론서에서 다루지 않는 사교춤, 뮤지컬 댄스, 스트리트 댄스, 케이팝 댄스도 소개하기 때문에 춤을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댄싱9〉,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 댄스 예능이 인기를 끌며 대중이 춤을 예전보다 가까이 여기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안무가이자 학교에서 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요즘 이런 프로그램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몇 년 전 열풍을 일으켰던 〈댄싱9〉도 그랬고, 최근 〈스우파〉도 크게 성장하고 있는 스트리트 댄스 씬의 여러 스타일과 활동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어요. 춤꾼들이 겪는 감정적인 경험에 공감도 많이 했습니다. 춤꾼이라면 모두 느끼는 춤 속에서의 고충, 보람이랄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춤을 췄기 때문에 좌절, 질투, 행복감, 신체적 고통 같은 것들을 수없이 느껴 봤죠. 그런 것들이 떠올라 막 울면서 보기도 했어요.
이런 열기가 계속되면 좋겠어요. 댄스 예능에서 볼 수 있는 춤은 주로 감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어렵지 않는 춤이죠. 이 관심이 좀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춤 작품을 감상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직접 무슨 춤이든 배우게 되는 차원까지 나아갔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재미있는 춤이 많거든요.
서양과 동양의 춤 문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양 춤 안에서도 한국 춤은 또 다른 독특함이 있는 것 같고요.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서양식 극장이 협률사입니다. 1902년에 세워졌으니 서양식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이런 무대 위에서 효과적으로 보여지려면 기본적으로 발레를 해야 합니다. 발레 테크닉에는 몸을 공간에 크고 길게 펼쳐 전시하려는 확장의 의지, 중력을 극복하려는 수직상승의 의지가 담겨 있어요.
그런데 우리 전통춤은 전혀 달라요. 춤추는 몸이 환경의 일부이죠. 따라서 몸이 대지와 공명합니다.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가시적인 테크닉도 거의 없고요. 개인의 인격이 드러나는 즉흥춤이 기본입니다. 멋 · 여유 · 흥 · 한 · 정중동 같이 계량화되지 않는,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들로 춤을 평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멋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거의 비슷하다는 게 참 흥미롭습니다.
K팝 댄스는 전적으로 서양 춤처럼 보이는데요, 한국 전통무용과 연결되는 지점도 있을까요?
케이팝 댄스는 미국 흑인 춤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케이팝 댄스의 시작은 ‘소울 트레인’같은 미국 쇼 프로그램의 흑인 스트리트 댄서들 춤을 모방한 것이었으니까요. 즉흥성, 리듬감, 자유로움이 강조되는 춤이지요. 우리 전통 춤 역시 장단을 타고 놀며 자유롭게 멋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연결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참 흥이 많고 춤추기 좋아하지요. 그 점도 비슷한 거 같아요.
책 내용에서 대중의 춤 경향이 계속 바뀌어 간다고 짚은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하셨는데, 메타버스 같은 가상현실 세상이 주목 받는 요즘, 춤에도 이에 맞는 변화가 있을까요?
자신과 타인의 몸을 인식하는 방식은 춤에도 반영되지요. 사교춤의 변화를 보면 그것이 느껴집니다. 레이브 문화가 포스트모던 세계를 반영하듯, 가상현실이 주목받는 시대이니만큼 많은 무용학자들이 가상현실에서의 춤, 춤 너머의 춤, 몸 너머의 몸, 디지털 기술과 춤의 결합 같은 것들을 연구하고 있고, 안무가들도 이와 관련된 실험적인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망과 요구는 코로나 사태로 공연 현장이 마비되면서 더욱 커졌고요. 만나야 춤 출 수 있는데 만나지 못하면 출 수 없나? 몸으로 감응한다는 게 뭐지? 이런 질문들이 나오고 있지요.
그런데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코로나 사태 2년을 보내면서 제가 느낀 건 오히려 몸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질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다들 방 안에 갇혀서 접촉 없이 지냈잖아요. 인류가 이렇게 거리감을 두고 낱낱으로 살아본 적이 있을까요? 디지털 기술이 이 거리를 아무리 가상으로 이어준다 해도, 사람의 생생한 몸짓을 만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더 커지지 않았을까요?
한국 교육에서는 전공자 말고 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전공을 하더라도 입시 위주로 교습이 전부이고요. 우리가 어려서부터 춤을 배우고 가까이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자신의 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몸이라고 하면 건강, 자기 관리, 힐링, 뭐 이런 걸 주로 생각하고, 또 요즘은 그런 것들에 관심이 과도하게 치우쳐 있어 ‘몸을 이렇게 열심히 생각해 본 시대가 있을까?’라고 착각하게 하지요. 춤은 몸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게 해줍니다.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내 몸의 세계의 일부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일단, 춤추면 즐겁지요. 뭘 좀 알고 추면 더 잘 놀 수 있어요. 풍류를 아는, 삶을 풍부하게 감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릴 때부터 춤을 가까이 접해야겠지요.
그럼에도 아직은 춤을 추는 것도 보는 것도 어려운 듯합니다. 이 어려움 끝에 닿을 춤의 재미는 어디에 있을까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오프닝과 엔딩에서 김혜자 배우가 막춤을 추는 장면이 나와요. 저는 영화에서 춤을 다룬 장면들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인 모성애를 가진 살인자, 저 복합적인 감정과 복잡한 인간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허허벌판에서, 또 고속버스에서 미친 여자처럼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줬구나. 사람들은 보통 즐거울 때 춤을 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춤은 이 영화의 장면처럼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에도 터져 나옵니다. 현대 무용의 선구자인 이사도라 던컨도 그런 말을 했어요. ‘나는 말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춤으로 춘다.’ 언어화되기 이전 것들이 춤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춤의 어려움은, 동시에 재미는 이런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희뿌연 이야기였나요? 그럼 이런 사족이라도 덧붙여 볼게요, 일단 한 번 춤 춰보시라니깐요!
*허유미 부산예고와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예술전문사를 졸업했다. ‘창작춤집단 가관’과 ‘라트어린이극장’ 등 다양한 단체에서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활동해 왔다. 〈춤추는 거미〉와 〈LIG아트홀웹진〉에 춤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 출강 중이다. 춤을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춤추는 세계』가 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