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말, 황정은 작가에게 메일을 썼다. <책읽아웃>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제안. 반드시 수락하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바람만 가득했을 뿐. 며칠이 지나 답장이 올 거라 예상했는데 이튿날 아침, 답장이 왔다. “부담이 크고 걱정도 됩니다만 제가 하고 싶습니다.” 뜻밖의 빠른 회신이었다. 후에 들어보니 황정은 작가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했다. 문득 오은 시인에게 받은 답장이 떠올랐다. 2018년 3월이었고 오은 시인 역시 이튿날 아침, 수락 메일을 보내왔다. “여러 가지를 고민해봤는데, 즐겁게 하면 즐거운 팟캐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손 내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해볼게요!” 이렇게 두 사람은 〈책읽아웃〉 진행자가 됐다.
방심이 터지는 순간, 몰입하는 순간
두 분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공통점을 떠올려봤어요. 첫째, 이름에 ‘은’이 들어간다. 둘째, 잠들기 직전의 시간을 좋아한다. 셋째, 메일을 짧게 쓴다.
황정은 : 업무 메일은 짧게 씁니다. 그거 읽는 것도 일이잖아요.
오은 : (웃음) 본론은 만나서.
아, 중요한 공통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책읽아웃〉의 게스트로 출연하신 후에 진행자가 되셨어요. 황정은 작가님은 『연년세세 年年歲歲』를 출간하셨을 때 ‘오은의 옹기종기’에 출연하셨어요.
황정은 : 2020년 겨울이었죠. 팬데믹 때문에 집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던 때였어요. 멀리 나갔다돌아오는 일이 사라지니까 사람이 더 편협해지는것 같고, 낯선 사람을 만난 지도 너무 오래되어서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나가고 싶었어요. 〈책읽아웃〉을 제작하는 분들이 녹음실에서 친절하게 맞아줘서 고마웠습니다.
〈책읽아웃〉 진행자가 되기 전에도 방송을 들으셨나요?
황정은 : 게스트가 출연한 방송을 골라 들었어요. 구병모 작가님과 박상영 작가님, 제현주 작가님이 출연하신 방송을 들었고요, 제현주 작가님 목소리가 좋아서 두 번 들었어요. 이길보라 감독님이 출연한 에피소드도 들었고 그 방송 덕분에 감독님의 책을 읽고 영화도 봤습니다.
두 분은 진행자이면서 청취자이기도 하시죠. 서로의 방송을 어떻게 듣고 계신가요?
오은 : 일단 황정은 작가님의 목소리 톤을 좋아해요. 그리고 따뜻함과 냉정함이 다 있으셔서 참 좋아요. 저는 녹음하다 보면 감정에 휩쓸릴 때가 많아요. 동화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황정은 작가님의 방송을 들으면 평정심이 느껴져요. 게스트들이 작가님 앞에서는 그냥 말을 편하게 털어놓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이 사람 앞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된다,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하세요.
황정은 : 제 진행에서 평정심을 느끼셨다니 놀랍습니다.(웃음) 저도 자주 휩쓸려서 애를 쓰거든요. 방송을 모니터링하면 게스트분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말문이 막히거나 숨 막힌 부분이 다 느껴져요. 너무 떨어서 숨을 그만 쉬면 좋겠다거나 제발 숨 좀 쉬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도 번갈아가면서 많고요.
현장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자신만 아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저는 오은 시인님의 톤이 균일해서 그 점이 좋고 부러워요. 그리고 게스트에게 질문할 때 어미를 정확하게 말씀하시잖아요. 저는 문장을 쓸 때 마지막 말을 많이 고민하는데 방송 중에는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말을 뭉갤 때도 있는데 오은 시인님은 그런 실수가 없어서 불안하지 않아요. 듣는 입장에서요.
오은 : 요즘은 자꾸 “~한 것 같아요”라는 말을 많이 쓰게 돼요.
황정은 : 저자와 마주 앉아서 대화하고 질문할 때에는 그게 가장 적당한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내 오독이 전제된 추측이고 내 생각이니까. 게다가 질문을 한다는 건 질문을 받는 상대를 어느 정도는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그게 마주 앉아서 질문을 받는 사람에게는 공격으로 여겨질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조금이나마 겸손하게 물을 수 있는 방법이 ‘~한 것 같다’는 말인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글을 쓸 때에는 가급적 쓰지 않는 말이기는 합니다.
입말과 글말의 차이인 것 같아요.
황정은 : 아, 그리고 오은 시인님이 웃을 때가 좋습니다.
오은 : 웃음 하면 황정은 아닙니까? 방송을 들어보면 아주 빵빵 터지시던데요.
황정은 : (웃음) 오은 시인님이 웃으면 방심이 느껴져요. 방심,이라는 작은 주머니가 그 순간에 펑 터지는 거 같고. 그럴 때 사회자의 마음이 게스트를 향해 열려 있다는 게 느껴져서 좋아요. 그리고 게스트의 이야기를 잘 듣고 오은 시인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면서 대화를 바로 이어가잖아요. 순발력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 속도나 자연스러움이 제게는 많이 부족합니다.
오은 : 제가 성격이 급해요. 뭔가 재치 있는 말이 떠오르면 이걸 빨리 써먹고 싶어서.(웃음) 저는 황정은 작가님의 신중함이 무척 부럽습니다. 그 신중함이 방송을 편안하게 이끄는 느낌이 들어요.
시인님이 꿈꾸는 진행자로서의 이상형이 있을까요?
오은 :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이 은근히 많지 않은 듯해요. 다들 각자의 사연으로 법석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소연할 게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잘 들어주는 사람, 그런 말까지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속사정을 털어놓게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편하면 편한 대로, 어색하면 어색한대로 흘러나오고 때로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거기에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을 수도 있고요. 상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찾아주고 그것을 입 밖에 내게끔 하는 캐릭터, 꿈이 거창하지요?(웃음)
‘모든 책을 좋아한다’는 고백
어떤 루틴으로 방송을 준비하시나요?
오은 : 일단 책을 읽기 전에 최대한 백지 상태를 만들어요. 이미 게스트의 전작을 다 읽었더라도 모른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내가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면 설렁설렁 준비하게 되잖아요. 이 마음이 제일 무서운 거라서 조심하려고 해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은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요. 이전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요. 이미 다른 매체에 소개된 이야기를 굳이 우리 방송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황정은 : 수요일에 녹음이 끝나면 그날은 놉니다. 정말 행복하게 놀아요. 다음 날인 목요일엔 좀 의기소침하게 놀고, 금요일부터는 슬슬 압박감을 느끼죠. 게스트의 전작들을 읽어야 하고 ‘삼자대책’에서 소개할 책도 골라야 하는데 그러면서 소설도 써야 하고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하니까 요즘은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알맞은 루틴을 아직 만들지 못했는데 차차 괜찮아지겠죠.
책은 어떻게 고르시나요?
황정은 : 관심사 위주로 책을 읽다 보니 대개는 앞선 독서가 다음 독서를 결정해요. 그래서 인문사회 도서는 주제로 책을 찾아 읽고요, 문학 도서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첫 장을 읽고 결정합니다.
오은 : 거의 매일 예스24 ‘오늘의 책’과 국내 도서의 ‘신상품’을 확인합니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마음에 드는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오늘 넣은 책은 『정읍시인론』과 『페인트 잇 록 Paint It Rock』, 그리고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입니다. 장바구니를 비우는, 결제의 시간은 보통 저녁입니다. 관심 작가의 새 책이 나오면 무조건 구입하는 편이고요, 문학 도서는 자주 가는 동네 책방에서 삽니다.
두 분은 인터뷰 코너 외에 각각 ‘삼자대책’ ‘어떤 책임’에서 독자로서 읽은 책을 소개하고 계세요. 작가로서 책을 추천하는 일, 어쩌면 더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소개할 때 경계하는 부분이 있나요? 오독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시나요?
오은 : 〈책읽아웃〉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저는 오히려 오독을 무서워하지 않게 됐어요. 이해가 ‘가장 잘한 오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단지 이 책을 소개할 때 나만의 시선이 깃들 수 있을지를 고려해요. 물론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배제할 수 있는 책은 가급적 소개하지 않으려고 해요. 아,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다’ 말하지 않아야 ‘더’ 궁금하더라고요.
황정은 : 오독을 걱정한다기보다는 오독을 늘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책 소개는 제가 관심 있게 읽은 부분, 좋았던 점을 중심으로 말하는 일이라서 늘 하나의 관점일 수밖에 없어요. 책 전체 내용에 비해 아주 작은 조명일 뿐이니까, 오독의 가능성은 늘 있고 그걸 굳이 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책을 소개할 때 제가 경계하는 점은 녹음 일정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책을 선택하는 일이에요.
“책을 읽을 때 어떤 형태로든 나한테 상처를 남기는 책을 좋아한다.” 황정은 작가님이 〈책읽아웃〉에서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읽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독자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하신 말이에요. 유독 기억에 남았어요. 상처를 남기는 책이란 무얼까요?
황정은 : 사실 거의 모든 책은 읽는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성질이 있는 것 같아요. 내 기준이나 편견이나 생각, 하다못해 기분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모든 책을 좋아한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만(웃음), 책 중에 특히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책은 읽는 사람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쳐요. 저는 그게 좋습니다. 예컨대 르포 기록 노동자들의 책을 읽는 경험은 세상을 대하는 내 태도를 생각하게 하고 타인을 대하는 마음과 타인의 사정을 생각할 여지를 주기도 해요. 저는 그런 책들의 도움으로 너무 무감한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게다가 고통을 담은 책을 읽을 때 내가 상처받는 이유는 상처 입은 누군가가 이미 있기 때문이니까, 저는 그런 독서에서 발생하는 상처를 감당하고 싶어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강렬하게 좋았던 문장이 있을까요?
황정은 : “비극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겉발림으로 하는 다정한 말이 아니다. 비극의 본질에 상응하는 깊이를 지닌 언어뿐이다. 그것을 나는 지금도 찾고 있다.” 헨미 요가 쓴 『1★9★3★7 이쿠미나』의 문장입니다. 한 번 지나가듯 봤을 뿐인데 잊을 수가 없었고 결국은 책을 찾아 읽게 만들었고 계속 생각나는 문장이에요. 끈질기게 ‘왜’를 물으면서 집단과 개인의 기억에 다가가려고 하는 작가의 태도가 저는 좋았어요.
오은 : 최승자 시인의 첫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고 압도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모든 글이 다 좋았으나(좋다는 말로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합니다) 이 문장을 꼽고 싶네요. “쉬운 삶이란 없다. 어떤 존재든 혼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두려움이 말실수를 막아준다
황정은 작가님의 첫 방송은 2021년 10월이었어요. 지금까지 박상영, 다드래기, 조해진, 최진영, 희정, 김지윤, 문유석, 송지현, 임솔아 작가님을 인터뷰하셨어요. 언제 〈책읽아웃〉을 진행하기로 한 일을 잘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황정은 :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마치고 책상에서 일어설 때. 일주일간 방송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긴장이 쌓이는데 그게 해소되는 순간이 좋아요. 그리고 작가와 마주 앉아서 어떤 순간, 어떤 표정을 겪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게스트로 모신 작가들은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세상과 사람과 자기 자신을 깊이 고민하며 글을 쓴 사람들이잖아요. 그 이야기에 몰입할 때 그분들이 보여주는 각자의 표정이 있어요. 그런 순간 때문에 게스트로 방문한 작가들을 제가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하길 잘했다’ 싶죠.
지난해 첫 에세이집 『일기』를 출간하셨죠. 요즘도 일기를 쓰시나요?
황정은 : 가끔 씁니다. 방송 녹음을 다녀온 뒤에도 쓰고요. 마음이 어둡고 생각이 복잡할 때 주로 쓰기 때문에 정돈된 구조의 글은 아니에요.
오은 시인님은 “글을 쓸 때마다 찾아오는 기진 맥진함이 좋다”고 하신 적이 있었죠. 〈책읽아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해요. 사람을 참 좋아하니까, 방송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은 : 사실 방식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수렴’과 ‘발산’이랄까요. 글 쓸 때는 나 자신에게 수렴하는 모드가 되는 듯싶어요. 안팎으로 모은 자극들이 내 몸을 투과해 어떤 활자들로 나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쓰다가 좌절하고 쪼그라드는 일도 많지요. 사람을 만나는 일, 대화하는 일은 발산하는 일에 가까워요. 현장 분위기가 한껏 드러날 수 있게 에너지를 퍼져나가게 하는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답하다 보니 공통점이 떠올랐어요. 둘 다 어려워서, 알다가도 모르겠어서 이토록 오래 품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글도, 사람도.
팟캐스트 진행자가 되고 나서 달라진 독서 습관이 있나요?
오은 : 더욱 궁금해하려고 노력해요. 이전에도 독서할 때 궁금한 것들을 따로 메모해두긴 했는데 이 일을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된 듯싶어요. 사람을 만날 때도 상대가 궁금해야 이것저것 묻게 되잖아요. 궁금증이 생기는 곳에 색인을 하는 것도 바뀐 습관이에요. 철저하게 독자의 입장에서, 혹은 청자의 입장에서 알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상념에 잠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 말이 음성 파일로 남는다는 사실이 두려워 라디오나 팟캐스트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작가님이 종종 있었어요. 정제된 글이 아닌 말로 남겨지는 것, 이제는 두려움이 없으신가요?
황정은 : 있죠. 두려움도 있고 창피함도 있어요. 그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말을 세상에 남기면 오해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무슨 큰일일까 싶어요. 오해는 늘 있고, 오해가 아닐 수도 있고요. 좀 창피하면 어때, 그런 생각도 해요. 그래도 여전히 말은 어렵고, 두렵습니다.
오은 : 저 역시 늘 두렵습니다.(웃음) 남는다는 것은 언제든 누군가가 들출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러나 읽고 쓰는 사람에서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이 된 지금, 별수 없이 이를 떠안고 가야겠지요. 동시에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두려움이 없다면 생소리와 허튼소리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두려움이 말실수를 막아주는 역할도 하는 듯 싶습니다.
내 생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2022년이 시작된 지 딱 한 달이 지났어요. 요즘 자주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황정은 : 나무를 생각하고 있어요. 세상에 없는 나무인데 이 나무에서 시작되는 소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은 : 연초가 되면 사전을 펼쳐 단어를 찾는 의식을 갖습니다. 한 해를 예측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죠. 올해는 ‘ㄴ’에서 고르려고 펼쳤는데 ‘ㄲ’ 부분이 나온 거예요. 아차 싶었죠. 가장 먼저 눈길이 가닿았던 단어는 바로 ‘깜냥깜냥’입니다. ‘자신의 힘을 다하여’ 혹은 ‘저마다의 능력대로’를 뜻하는 부사인데요,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제 모습을 곧이곧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미뤄두었던 시집 원고 정리 작업을 슬슬, 깜냥깜냥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시인님은 2022년이 등단 20주년입니다. 신인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오은 :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처음 시를 썼을 때 느낀 해방감이 정말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았거든요. 친구들은 모두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니까요. ‘지금 내가 글을 써도 되나?’ 그런 생각이 많았어요. 그냥 나는 나의 삶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좋은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은 작가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황정은 : “뭐가 됐든 네가 뭔가를 사랑하고자 하면 상처받지 않을 도리는 없다.” 첫 단편집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제가 세상을 향해 두꺼운 벽을 세우고 살았거든요. 상처받기가 끔찍해서.
앞으로 〈책읽아웃〉에 초대하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황정은 : 이서수 작가님의 단편집을 기다리고 있어요. 「미조의 시대」라는 단편을 좋아하는데, 그 소설에서 사람들을 보는 작가님의 시선이 무척 좋았어요. 이서수 작가님이 동시대를 어떻게 겪고 있는지,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오은 : 첫 책을 낸 작가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장르를 불문하고 첫 책은 그 사람의 지향점 같은게 가장 잘 드러나는 듯싶어요. 첫 책만이 가진 패기랄까, 가능성이랄까 그런 것에 절로 마음이 가는 사람이기도 해서요. 첫 발자국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 작가 입장에서도 분명 큰 힘이 될 거예요.
세상을 떠난 작가 중에 인터뷰하고 싶은 작가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오은 : 박경리 소설가, 김진영 철학자, 이환희 편집자. 책을 읽고 책을 쓴 사람을 오랫동안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남긴 빛무리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다시 또 읽어야겠지요.
황정은 : 세상을 떠난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세상에 남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으로 만족합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의 질문입니다. “좋은 책을 발견하는 법이 있을까요?”
황정은 : 경험을 쌓는 것 말고는 적당한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각자에게 좋은 책을 알 수 있도록 독서 경험을 쌓고, 그러다 보면 각자에게 잘 맞는 책을 고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오은 : 무엇보다 ‘나’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를 둘 다 알면 서점에 가서 오랜 시간을 헤매지 않을 수 있어요. 물론 어떤 책을 통해 ‘지금의 나’를 직면하기도 하고 ‘되고 싶은 나’를 헤아려볼 수도 있겠지요. 실패한 선택일지라도, 나의 취향과 관심사, 가치관을 뾰족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책을 고를 때만큼은 마음이 가벼울수록 좋은 것 같아요.
좋은 독서란 결국 무엇일까요?
오은 : 내가 ‘우물 안 개구리’임을 깨닫게 해주는 독서가 아닐까요. 동시에 우물 밖을 상상하게 해주는 독서, 마침내 우물을 박차고 나오게 해주는 독서, 이는 제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황정은 : 내 삶과 내 고통과 내 생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 내 무지를 깨달아가며 독서를 통해 기쁘게 ‘무지’라는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
*오은 시인. 시집 『유에서 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나는 이름이 있었다』, 산문집 『다독임』 등을 썼다. 여전히 가장 즐겁고 잘하는 일은 시 쓰기. *황정은 소설가. 소설 『百의 그림자』, 『계속해보겠습니다』, 『연년세세年年歲歲』, 에세이 『일기日記』 등을 썼다. 소중한 것이 많아 걱정도 많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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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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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l0321
202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