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은 짧은 시간이다. 특히 자신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준비해 온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케이팝 아이돌은 단 한 순간도 낭비할 수 없는 그 절체절명의 시간을 주기적으로 맞닥뜨리는 대표적인 이들이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의 기다림 끝에 맞이한 이들의 3분은 오랫동안 품어온 이들의 꿈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장이자 불특정 다수의 대중 앞에 가진 패를 전부 꺼내놓는 운명의 순간이다. 하나의 무대는 그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각종 카메라에 의해 빈틈없이 박제된다. 공연이나 행사는 물론, 방송도 예외는 없다. 프로그램에 나갈 방송용 메인 영상은 물론 무대 정면에 고정된 시선을 담는 전체 무 대캠, 한 명의 멤버를 고정해 따라가는 개인 캠, 얼굴만 찍는 페이스 캠까지. 얼마나 부지런하게 창의적인 무대 영상을 남기느냐가 해당 음악 프로그램의 평판을 좌우한다. 조금 과장해, ‘직캠’ 없이는 케이팝도 없다.
직캠 하나가 떴다. 주인공은 이제 데뷔 갓 100일을 넘긴 신인 그룹 빌리의 메인 댄서 츠키의 직캠이었다. 아리랑TV의 음악 프로그램 ‘심플리 케이팝’이 찍은 신곡 ‘GingaMingaYo’ 개인 캠 영상은 3월 30일 현재 조회 수 600만 뷰를 넘겼다. 케이팝 팬들 사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아이돌 그룹이 뮤직비디오 1천만 뷰 달성을 기사화하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다. 바람은 케이팝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라거나 ‘신기할 정도로 잘한다’라는 반응에 궁금해 링크를 클릭한 사람들이 하나둘 중독을 고백했다. 영상 속 츠키는 마치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의 주인공 같았다. 악보를 빼곡히 채운 셋잇단음표처럼 무수히 흩어진 리듬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몸으로, 눈으로, 표정으로 따라갔다. 정말이지 뭔가에 씐 사람처럼 보였다.
잘하는 것을 넘어 기괴할 정도라는 해당 직캠에 대한 관심은 영상의 주인공 츠키 본인과 소속 그룹 빌리에 대한 관심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타 방송에 출연한 츠키 직캠 다수가 조회 수 100만 뷰를 넘겼고, 츠키 외 빌리 멤버들에 주목하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사실 케이팝 신에서 ‘직캠’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건 꽤 오래된 일이다. ‘자신이 직접 찍은 영상(直cam)’이라는 합성어를 대중에 전파할 정도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그룹 EXID 하니의 '위아래' 직캠이 있었고, 악천후 속 미끄러운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무대를 이어가는 멤버들의 모습으로 높은 화제성과 위험성에 대한 지적을 동시에 불러왔던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직캠이 있었다. 지난해 가요계의 가장 드라마틱한 성공사례로 언급되는 브레이브 걸스 역시 국방TV ‘위문 열차’ 출연 당시 촬영된 각종 직캠이 역주행 인기의 큰 요인이었다.
다만 츠키의 직캠이 과거 인기 직캠 사례들과 다른 건, 이 영상이 방송사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이며 무엇보다 ‘잘하는 것’에 자체에 인기의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직캠은 크게 일반인이 찍은 현장 직캠과 방송사가 음악 방송과 연계해 찍는 직캠 두 가지로 나뉜다. 지금까지 화제를 모은 직캠은 야외 공연이나 행사를 통해 나온 현장 직캠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가수들의 진짜 실력과는 상관없이 방송에서는 소화하기 힘든 포인트가 주목받는 경우가 많았고, 다방면의 선정성 시비가 자연스레 따라왔다. ‘문제가 있다’와 ‘그래도 잘됐으니 된 거 아니냐’는 모순이 만든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츠키 직캠은 꽤 상쾌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무대, 조명, 카메라 모든 것이 준비된 곳에서 청량음료처럼 터지는 준비된 재능을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습하면 오히려 어색해져서) 그저 음악에 몸을 맡겼을 뿐’이라는 츠키의 말에 영상을 보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잘하는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직캠의 진짜 의미가 떠오른다. 케이팝 비즈니스라는 커다란 대의 속 가려진 더 많은 재능과 더 많은 노력이 더 많은 이들에게 온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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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