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8월 미국의 음악 전문 채널 MTV 개국 이래, 대중음악은 수없이 많은 영광의 시절을 영상과 함께 나눴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은 음악과 영상이 결합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의 카탈로그를 빠르게 늘려갔다. 그 가운데 이제는 새 음악 프로모션의 기본 중의 기본이 된 뮤직비디오를 매개로 한 갖은 실험과 성장이 눈부셨다. 단순히 연주와 노래를 담아내는 것을 넘어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이나 드라마 타이즈 형식 같은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설레는 건 여러 창작자의 독창적 세계가 예술성을 담보하며 하나의 작품 안에서 폭발할 때였다. 음악과 영상이 만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들이었다.
독자적인 실험이라면 케이팝도 빠질 수 없었다. 특히 ‘보여주는 것’이 다른 어떤 음악보다 중요한 장르이니만큼, 케이팝의 너른 품 안에서 음악과 영상은 마치 한 몸처럼 얽히고설켜 음악 시장의 거친 들판을 내달렸다. 이제는 기본이 되어버린 티저와 뮤직비디오를 제외하고도 각종 에필로그와 프롤로그 필름, 복잡한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코멘터리 필름이나 앨범의 전반적인 콘셉트를 이해시키기 위한 아트 필름까지, 케이팝과 관련된 영상은 하루에도 수 십 개씩 산더미처럼 쏟아진다. 그렇게 쏟아지는 영상들 속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건, 다름아닌 가수의 얼굴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결국 케이팝 영상에 완벽한 완결성을 부여하는 건 노래의 주인공인 아티스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이다. 케이팝에서 아티스트란 그 작업의 시작이자 끝이고, 유일무이한 주연이자 조연이며, 개연성이자 모든 의미다. ‘짱구는못말려’의 짱구나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 같은, 뭐 그런 존재란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가수 수지가 4년 만에 내놓는 싱글 ‘Satellite’와 그 뮤직비디오는 온통 의외의 선택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2018년 ‘수지’를 테마로 음악과 이미지,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고자 했던 앨범
묵묵하게 정해진 발걸음을 옮기는 그 정예부대의 선두에, 모니카가 있다. ‘Satellite’의 소리를 채운 것이 수지와 강현민 두 사람이라면, 노래가 가진 감성을 시각으로 구현해내는 건 오롯이 댄서 모니카의 역량이다. 지난해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통해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 댄서이자 후배들의 굳건한 멘토로 큰 명성을 얻은 그는, ‘닿을 수 없다’는 단 하나의 테마와 ‘그저 당신의 춤을 춰 달라’는 가수의 든든한 지원의 말 아래 정말 원 없이 춤을 췄다고 한다. 시원하고 후련하게 들리는 모니카의 촬영 후일담은, 실은 말을 통해 굳이 직접 듣지 않아도 3분 44초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만으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삭막한 회색 건물 곳곳을 누비며 자신만의 몸의 언어로 노래의 감성을 담아내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노래가 조금 더 좋아진다. 사실 ‘Satellite’ 뮤직비디오를 두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앞에 나왔다. ‘여러 창작자의 독창적 세계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폭발할 때’ 우리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새로운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다. 수지와 강현민, 모니카의 세계가 만나 하나가 되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채, 그대로의 색깔로 편안하게. 이런 만남은 언제나 반갑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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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