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마구 집어넣다보면 언젠가는 (1)
그 무렵 나는 상상력과 지식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는 게 없어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글ㆍ사진 김초엽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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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설 습작을 시작했을 때는 유독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거야.’ 아이디어를 적어둔 노트가 벌써 여러 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들 대부분은 소설로 완성되지 못했다.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는 거대한 라이브러리가 있다면 어떨까, 한 소년이 뇌를 사고로 잃은 후 생각의 대부분을 연결된 로봇 개가 대신하게 된다면 어떨까, 외부정보를 차단하는 기술이 형벌을 대신하는 사회가 있다면 어떨까. 이거 소설로 쓰면 분명 재미있을 텐데, 생각하며 조금씩 써 내려가다가도 어느 순간 제동이 걸리고는 했다.

‘그런데 이 사회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지? 국가체제는? 지리적으로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한국인가? 그런데 이런 사건이 근미래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말이 되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이런 사회가 생겨나지? 이 기술을 관리하는 주체는? 인물의 직업은?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평소에 무슨 일을 하지? (검색만 하다가 구글의 늪에 빠지고 만다) 너무 막막해서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야기도 상상이 안 되고……. 아니, 잠깐…… 이렇게 쓰는 게 맞나? 나는 아직 이 글을 쓸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그 무렵 나는 상상력과 지식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는 게 없어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SF를 쓰겠다고 생각한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세계를 그럴싸하게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니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나의 전공이어서 그나마 익숙한 과학이나 기술은 소설 속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에 불과했다. 다른 설명은 대충 얼버무린다고 해도, 단 한 줄짜리 설명이라도 앞뒤가 맞지 않다면 독자에게 세계 전체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습작 시절 쓴 소설들을 다시 보면 유명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의 분위기를 어설프게 베낀 것이 많다. 그 습작에도 나만의 고유한 어떤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밑바탕이 없으니 살면서 접해온 익숙한 이미지를 빌려와야 했던 것이다. 빼곡히 메모한 아이디어 노트의 토막글도 다시 검토해보면 사실은 이미 누군가 썼을 법한,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점차 나는 경험도 밑천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운 좋게 공모전에서 데뷔하고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두려움에 시달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 써버렸어. 내가 쓸 수 있는 글도 다 써버렸어. 이제 밑천이 바닥난 거야.’

갓 데뷔해놓고 자기 밑천이 벌써 바닥났다고 괴로워하는 작가라니, 그런 불쌍하고 한심한 사람이 존재하나 싶지만…… 그게 나였다. 의뢰받은 글을 쓰면서, 첫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첫 책 이후 차기작을 구상하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나는 끌어다 쓸 밑천이 없는 작가라고. 너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데뷔해버린 것 같다고. 새 글을 시작할 때마다,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를 억지로 쥐어짜내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고갈된 주머니를 쥐어짜내며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스무 편 넘는 단편과 서너 편의 중편과 장편을 썼다. 다행히 나는 아직 직업을 바꾸거나 글쓰기를 때려치우지 않았다. 이제는 독자님들로부터 “아이디어가 넘쳐흐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소설의 소재를 얻으시는지……”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야기보따리가 있나봐요” 하는 말도 듣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야기보따리가 있다고요? 저에게요? 매번 어리둥절. 하지만 나도 이야기라는 게 어디서 샘솟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줄 알았던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생각이 나를 오래 괴롭혔던 것 같다.

정말로 그렇게 이야기를 허공에서 낚아채서, 혹은 아무것도 없는 냄비를 휘적휘적 저으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작가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에게는 영감이 샘솟는 연못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보따리도 없다. 대신 나는 밖에서 재료를 캐내고 수집하고 쓸어 담는, 마지막에는 모은 재료를 바닥까지 긁어다 쓰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소설을 어떻게든 계속 써보려고 전전긍긍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천천히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내가 밑천 없는 작가라고 느끼지만, 예전만큼 그것이 두렵지는 않다. 이제는 글쓰기가 작가 안에 있는 것을 소진하는 과정보다 바깥의 재료를 가져와 쌓아 올리는 건축이나 제작의 과정에 가깝게 느껴진다. 배우고 탐험하는 일, 무언가를 넓게 또는 깊이 알아가는 일, 세계를 확장하는 일.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쓰기의 여정에 포함된다.


쓰기 위해서 읽는 법

새 작업실로 이사하면서 큰맘 먹고 책장 정리를 했다. 예전에 쓰던 작업실은 책상을 벽면에 붙여두어서, 글 쓰는 동안 벽만 봤는데, 이번에는 작업하는 동안 책장을 마주 볼 수 있게 배치하고 싶었다. 작업용 책상을 방 한가운데 두고, 책장을 벽면 가득 채우고, 도저히 다 꽂을 수 없는 책을 몇백 권쯤 슬퍼하며 버리고, 남긴 책들은 분류별로 잘 정리했다. 이 상태로 세 달을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종이책을 제발 그만 사자, 전자책이 있으면 무조건 전자책을 사자 마음먹었는데도 이미 책장 여기저기 혼돈이 발생하고 있다), 어쨌든 이제 책상 앞에 앉으면 한눈에 책이 들어온다. 보고 있으면 글을 한 자도 안 썼지만 이미 다 쓴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모니터를 보다가도 계속해서 모니터 뒤편, 혹은 옆에 있는 책들로 신경이 분산된다. 방금 이 문장을 쓰다가도…… 어라, 『벌의 사생활』? 저 책 사놓고 어디 있는지 몰라서 안 읽었는데, 얼른 읽어야지!

덕분에 읽기와 쓰기는 더 한데 얽혀 분리할 수 없는 과정이 되었다. 이번 원고를 쓰면서도 얼마나 산만하게 굴었는지 모른다. 참고하겠답시고 온갖 에세이 책을 죄다 꺼내 쌓아놓고, 인용할 가능성이 있는 책도 다른 한쪽에 잔뜩 쌓아놓고, 이 책을 펼쳐 삼십여 페이지쯤 읽었다가 또 다른 책을 이십 페이지쯤 읽고 엎어놨다가, 원고와는 아무 상관 없는 책을 펼쳤다가…… 그러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미루기의 천재들』에 손이 닿았다. 



이 책은 미루기의 달인이자 프리랜서 저술가인 저자가 자신의 미루기 습관을 합리화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예술과 과학의 거장들, 역사 속 인물들의 자취를 좇는 책으로, 단지 ‘미루는 사람’이라는 공통점만으로 찰스 다윈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우리를 잇는 과감한 비약을 감행한다. 한마디로 작업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플래그를 붙여둔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 책을 쓸(사실대로 말하면 안 쓸) 준비를 하면서 나는 미루기를 주제로 한 여러 문헌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그건 내가 부지런한 연구자여서라기보다는, 자료 조사야말로 글쓰기에 있어 우리 모두가 가장 선호하는 미루기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_앤드루 산텔라, 「부지런하게 꾸물거리기 – 변명거리를 위한 참고 문헌을 찾아서」, 『미루기의 천재들』,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2019.

사실은 이 책 전체가, 저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미적거리며 자료를 모으고 여기저기 여행하며 『미루기의 천재들』 집필을 최후까지 미뤘는지 회상하는 자기 고백이다. 마음 깊이 공감하며 밑줄 그은 부분이 많다. 나도 ‘이제 안 쓰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은 순간 직전까지는 자료조사랍시고 책을 읽으며 끈질기게 미적거리는 편이어서 그렇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그냥 미루는 게 아니라, 이것도 쓰는 과정이라고요.” 텅 빈 워드 화면이 내게 현실을 알려주지만…….

아침부터 책상 앞에 붙어 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날에 나는 보통 머릿속에 뭔가를 구겨 넣는다. 책이든, 기사든, 논문이든. 이따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도. 밀어 넣은 그 글자들-혹은 정보들-이 무언가 알 수 없는 반응을 부글부글 일으키기를 기대하면서. 마구 집어넣다보면 언젠가는 쓰게 된다. 도저히 쓸 수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그렇다.

잠시 딴 길로 새자면, 그런 확신을 갖게 된 건 대학원생 시절의 깨달음과도 관련이 있다. 학부 졸업 후 진로를 두고 고민하다가 DNA와 단백질을 다루는 생화학 연구실에 들어갔는데, 이 년 반의 연구실 생활 이후 내린 결론은 나는 실험과학자로는 참 형편없으며 앞으로도 가망이 없다는 거였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험은 잘 못했다. 없던 지식을 만들어내려면 책상 앞이 아니라 벤치 앞으로 가야 했는데, 잘 못하니 그렇게 좋아지지도 않았다. 하필이면 실험실을 떠날 수 없는 화학 전공이었다.

실험실 연구는 끈기를 필요로 한다. 한 번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쉴 틈 없이 몰아치듯 해서 사흘, 아니면 느긋하게 일주일이 걸리는 실험이 있다고 하자. 실험은 결코 한 번에 되는 법이 없고 거의 항상 문제가 있거나, 조건을 재설정해야 한다. 그러면 똑같은 과정을 수십 번 재반복. 방향을 제대로 못 잡으면 몇 달을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거나,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아니었거나 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심지어 실험을 사흘만에 끝낼 것인가, 일주일 동안 느긋하게 할 것인가의 끈기 차이도 실험이 반복될수록 엄청난 성취도의 차이로 나타난다.



얼마 전 제니퍼 다우드나를 중심으로 크리스퍼 연구의 발전사를 다루는 『코드 브레이커』를 재밌게 읽었는데, 저자가 박사과정생 시절 환상적으로 실험을 잘하고 손이 빨랐던 다우드나에 관해 서술하는 부분을 읽고 잠시 감탄했다. 

“실험에 뛰어났고, 동시에 큰 질문을 던질 줄도 알았다. 다우드나는 신은 작고 세세한 것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큰 그림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_월터 아이작슨, 『코드 브레이커』, 조은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2.

다우드나는 작은 분자들로부터 생명의 원리로 도약하기 위한, 탁월한 생화학자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총명한 박사과정생은 나중에 유전자 편집 혁명을 이끄는 생화학자가 된다. 내가 훌륭한 연구자가 되지 못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나는 큰 그림에 존재하는 신을 깨치기는커녕, 작고 세세한 것에 존재하는 신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생화학 연구실 경험은 이 흥미진진한 책을 잔뜩 몰입해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마지막 효용을 다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지겹게 되새겼던 값진 깨달음이 하나 있다. 그게 뭐였냐면, 나는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가 만들어내는 건 모조리 형편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그냥 슬픈 진실이지 무슨 값진 깨달음까지나 되겠냐마는…… 여기에는 ‘처음에는 다들 그렇다’는 작은 단서가 달려 있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아는 게 없고, 형편없는 것만 만들어낸다. 하지만 앞선 이들이 오랜 세월 쌓아놓은 벽돌 무더기를 딛고 올라가서 장벽 너머를 보게 되면, 무언가가 약간 변한다. 새로운 것, 예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려면 이전에 뭐가 있었는지를 탐구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야 무엇이 새로운지를 알 수 있으니까.

나는 장벽 너머를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게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시키는 일을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결과를 제대로 해석할 수도 없었지만 논문을 무작정 쌓아놓고 읽다보니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안갯속에서 조금씩 드러났다. 모든 게 마음만큼 잘되지 않아 괴로웠던 그때도, ‘세계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는 감각이 주던 기쁨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떻게든 머릿속에 집어넣다보면 내 밑천이 생기고,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그러면 언젠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게 된다는 걸 그때 배웠다.

물론 연구에서 배운 것을 소설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다. 공모전 당선 이후, 몇 편의 소설 의뢰가 있었으니 신인 작가로서는 무척 운 좋았던 편인데도 한참이나 ‘내가 쓸 수 있을까’ 괴로워했던 건, 창작은 선행연구도 리뷰 논문도 없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막막한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글쓰기는 실험용 피펫보다 나에게 잘 맞는 도구였다. 오랫동안 취미로 글을 써와서 적어도 편하게는 느껴졌다. 가져다 쓸 재료가 당장 없는 상황은 글쓰기나 실험이나 비슷했다. 그러니 괴로움 앞에서 나는 데뷔 직전까지 하던 일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모르면 모르는 대로, 뭐라도 무작정 읽어보기로. 그러면서 이 SF의 세계에 대한 흐릿한 지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그러다보면 어떻게든 쓸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야 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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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이 있다.