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을 좀 더 쓸모 있게 잘 읽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과학자들의 사랑방이자 과학책에 대한 북토크, 세미나,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학책방 갈다를 찾아 궁금증을 풀었다. 논리로 무장한 책을 읽다 보면 논리가 생기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면 세상을 보다 합리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설명을 들으니 당장 과학책 독서를 시작하고 싶어졌다.
1. 입문자라면 해설서와 시리즈물부터
어려운 주제일수록 과학자가 직접 쓴 책을 처음부터 읽기보다 일상의 용어로 쉽게 풀어 쓴 해설서를 먼저 읽자. 더 쉽게 진입할 수 있고 흥미도 배가된다. 이럴 때 좋은 책들이 ‘청소년을 위한’ ‘10대들을 위한’ 등등의 이름으로 된 시리즈물이다. 과학 저술가가 단독으로 쓴 책에 비해 ‘일반 독자의 입장’이라는 편집자의 필터링을 거쳐 비교적 쉽고 기본적 내용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이런 기획물은 인공 지능, 유전자 가위, 기후 등등 넓은 스펙트럼으로 과학 전반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무엇부터 시작할지 모르겠다면 일반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들을 먼저 훑어보며 자신에게 흥미로운 분야를 찾아 접근해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2.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 고전이라면 개정판으로 읽기
과학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오래된 과학책의 경우 출간된 시대와 읽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 달라진 사실을 고려해 읽어야 하지만, 그러려면 최신의 과학적 성과를 알고 있어야 해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코스모스』와 같은 고전을 읽고 싶다면 맥락을 따라 읽되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모호한 것들은 건너뛰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보와 지식보다는 담론과 사상을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 최신의 과학 정보를 만나고 싶다면 당연히 최근에 출간된 책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출간 연도를 확인할 때 외국 도서의 경우는 번역된 발행일이 아니라 원서 판권의 발행일을 확인해야 한다.
3. 영상으로 흥미와 상상력을 먼저 맛보기
책을 읽기 전에 관련 분야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유튜브 콘텐츠를 시청하고 동영상 강의를 듣는 등 다양한 비독서 행위를 적극 활용하자. 영상과 글, 서로 보완해주는 두 매체 덕분에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얻은 상상력과 파편화된 정보들은 본격적인 독서를 통해 서로 연결되며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책을 읽은 후에 영상을 봐도 좋다.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면 책을 통해 얻은 과학적 개념을 형상화할 수 있게 된다. 과학 정보를 꼭 책으로만 국한해서 얻을 필요는 없다. 평소 과학책 전문 출판사, 과학 크리에이터들의 유튜브 채널 등 과학자들이 신뢰하는 콘텐츠를 자주 접하다 보면 콘텐츠를 구분하고 걸러내는 능력도 생기고 과학책 읽기에도 도움이 된다.
4. 리뷰와 서평 읽기
혼자 책을 읽고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과학책 읽기다. 이때 다른 사람이 미리 흘려놓은 정보에 올라타는 일은 다양한 관점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 독서 전에 리뷰나 서평을 읽어보는 비독서 행위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리 리뷰를 보면 책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데 가이드의 조언을 듣고 여행지를 방문하는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 먼저 책을 읽고 이해한 노력의 흔적을 따라가면 책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저자의 북토크를 보거나 인터뷰를 읽어보는 것도 마찬가지. 과학의 본령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듯 그 걸음은 함께 누릴 때 훨씬 풍요롭다.
5. 꼼꼼한 표지 읽기로 준비 운동
표지에는 책의 핵심 정보가 집약되어 있다. 띠지도 마찬가지. 책을 만든 사람들이 공들여 써놓은 정보는 책에 대한 진입 장벽도 낮춰주고 책을 펼치기 전에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을 떠올리는 데 효과적이다. 표지를 넘겨 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나 표지 디자인에 대한 정보도 지나치지 말자. 저자의 서문, 추천의 글, 옮긴이의 말 등은 꼼꼼하게 읽을수록 해당 분야의 큰 그림이나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6. 정독보다는 느슨한 완독을 목표로
교양서나 인문서에 가까운 과학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 놓아도 된다. 순서에 따라 읽어야 하는 인과 관계가 뚜렷한 책이 아니라면, 대개 장마다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목차를 보고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거나 마음 가는 대로 펼쳐 읽는 등의 자유로운 책 읽기를 하는 것이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 과학책은 중요한 내용일수록 정확한 설명을 위해 복잡한 내용을 자세히 풀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용어도 익숙하지 않고 실험이나 연구의 방법론을 모른 채로 완전 정복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다 읽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지름길이다. 정독보다는 완독이 중요한데, 이 역시 강박을 가지고 매달릴 필요는 없다. 모르는 용어를 만날 때는 인터넷으로 과학 용어 사전이나 위키피디아 같은 백과사전을 십분 활용하자! 느슨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읽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점차 완독을 위한 지구력도 생길 것이다.
7. 토론을 통한 교양 쌓기
토론을 염두에 두면 독서 단계에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한 책 읽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훨씬 공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책을 대하게 된다.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적극적이고 밀도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다. 토론은 과학적 사고를 다듬고 확장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토론 과정에서는 먼저 상대의 주장과 근거를 경청해야 하며 결과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거나 보완하고, 아예 허물 수도 있다. 토론을 통해 주고받은 논리들은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하고 확장해서 문해력을 조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8. 독서의 대단원, 리뷰와 서평 쓰기
서평이나 리뷰를 쓰는 것은 과학책 읽기의 완결판이다. 말하기의 영역인 토론에서 필요한 것이 순발력이라면, 글쓰기에서는 긴 호흡으로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논리적 구조가 탄탄해야 한다. 때문에 서평을 염두에 둔 책 읽기는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내용을 전하기 위해 상대적, 관계적인 독서를 하게 한다. 그래서 보다 철저한 독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독서로 이어진다. 처음부터 서평을 쓰는 게 부담스럽다면 감상평을 메모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본격적인 형식을 갖춘 글이 아니더라도 단상을 메모하거나 몇 줄짜리 감상평을 쓰는 습관만 들인다면 서평 쓰기가 한결 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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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